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하는 진짜 모험을 누리고 있는가?
예수와 함께하는 진짜 모험을 누리고 있는가?
  • 김동문
  • 승인 2017.09.1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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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 내 깊은 갈망의 답을 찾아서 | 데이비드 그레고리 | 포이에마 | 2017년
데이비드 그레고리 | 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 내 깊은 갈망의 답을 찾아서 | 포이에마 | 2017년

지난 시간의 추억의 시간과 장소, 사람을 떠올릴 때 다가오는 감정과 몸의 반응처럼, 반응하면서 성경을 읽고 있는가? 성경을 읽으면서 천천히, 내가 온 감각으로 그 배경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느리게 읽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성경 읽기, 말씀 묵상은 새로워져야 한다. 이렇게 성경 본문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발바닥에 흙이 밟히고 여기저기 돌멩이들이 나뒹구는 게 보였다. 어둠에 눈이 서서히 적응했다. “아!” 고개를 드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달과 별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반달이 환하게 하늘을 밝혔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밝았다. 무수한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대한 캔버스에 빛점들이 촘촘히 들어박힌 듯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머리를 조아렸던 옛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107쪽

성경은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 도덕과 훈계만을 제시하는 교과서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그 때 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에 반응하도록 초청하는 책이다. 어떤 점에서 지적 동의보다 일상 공감을 기대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고리가 지은 한국어 번역서들

성경의 이런 특성을 잘 살린 성경 읽기를 보여주는 책이 있다. 《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 이 책은 성경읽기, 성경 묵상의 맛과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예수와 함께한 가장 완벽한 하루》, 《예수와 함께한 직장생활》,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2》 등에 이어 저자 데이비드 그레고리의 독특함이 이어지는 후속작이다. 《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에서는 남자 친구 제이슨과 헤어진 엠마가 그 헤어짐의 아픔을 겪는 중에, 2천 년 전 고대 이스라엘을 거니는 구성이다. 갈릴리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에 떠있는 한 배에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엠마의 시간 여행을 담고 있다. 갈릴리 호수, 사마리아 수가의 우물가, 베다니의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집,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 겟세마네 동산, 골고다 언덕 등으로 무대는 빠르게 이동한다. 수가 마을 여인, 니고데모,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부자 청년, 제자들 등 다양한 등장인물을 목격한다.

기독교인이나 교양으로 성경을 읽는 일반 독자들 가운데는, 성경읽기를 단지 지식과 정보를 찾는 것으로 다룰 때가 많다. 아니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재확인하려고 읽는 경우도 많다. 성경 묵상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교훈과 지식, 지적 사색에 주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식의 성경 읽기는 아주 진부하고 습관화된 지식 놀이를 하는 경우로 이어지곤 한다. 사건 속에 들어가 현장 목격자로서의 누리는 말씀 묵상이 많이 아쉽다.

 

성경 본문 속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로운 상상이 가득한 성경 묵상을 한다. 본문의 맥락이나 본문이 담고 있는 지리적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 등장인물의 처지와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깊은 묵상인양 내세우는 이들도 있다. 특정 단어에 너무 집착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묵상은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기가 쉽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말씀 묵상이 필요하다. 그것의 좋은 예를 이 책은 담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세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진짜 모험이 시작됩니다. - 19, 20쪽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느껴보자.

기록된 성경은 성경 속 이야기의 무대로 독자를 초대한다. 성경 본문은 일종의 초대장이 맞다. 성경을 들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성경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일상의 언어로 보여준다. 저자는 엠마라는 미혼의 여자 주인공을 통해 성경 속을 거닐게 한다. 성경 묵상이 무엇인지를 저자는 10개 안팎의 성경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엠마는 곧장 성경 본문속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관찰자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방이 캄캄해진 뒤에야 동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아무리 1세기라지만 온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어두운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별이 어떻게 그토록 영롱한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옛사람들이 이런 별천지 아래서 밤을 보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95쪽

엠마는 성경 속 사건에 개입하지 못한다. 단지 관찰자일 뿐이다. 그는 주변 환경을 묘사한다.

“나는 어두침침한 방에 서 있었다. 한쪽 구석에 놓은 등불이 실내를 은은히 밝히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길고도 야트막한 테이블이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은 그 테이블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야기를 꺼내려 했지만, 예수님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막았다. - 63쪽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현장 리포터 같기도 하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그분의 참모습을 대하는 순간, 온갖 소음이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예수님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가시관에 짓눌린 머리에서 등을 타고 피가 시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얼굴은 하도 얻어맞아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 156쪽

그리고 등장인물을 관찰한다. 엠마의 눈에 비치는 등장인물은 저자의 해석이다.

