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 현상과 방언 장사
랄랄라 현상과 방언 장사
  • 신성남
  • 승인 2017.10.02 11:19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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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방언은 거의 다 가짜다

초대 교회에 할례파가 있었다면 현대 교회에는 방언파가 있다. 과연 랄랄라 방언은 하늘의 비밀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당 헛소리일까. 가장 중요한 점은 사도바울이 말한 정상적인 방언은 언제나 통역이 가능한 언어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다른 곳도 아니고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전14:28)"고 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매우 중대하다. 간혹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다른 방언과 달리 인간의 언어 체계가 아닌 마구잡이 랄랄라여도 무방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는 대단한 오해다.

우리는 흔히 사도행전 방언은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고, 고린도 방언은 남들도 자신도 못 알아듣는 방언이었다고 구분한다. 그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고린도교회에는 통역할 수 없는 가짜 방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전14:13)"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방언은 통역이 가능한 언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당시 통역 불가 랄랄라 현상이 고린도교회에 만연한 이유는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고 대적했던 거짓 사도들의 선동이라고 보아야 옳다. 고린도교회에는 심각한 문제가 많았고 특히 거짓된 가르침으로 인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고후11:4)'까지 받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경의 방언은 '지방 언어'였다

바울은 고린도 서신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고전14:11)" 라고 했다. 이 구절은 성경이 논하는 방언이란 땅의 언어이고 그것도 외국어라는 강한 암시를 준다.

게다가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고전14:21)"고 하신 구절을 보면 바울이 언급한 방언이 백성이 들을 수 있는 일반 언어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본래 통역이란 언어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통역하라고 요구하는 미친 사람은 없다. 언어(Language)와 소리(Sound)의 차이는 명백하다. 문법적 체계를 지니고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게 언어다.

반면에 빗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파도 소리는 그냥 소리일 뿐이다. 거기엔 아무런 문법도 없고 체계도 없다. 그런 면에서 통역 불가 '랄랄라'나 '으다다다'나 '개굴개굴'은 결코 언어도 아니고 방언도 아니다.

성경의 방언이 반드시 외국어라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고전14:22)"이라는 구절에 있다. 이는 방언의 진정한 목적과 용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본래 방언은 언어가 다른 이방인 전도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그게 당연히 놀라운 표적이 되는 것이다. 만일 외국어가 아니라 뜻도 모르는 랄랄라로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 말한다면 그게 어찌 표적이 될 수 있겠는가. 도리어 크게 비웃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믿는 자들을 위해서는 굳이 방언이 필요 없다고 설명한 것이다.

'아주사 운동(Azusa Rivival)'은 교회사적 돌연변이

사실 신약 초기의 교부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무려 1800년 동안이나 기독교 내부에서 방언이 널리 유행하여 신학적 관심사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교회 역사상 간간이 나타난 극소수의 신비주의 집단들 외에는 방언이 일반화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100여 년 전 이런 큰 흐름을 깬 돌연변이적 사건이 있었다. 바로 1906년의 '아주사 부흥운동(Azusa Rivival)'이다. 당시 미국 LA타임즈에 실린 그 집회 기사의 제목은 '괴기한 방언의 바벨탑 쌓기'였다. 그들은 1909년까지 3년에 걸쳐 매일 집회를 지속했고 수천 명이 모여 성령의 은혜에 감동했다고 주장한다.

아마 이게 본격적인 랄랄라 운동의 시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갑자기 들불처럼 퍼진 여러 방언 운동들은 대체로 이 아주사 방언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래서 상당수 오순절 계통이나 신사도 계통 교단들은 아주사 방언을 마치 성지처럼 찬양한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로 현대 방언이 이처럼 별안간 성행하게 되었을까.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그 현상이 더욱 강하다. 다른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현대 교회의 세속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개신교가 쇠퇴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방언이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헌데 미국교회와 한국교회는 근세기에 큰 부흥을 이루었다. 교회 역사에 전무후무한 수만 명의 초대형 교회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즉 교회가 돈과 권력이 모이는 육식공룡이 되면서부터 영적으로 혼탁한 성령 운동이 동시에 태동했다. 아니 역으로 보자면 왜곡된 성령 운동이 사람을 더 많이 모으고 교회당을 더 크게 키웠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터무니없이 성행한 랄랄라 방언

하지만 아주 약간의 상식만 있는 사람이라면 랄랄라 방언이 얼마나 허구이며 기만인지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현대 방언은 신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누구라도 좋다. 요즘 소위 통역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10명만 모아서 특정인의 랄랄라를 5분 동안 들려주고 각자 노트에 통역을 적으라고 하면 된다.

