간증은 하는 게 나을까, 하지 않는 게 나을까?
간증은 하는 게 나을까, 하지 않는 게 나을까?
  • 권일한
  • 승인 2017.09.1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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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31-36절 말씀 묵상
권일한

본문에서 예수님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나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하셨다. 어눌하게 말하던 사람이 또렷하게 말하게 되었다. 예수님 덕분에 나았다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목격자도 많다. 한 동안 간증집회에 불려 다닐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침 받은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하셨다. 이상하다. 예수님이 알리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과 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에 달리는 하나님으로 오셨다. 그렇지만 그들은 병을 이기고 귀신을 몰아내는 능력자를 원했다. 지금은 부자 되게 해주는 하나님, 소원을 들어주는 하나님을 원한다. 병 고침 받은 사람, 오십 억 잃었다가 다시 백억 벌어들인 사람이 간증집회 강사로 간다. 그들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고, 부자로 산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아브라함처럼 부자 되는 복, 다윗과 솔로몬처럼 영화를 누리는 복을 말한다.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날 정도의 결단을 하지 않고, 유목민으로 살던 사람이 정착민으로 살아야 하는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도 없으며, 자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과 거리가 멀면서 돈만 바라본다. 시편 1편의 복,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꺼내지도 않는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능력을 행할수록 그들의 간증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달라졌다. 간증이 많아지고, 모두들 자기 생각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다고 말하지만 기독교를 향한 비난이 점점 커진다. 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 예수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때문에 예수님까지 비난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끝까지 복 받는다 말하면서 자기들끼리 부자 되고, 자칭 의인으로 살아가려 한다. 죄인들이 모여 통회하면서 우리를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곳이 아니라 소원 빌고 복을 기다리는 곳이 과연 교회일까? 하나님 이름 빙자해서 자기들 욕심을 채우는 금송아지 숭배자들 같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병이 나아도 간증하지 말아야 한다. 병 나은 자가 간증할수록 예수님에 대한 오해가 커진다면 간증이 나쁜 도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계속 예수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떠들고 다녔다. 듣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잘했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하나님이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하셨는데 이미 안다고 생각하고 자기 확신을 선포한다. 그래서 금송아지 모양의 하나님,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무너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을 만들었다. 모세,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를 통해 이미 말씀하셨지만 읽지 않는다. 읽어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했다. 간증하고 싶어도 간증하지 않았다. 하나님 뜻이 이러하다 저러하다고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복을 찾는 사람들, 이름만 하나님을 부를 뿐 정화수(井華水) 떠놓고 치성 드리듯 믿는 사람들을 보고는 내 마음이 답답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보다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성경말씀에 맞다고 떠들었다. 내가 아는 하나님, 내가 찾은 하나님 뜻이 더 옳다고 떠든 셈이다.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하지 말라 하신 것처럼 내게도 말하지 말라 하실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면서 하나님 뜻을 잘못 전하고 있을까? 성경 말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우리가 알던 뜻과 다른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말하고 싶지만 과연 말해야 할까 늘 고민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모른다. 그러면서 하나님 뜻에 관심을 기울이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라 착각한다. 자신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에스겔처럼 강제로 벙어리가 되어 하나님께서 입을 열어 주실 때만 말한다면 모를까!

하나님은 성경에서 계속 하나님을 알라 하신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러 오신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라 하신다. 광대하신 하나님,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가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은 하나님을 알면서 기뻤을까?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이 나은 일은 말하고 싶겠지만 선지자들은 오히려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기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으니까.

예수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실지 모른다고 하셨다. 마지막 시간은 아버지만 아시며,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가짜 메시아가 나타난다.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 안에서도 자칭 하나님 뜻을 아는 자들이 생긴다. 그들은 자칭 메시아는 아니지만 자기들이 메시아의 뜻을 아는 진짜라고 외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입 다물고 조용히, 하나님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최선일 것 같기도 하다.

 

글쓴이 권일한 선생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시골 아이들과 책 읽고 글 쓰며 행복하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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