하지만 충격적이리만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베일을 쓰지 않은 건 물론이고 머리카락조차 가리지 않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서 보았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베일과 머릿수건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쪽 문화권의 여자들은 다들 그러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사회규범을 따르길 포기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 41쪽

이윽고 마리아는 이스라엘 여성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을 시작했다. 머릿수건을 벗고 머리칼을 풀어헤쳤다. 방 안에 있던 이들의 입이 하나같이 떡 벌어졌다. 예복을 차려입었던 이들 가운데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방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쥐 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 137쪽

이런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냥 이름 또는 명칭만 있던 존재를 사람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자신과 무관하게 보이는 성경 속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이 사실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돌아보도록 돕는 존재들이라는 것도 배운다.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 그러니까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는 그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제가 밟아야 할 영적인 프로그램을 먼저 생각했어요. 하지만 영적인 성장이란 그런 게 아니었더군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나요?” - 121쪽

그리고 예수와의 다양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돌아본다. 엠마는 성경 속 사건현장에서 예수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것이 저자가 담고 있는 말씀 묵상법이다.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사실 몇 시간째 가슴을 짓누르는 문제가 있었다. “물어봐요.” “아까는 왜 우셨어요? 문제가 다 잘 해결되리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계셨잖아요.” 한동안 답이 없던 예수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마리아가 느꼈을 그 슬픔을 나도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 친구가 그렇게 큰 괴로움을 겪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그게 한 가지 이유였을 거예요.” - 131쪽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이 묵상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무덤 입구 쪽을 몸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나가서 걷는 게 어때요, 괜찮죠? 여긴 좀 답답해서 말이에요.” 예수님은 널판에서 일어났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나는 무덤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얏!” “조심해야죠.” 예수님은 앞장서서 무덤을 나섰다. 우리는 동산을 지나 흙길로 들어섰다. - 166쪽

우리는 당나귀를 끌고 길을 가는 나그네를 지나쳤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행인이 멀어지자 예수님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이제 내 안에 머무는 비법 몇 가지를 들려줄게요.” “흠,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내가 냉큼 받아쳤다. 예수님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래, 맞아요! 정말 방법의 문제가 아니지요. - 174쪽

성경읽기는 맥락을 따라, 내가 예수에게 묻는 용기와 듣는 여유를 필요로 한다. 질문하지 않는 성경 읽기는, 성경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나 홀로 자문자답하는 것은 말씀을 왜곡할 수 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예수님이 팔을 풀었다. 그러고 나서 내 눈에서 마지막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장면 하나가 시야에 잡혔다. 예수님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던 것이다. 우린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 178쪽

벳세다 들녁에서 오병이어를 느껴보자.

이 과정이 어떤 강제나 획일화된 어떤 가치에 엠마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반응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성경 묵상이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하는 진짜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 184쪽

우리의 성경읽기도 이 책 속의 주인공 엠마가 한 위와 같은 고백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책 말미에 담겨있는, '영적 성장을 위한 토론 가이드'는 각 장별로 제시하고 있는 질문들은, 다시 한 번 독자들이 해당 본문을 더 깊게 묵상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을 통해 말씀의 깊은 것을 새삼 발견하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아쉬운 부분

그러나 이 책에는 사실 확인이 보완되면 좋을 부분들이 보인다. 성경 본문이 담고 있는 그 현장에 대해 조금은 더 치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현장을 묘사하는 부분들이 그때 그 자리에 맞지 않는 것도 눈에 자주 띈다. 조금 더 철저한 고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시의 문화를 오해했다.

남자와 당나귀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주먹을 움켜쥐고 한바탕 몸싸움을 벌일 준비를 했다. 갑자기 수탉 한 마리가 크고 긴 울음을 뽑아냈다. 너무 놀라 펄쩍 튀어오를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 37쪽

예수 시대 ‘닭’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치 오늘날 동물원의 맷돼지처럼 희귀한 동물이었다.