만일 그 중에 단 두 사람의 내용만 일치해도 나는 현재의 주장을 모두 취소하고 랄랄라를 성령의 사역으로 즉시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간 고린도식 랄랄라 방언을 동시에 통역해서 서로 일치한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백 명이 하면 백 명이 다르고, 천 명이 하면 천 명이 모두 다르다.

설사 백 보 천 보 양보하여 많은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외국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로서 랄랄라 방언이 실제 성경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큰 의문이 남게 된다. 왜 현대 방언은 한결같이 모두 랄랄라로만 나타나냐는 거다.

만일 현대 방언이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성령의 사역이며 성경의 방언이 현재도 그같이 반복하여 재현된다면 외국어 방언 또한 동시에 많이 나타나야 더 정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균형상 적어도 반 정도는 외국어 방언이 나타나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그 좋은 외국어는 다 놔두고 하필이면 그토록 난잡한 랄랄라만 터무니없이 성행하냐는 것이다.

한국교회 랄랄라 업계의 대부격인 C목사의 방언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이건 아예 언어도 아니고 거의 그냥 육갑떠는 수준이다. 게다가 어쩌다 뱉어내는 그의 통역은 더욱 가관이다. 초등학생도 그걸 들으면 배꼽을 잡는다.

교회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랄랄라가 성령의 역사란 증표나 근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도리어 악령의 역사일 가능성이 거의 100%다. 사탄은 속이는 자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다가온다. 그래서 제 아무리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이 방언을 한다고 해도 그걸 함부로 포용해선 안 된다.

오순절 방언은 외국어다

장로교 보수 교단에 출석하는 내 가까운 지인 중에도 학생 시절부터 오랜 기간 랄랄라를 했던 분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늦게나마 그것이 가짜인 걸 깨달고 단호히 버렸다. 본인이 구하지도 않았는데 혀가 꼬이며 저절로 받았다거나 또는 자신이 매우 간절히 구해서 랄랄라를 한다고 해도 그게 성령의 은사라는 보장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아울러 힌두교나 불교나 이슬람교 일각에서도 얼마든지 랄랄라 방언이나 접신 현상이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더구나 랄랄라 방언은 개신교를 온통 목회업자의 장사판으로 물들였다. 삯꾼 목사들은 랄랄라를 지극히 좋아한다. 이보다 더 좋은 종교 영업이 없다. 랄랄라에 빠지면 신도들이 종교 생활에 더 몰두하고 헌금도 더 열심히 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동안 방언 장사를 크게 벌린 목회자치고 부자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었고, 또한 그 끝이 좋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아무튼 앞으로 랄랄라 방언과 연관해서 소위 '오순절운동'이란 말은 함부로 쓰지 마시기 바란다. 이는 성경의 방언에 대한 모욕이며 신도들을 속이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오순절에 일어난 방언은 분명히 유라시아 지역 15개 이상의 다양한 언어였지 뜻도 없고 씨알도 없는 랄랄라는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방언과 관련하여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전14:9)"고 경고한 가르침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개신교의 무분별한 방언 지지자들은 이제 무당 작두 타기를 멈추어야 한다. 무당이 날선 작두를 탄다고 해서 그것을 성령의 역사로 보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랄랄라는 교회모독이며 동시에 신성모독이다. 자기 자신조차 이해 못하는 헛소리나 환각에 심취해 가짜 방언이나 귀신 방언에 빠진 걸 신령한 신앙 생활로 오도하는 기만 행위는 단호히 근절해야 마땅하다.

랄랄라는 무당 헛소리다. 그리고 헛소리는 기도가 아니다. 그건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단순히 시간 낭비, 심력 낭비, 그리고 인생 낭비일 뿐이다.

"우리는 공중기도에서나 개인기도에서나 이해력을 동반하지 않은 말은 하나님께서 심히 불쾌하게 여기실 것이라고 느낀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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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끼을 2017-10-30 01:31:03
"성경의 방언이 반드시 외국어라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고전14:22)"

