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흑역사' 청산 네번째 기회, 이번에도 외면하나
'개신교 흑역사' 청산 네번째 기회, 이번에도 외면하나
  • 지유석
  • 승인 2017.10.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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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역사연구자 강성호의 [한국 기독교 흑역사]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 정도에 불과했던 기독교인들이 3.1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건국 주역도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지난 6일 국가조찬기도회 신임회장 취임식에서 했던 말이다. 이 발언 속엔 기독교(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종교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자부심이 스며 있다. 동시에 개신교의 영광을 한껏 부각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가 선한 영향만 끼친 건 아니다. 오히려 보수 정치세력과 엮여 '흑역사'를 연출한 경우가 더 많았다. 광주의 피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1980년 8월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등 개신교 목회자 23인이 전두환씨를 불러놓고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전씨를 축복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흑역사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 연구자인 강성호의 <한국 기독교 흑역사>는 이렇게 한국 기독교가 현대사에 드리운 그림자를 조명한다. 이 책은 지난해 5월 출판됐는데, 현 시점에서 보수 개신교계가 보이는 행태를 이해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실증적 자료다. 저자 강성호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직후, 그리고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을 구가하던 1970년대 등에 나온 자료를 토대로 흑역사를 구성해 나간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기막힌 자료들이 계속 나온다. 일제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예언자적 메시지가 담긴 구약성서를 폐기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1941년 7월24일자 <신한민보> 기사나, 1948년 여순 사건 당시 반란을 진압했고 한국전쟁에서는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며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김종원이 기독교인임을 알린 1956년 6월25일자 <한국기독시보>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도대체 이런 자료들을 어디서 발굴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자료들은 역사학도인 저자가 발로 뛰어 건져 올린 것들이다. 자료확보를 위해 저자는 2년 가까이 전국을 누볐다.

일제 강점기에 막오른 흑역사 

▲ 역사 연구자 강성호의 <한국 기독교 흑역사>는 한국 개신교계가 적폐임을 입증해 준다. ⓒ 도서출판 짓다

글을 시작하면서 한국 개신교의 흑역사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었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한국에 와 있던 선교사들을 적극 회유했다. 

저자에 따르면 선교사 명의로 된 교회부지, 전답, 주택 등의 소유권을 인정해 줄 뿐만 아니라 면세 특권까지 부여했다고 한다. 일제가 선교사들을 회유한 이유는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내한 선교사들을 우대한 이유는 조선병합에 대한 국제여론의 호전을 노렸기 때문이다. 내한 선교사들은 일본의 대외선전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대상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나 재일사학자 강동진이 '평양지방에서 기독교가 급속한 발전을 이룬 것은 이토 히로부미의 기독교 보호정책과도 관련한다'라고 서술한 내용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 본문 29쪽 

"일제의 선교사 회유정책은 크게 포교규칙의 개정과 종교교육 금지의 폐지, 그리고 기독교단체의 법인화 허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교사 회유정책의 핵심은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를 보수화하여 식민지배의 한 축으로 삼는 것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가 가진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 본문 31쪽 

기독교의 보수화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바로 예언자적 메시지의 상실로 이어진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교는 예언과 언약의 종교다. 여기서 예언은 신통력(?)으로 한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게 아니다. 그보다 역사의 큰 흐름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민족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예언이다. 

이런 이유로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는 지금으로 말하면 지식인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일제는 회유정책을 펼치면서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예언을 거세해 버렸다. 선교사들은 회유정책에 동화돼 공공연히 '권세자에 굴복하라'는 교리를 설파했다.

일제는 특히 구약성서에 주목했다. 구약성서엔 이사야, 예레미아, 아모스 등 예언자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일제는 이런 예언서가 조선인들에게 저항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판단으로 구약성서를 불온시 했다.

