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오늘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창조하십니다
  • 김영준
  • 승인 2017.09.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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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23~28을 중심으로
렘브란트, '예레미야' (1603)

언제 지구가 만들어졌을까요? 현대물리학은 46억 년 전으로 추산합니다. 성경을 근거로 창조연대를 측정한다는 과학자들은 6천 년 전으로 당겨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이 6천 년 전에 창조됐다는 ‘젊은지구론’의 증거일까요?

성경에는 지구의 기원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창세기에 소개되는 창조 기사는 지구의 기원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첫 날,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드셨는데, 창조의 첫날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세상에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하나님께서 창조의 첫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기 전에 땅이 있었고,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있었던 땅은 무엇이며, 땅을 덮고 있었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란 어떤 상태를 설명하는 것일까요? 예레미야를 통해 창조가 일어나기 전에는 땅이 어떤 상태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렘4:23)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지나간 후에 유대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해 본 환상을 소개하며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말합니다. 또, 빛이 없을 것, 즉 흑암이 땅을 덮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유린당한 땅을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땅이라고 소개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BC 587년. 성벽이 뚫리고,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성전의 제사장도 끌려갔고, 성벽을 의지해 살았던 귀인들도 끌려갔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까닭에 에스겔 같은 제사장은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었고, 귀족이었던 청년들은 다니엘처럼 환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전이 무너져 버린 땅이 에스겔에겐 무엇이며, 고환을 잃어 총회에 들어갈 수 없는 환관이 된 다니엘에게 고향 성읍은 무엇이겠습니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곳일 뿐입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가 망하게 되었을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없고 희망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끔찍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등에 떨어지는 채찍은 참을만했지만, 어린 아이들이 바위에 메치며 죽어가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시137:9) 제방 공사 현장에서 발이 미끄러져 죽는 동포들을 보며 오히려 평안하게 보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가득한 땅을 떠날 수 있는 죽음을 안타까워 할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혼돈’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는데 바벨탑은 하늘에 닿을 듯 우뚝한 것입니다. ‘공허’는 일을 하면 할수록 내 집은 세워지지 않고 원수들만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흑암’은 고향을 다시 밟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빌로니아에 끌려와있던 사람들이 딛고 선 땅의 형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살아계신 줄 확신할 수 없는 ‘혼돈’, 아무리 버티며 노력해도 일상이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체념에서 오는 ‘공허’, 한 세대가 지나고 두 세대가 지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희망 없는 ‘흑암’이 땅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50억 년 전에 있었다는 빅뱅에 관한 것도 아니요, 광신적이요 교조적인 창조론자들이 말하는 젊은 지구론의 근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에 일어나는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재료로 빚어내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성전도 파괴되고 성벽도 무너져버려 종교와 국가를 잃어버린 노예들에게 열리는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다윗이 열고 솔로몬이 구축했던 옛 이스라엘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던 날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첫날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 가득한 바빌로니아라는 공간에서도 하나님나라는 시간으로 세워집니다. 바빌로니아라는 공간을 하나님나라의 ‘연호(年號)’로 덮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영락’이라 하고, 발해 무왕은 ‘대흥’이라 하고, 고려 왕건은 ‘천수’라 하며, 나라의 첫 날에 연호(年號)를 선포했었지요. 하나님나라가 세워질 때도 연호가 있습니다. 세속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창조의 시간, 즉 하나님나라의 연호를 ‘희년’이라고 합니다.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노예가 땅을 갖게 되어 자유를 얻는 희년이 창조의 시간입니다.(레 25:10) ‘희년’이라고도 하고, ‘주의 은혜의 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시간, ‘주의 은혜의 해’에는 폭력으로 다스리는 제국 치하에서도 포로가 자유를 얻고, 눈 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됩니다.(눅 4:18)

46억 년 전에 창조가 시작된 게 아니라, 6천 년 전에 창조가 완료된 게 아니라, 오늘 하나님은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창조하십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눌려있던 은화와 다윤이를 위해, 함께 우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오늘 창조의 첫날을 여시며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습니다.

 

글쓴이 김영준 목사는, 김포에서 발달 장애인과 이주 여성들이 함께하는 카페 ‘민들레와 달팽이’를 운영하는, 민들레교회의 담임목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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