"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이라는 말을 잘 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전 14:22 절에 "그러므로"가 있으므로
21절을 통해 22절의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표적이 어떤 의미인지..
고전 14:21절은 사28:11절을 인용한 것인데
이에 대한 고려없이 "표적"을 이해하면
성경을 거꾸로 이해하게 되고
바울께서 반대한 바로 그것을 성격적이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언어 2017-10-12 22:24:54
방언의 은사는 넘쳐나는데 사랑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인생들...
사랑은 커녕 무례함이 넘쳐나는 믿는자들....
그래서 꽹가리소리만도 못하다는것
방언이야 할수도 있겠지 그자체로 시비하진 않지
오래기도 하기에 유리하고 유익이 있을수있는걸
다만 안하는 사람 몰아세우지 말고 겸손하면 될일이라
교회는 시끄럽고 교회 다니는 인간들은 악취가 날만큼 시끄럽다
성령이 그렇게 시끄러운 분이런가
뜨거운 내적 임재와 분별할일이다
천상의 언어를 사모하고 하늘로 부터 온 기도의 언어를 품어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릴수있다면 그것이 진언이되었든
방언이 되었든 모두 옳다고 할수있겠으나 사랑의 언어는 품은적이
없고 양동이에 동전 몇개 굴러다는 정도의 싸구려 사랑밖에 없는 수준에
방언은 안빠지고 새벽기도도 안빠진다 성경 찢어져라 읽는다
헌금 안빠진다 그러나 사랑은 지가 낳은 지새끼 사랑하는것 말고는 아는게
없어보이는게 작금의 한국의 믿는자들 수준이다

칼빈 2017-10-12 09:21:38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사랑은 은사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사랑의 덕을 구하고, 그것을 가진 자로서 신령한 것, 곧 성령의 은사들을 구하라는 뜻이다. 사도시대니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가르친 줄 안다. 만일 그가 오늘날 교훈한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고 성경으로 권면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다(눅 16:29-31; 계 22:18-19). 바울은 그들에게 영적 은사들을 사모하되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한다. 방언보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은 본장 전체의 요지이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성령이 임하면 조급한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꼬부라진 혀로 랄랄라 하는 것은 귀신방언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 2017-10-11 12:14:55
방언의 은사

http://harvestdream.tistory.com/822

어부 2017-10-09 12:28:34
방언에는 골방이나 또는 공개적인 새벽기도 장소에서 각자 기도할 때에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여 기도하는 개인방언이 있습니다. 또한 14장에 나타나는 공적인 예배 중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교회에 예언적인 방언을 말하는 공중방언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서 성령의 거룩하신 방언의 사역을 이러구 저러구 거짓 증언하는 죄악을 범하지 않으시기를 아무나 설교하는 교회도 아닌 단체의 신성남님에게 권면 드립니다.

지상에 몇천, 몇만가지, 자기 언어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언어가 많이 있듯이 영계에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영언(방언)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언어가 무수히 많이 있답니다. 방언의 은사에는 영계의 헤아릴 수 없는 언어들과 수많은 지상의 언어 모두가 사용되어 질 수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지상의 언어는 모두 쏼라 쏼라 영계의 언어는 따락 따락 랄랄라로 들릴 수가 있지요. 하나님과의 비밀한 개인 방언기도를 알아듣는다는 전혀 성격적이지 않은 가짜 은사자들에게 현혹되지 않기를 권면 드립니다. 방언을 모르면 다만 모른다, 겸손해 지시기 바랍니다.

대개의 성령세례 초년생의 방언으로는 개인적으로 베비 방언으로 부르는 랄랄라 방언이 주를 이룹니다. 갓난아기들이 입을 떼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떼 떼 떼 하듯이 방언 초년생들에게 나타나는 방언의 은사가 랄랄라 방언이지요. 저의 경우에 초창기부터 베비방언을 사용하여 기도를 해 왔는데 10년쯤 되니 순전한 언어방언으로 바꿔 주셨지요. 유창한 언어방언의 은사를 받은 후로는 랄랄라 흉내도 낼 수가 없더군요^^

개인방언은 보좌에 좌정하여 계신 하나님과 직통으로 교통하는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기도요, 귀신이라도 알아 들을 수 없는 비밀한 기도입니다. 고전14장에 나타나는 공중방언은 반드시 예언의 은사자가 알아 듣고 교회에 예언을 선포하는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가 함께 나타날 때에 교회가 진리의 영이시요 예수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의 뜻이 선포되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이시여 걱정할 일이 무엇입니까? 한국교회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공중방언의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신 일이 없습니다. 공중방언의 역사는 오순절 교단인 미국 하나님의 성회에서만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공중방언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아니하는 한국교단의 중생한 자들이 염려할 일이 전혀 못됩니다. 방언의 은사를 부정하는 은사중단론자에게 공중방언의 역사? 전혀 나타날 일이 없으므로 왈가불가 할 일도 되지 못합니다.

공중방언과 예언의 역사가 나타나는 예배 현장에서 예언이 끝난 후에 회중 각자가 개인방언으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공중방언과 개인방언이 동시에 일어나는 예배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