"식민지 시절 한국기독교는 구약성서에 담긴 이스라엘 민족의 수난과 구원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강했다. 설교 시간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등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했던 지도자들을 중점적으로 언급했으며, 성탄절에는 모세의 출애굽 테마가 교회 연극의 주요 소재로 등장할 정도였다. 따라서 일제는 구약성서가 식민 지배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경무국 보안과가 작성한 한 보고서에 의하면,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는 유대민족의 저항의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는 구약성서를 불온한 책으로 보았다." - 본문 60~61쪽

구약성서를 경시하는 풍조는 비단 일제 강점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수많은 한국 교회 설교에서 예언자적 메시지, 즉 사회와 역사를 통찰하고 현 시국에서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설파하는 설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 신약성서, 그중에서도 바울의 서신서에 적힌 윤리덕목을 인용해 기성의 권위에 순응할 것을 주문하는가 하면, 국가와 사회의 현실은 아랑곳없이 개인의 성공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설파한다. 한국 교회의 이 같은 보수 성향은 따지고 보면 일제의 잔재인 셈이다.

한국 개신교야 말로 적폐 중의 적폐 

한국 개신교가 식민시대의 흑역사를 청산할 기회가 없었을까? 아니다.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국면마다 한국 개신교는 과거의 유산과 결별할 기회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개신교는 개혁을 거부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적 과제를 거스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갔다.

"한국기독교의 역사에서 과거사 청산의 기회는 세 번이나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정부수립 이후에 조직된 반민특위를 통해서 찾아왔다. 이때 한국기독교는 전쟁의 죄책을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기회는 1960년 4월 혁명의 시기에 찾아왔다. 12년 동안이나 이어진 이승만 정권의 독재 속에서 한국기독교는 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온갖 혜택을 누렸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의 타도를 불러온 4월 혁명은 한국기독교의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때도 교회 개혁은 고사하고 정교 유착을 주도해 온 목사들에 대한 처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중략) 마지막 세 번째 기회는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찾아왔다. 신군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교회지도자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이 기독청년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 8월6일의 조찬기도회에 참여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정당화한 목사들이 주요 대상이 되었다. 5공 청산의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교회지도자들은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발족하여 이에 대처했다." - 본문 65~66쪽 

한국 개신교는 단지 종교의 울타리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우군을 자처하며 기득권을 누려왔다. 이들의 영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한국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는 장로임을 근거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어느 목사는 '이 후보를 찍지 않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제명될 것'이라는 협박성 설교로 신도들을 압박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보수 개신교계가 한 축을 담당했다는 건 정설이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자 많은 교회에서 감사 기도가 넘쳐 났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대선 직후 있었던 본예배에서 대표기도를 맡은 장로는 "이 후보를 당선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었다.

보수 개신교와 권력과의 결탁은 박근혜 전 정권에서 더욱 노골화됐다. 보수 개신교는 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한국교회언론회(언론회) 등 연합체를 앞세워 역사 교과서 국정화, 12.28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폐쇄 등 사회적 논란이 첨예한 의제에 대해 어김없이 정부편을 들었다.

한국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는 네 번째 과거사 청산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계가 지지했던 박근혜 전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현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적폐청산에 보수 개신교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한국 개신교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보수 개신교계야 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보수 개신교계는 이번에도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모양새다. 이들은 박근혜 전 정권에서 법제화된 종교인과세의 시행을 막으려 기를 쓴다.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인 김진표 의원이 선봉에 서 있고, 국내 최대 교세를 가진 보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은 종교인과세 2년 유예안을 국회에 건의하기로 총회에서 결의했다. 

이런 와중이라 한국 개신교의 과거를 되짚는 일은 중요하다. 기독교가 대한민국 건국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 정치세력과 얽히며 억압받는 민중을 외면하고 기득권만 추구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간 한국 교회사를 다룬 책들은 한국 개신교의 어두운 면은 가리고 영광스러운 역사에만 집중해 왔다. <한국 기독교 흑역사>는 이 같은 흐름에 맞서 대항기억을 제시해 준다.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개신교 교회가 안고 있는 병리현상의 뿌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스도인은 말할 것도 없고, 타종교나 종교가 없는 독자들도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종교의 울타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정치세력화를 시도했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성공적으로 관철시켜 나갔다. 

이런 이유로 이들이 바로 서지 못하면 그 해악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이든 아니든 한국 개신교의 흑역사를 인식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성공적인 적폐청산을 위해선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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