“풀이 덮인 언덕이 물가를 향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스무 척 남짓 되는 고깃배들이 줄 지어 매여 있고 뱃사람들은 이리저리 오가며 배를 손보고 있었다. 오른편으로 조그만 흙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고기잡이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들이 하나같이 편편했다. 낯익은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 83쪽

갈릴리 지역은 흙집들이 아니라 돌로 지은 집들만이 존재했다. 주변에 돌이 많은 것도 그렇고, 바람이 많은 것도 그 이유가 된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앳된 얼굴이었다. 가마를 멘 이들은 물론이고 뒤따르는 열댓 명의 수행원도 모두 칼을 차고 있었다. 행렬과 가까워지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바짝 붙어 그분을 둥글게 에워쌌다. - 54쪽

저자는 부자 청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에서 고대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이렇게 무장을 할 수 있었는지는 의아스럽다. 가마꾼이라는 표현이 조선 시대를 연상시킨다. 당시에 교통수단으로 가마가 사용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예수님은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동였다. 벽에 기대 세워두었던 대야를 가져다 물을 부었다. 그러고는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하나 발을 씻긴 다음, 수건으로 감싸 물기를 닦아냈다. 희미한 불빛 아래라는 점을 감안해도 제자들의 발은 여간 더러운 게 아니었다. 세 제자의 발을 씻기자 먹물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 149쪽

전통방식으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나르던 팔레스타인 여인들.

여기서 언급된 수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수건이 아니다,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하던 남자들의 머리 덮개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예수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여자는 단지를 우물가에 내려놓고 두레박을 내리기 시작했다. 코앞까지 다가가 여인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세상의 온갖 풍파에 시달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갖은 풍상으로 이마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있었다. 전에 들렀던 마을 주민들이 입었던 누르스름한 흰색 옷차림과는 확연히 달랐다. 옷단들이 다 해어져 너덜거렸다. 근사하게 꾸미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더는 차림을 유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 40쪽

가난과 곤고한 삶을 붉은 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인 옷으로 언급했지만, 이런 색감의 옷이 오히려 더 값비싼 것이었다. 붉은 빛 옷감은 중상류층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이동거리 풍경이나 거리감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손쉽게 성경의 무대 안에서 공간 이동을 하는 것 같다.

대낮이었다. 오른편으로 멀리, 얼추 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예루살렘이 아닐까 싶었다. 왼쪽 가까운 곳에도 조그만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거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 123쪽

산을 오르면서 광야와 산을 느껴보자.

예루살렘과 베다니의 거리는 이보다 1킬로 이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만큼 짧은 거리이다.

5분 만에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그동안 가시에는 고작 두 번 더 찔렸을 뿐이다. 아침을 밝히는 첫 햇살이 지평선 위로 퍼져 나갔다. 아래로 조그만 동네 하나가 내려다 보였다.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듯 했다. 마을 쪽으로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 36-37쪽.

갈릴호수가에서 어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갈릴리 호숫가에서 사마리아 수가 마을로 가는 장면 묘사이다. 일주일은 족히 잡아야 하는 여정인데 너무 단순화다. 또한 특별한 상황에 대한 오해가 보인다.

제자들의 꽁무니를 좇아 텅 빈 예루살렘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예수님이 있었다. 제자들이 들고 있는 횃불과 가끔씩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기름등잔의 흔들거리는 불빛만이 포석이 깔린 길을 비추고 있었다. 다들 말없이 걷기만 했다. 제자들이 그렇게 가라앉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 151쪽

예수와 예수 추종자들에 대한 은밀한 체포령이 내려진 상황이나 예수와 그 제자들이 식사하는 자리도 은밀하게 준비해야 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상상은 자연스럽지 않다. 횃불을 들고 이동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당혹스럽다. 은밀함과 긴장감이 넘쳐야할 장면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본문 속 현장 방문 여행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이 책은 우리에게 성경읽기, 말씀 묵상이 어떻게 다듬어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자와, 책 속 주인공 엠마와 함께 고대 이스라엘 땅을 밟으면서 이야기하고픈 마음이 더욱 크다.

그리고 책 속 주인공 엠마가 예수와 주고받는 대화 못지않게, 당사자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도 해봤으면 좋을 것 같다. 니고데모의 육성 고백을 마주하고, 수가 마을 여인의 인생사에도 귀기울여보면 좋겠다. 왜냐하면 예수의 자리, 예수가 만난 사람들의 위치가 아니라 예수를 만난 사람들 속에서 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읽기는 그냥 성경에 쓰인 글자를 소리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 당사자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느껴보자.

우리의 일상에서

성경 속 그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일하심을 처음 목격했던 그들과 같은 감동을 받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성경을 들고 성경 속으로 들어가라. 오늘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세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진짜 모험이 시작됩니다.

이 책 《예수와 함께한 복음서 여행》, 무미건조한 성경읽기로 지쳐있는 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이야기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말씀 묵상의 건강한 변화를 어떻게 하여야 할지 궁금한 이들에게 권한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기념교회와 유적지만 따라다니지 말고, 현장감 있게 말씀 속을 거닐기 위해 이 책과 동행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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