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백성으로 못 산 것 회개하자"
"하나님 백성으로 못 산 것 회개하자"
  • 홍성종
  • 승인 2007.05.16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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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에서 열린 평양대부흥 1백주년 기념집회, "애틀란타여 일어나라"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맞아 회개와 변화의 새 바람을 재연하려는 열망이 이민 교계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애틀란타한인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의회)는 5월 11일부터 사흘간 "애틀란타여 일어나라"란 주제로 애틀란타연합장로교회에서 평양대부흥 기념집회를 개최했다. 강사는 한국 사랑의교회 담임 오정현 목사.

▲ 이번 집회는 한국 사랑의교회 담임 오정현 목사가 강사로 참여했다. 오정현 목사는 세상으로 부름 받은 거룩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의 능력이 약화된 것을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성종

오정현 목사는 이번 집회에서 세상으로 부름 받은 거룩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의 능력이 약화된 현실을 지적한 다음, "21세기의 종교개혁은 참 교회상의 회복, 참 성도상의 회복에 있다"고 강조하고, "이 시대의 부흥은 각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뼈저린 각성을 통해 영적인 능력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설교했다.

5월 11일 금요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이번 집회는 매회 약 1,400~1,500명이 참석해 규모 면에는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교회협의회 총무 최병호 목사(베다니장로교회)는 "한민족 부흥의 시발점은 거짓과 타락에 대한 회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며, 이번 집회가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범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쳐 모두가 새사람으로 변화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특별히, 교회협의회는 이번 집회가 일회적인 행사로 끝나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집회를 통한 결단이 삶의 현장으로 이뤄지도록 개인과 지역 사회, 교회에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삶 속에서 개인의 변화를 촉구하며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바른 직업을 갖는 것을 비롯해 ∆법과 질서를 지키며 ∆부모를 공경하고 ∆가정예배를 드리는 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실천적인 삶을 살자고 권면했다.

또 평양대부흥의 대각성의 정신이 한인 사회에까지 연결되어 ∆상호간 상도덕을 지키며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한인간의 과당 경쟁을 지양하고 ∆소수민족을 존중하고, 다민족 문화를 이해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도록 촉구했다.

아울러 교회적으로도 ∆교회간의 과당 경쟁과 수평이동을 피하고 불신자를 전도하는 데 앞장서고 ∆인종을 초월하여 소외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불법 영주권 알선 중단 ∆무면허 신학교 폐지를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데 교회가 앞장설 것을 호소했다.

이번 집회를 주최한 교회협의회는 교단을 초월하여 애틀란타 인근 지역의 67개 교회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교계와 지역 사회의 현안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이번 애틀란타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회개와 변화의 새 바람이 이민 사회에 일어나도록 간구했다. ©홍성종

현재 애틀란타 인근 지역에는 개신교 단체로 공식 등록한 교회가 약 130여 개이며, 가정교회를 비롯한 소규모 공동체를 포함하면 약 300여 개의 교회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애틀란타 지역은 최근 3~4년 동안 급격한 한인 유입으로 전체 한인 인구가 12만 내지 15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맞아 '어게인 1907', '리바이벌 1907' 등 교단별, 단체별로 다채로운 집회와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흥운동은 개개인의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비롯된 것이지, 캠페인이나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부흥운동이 정치 세력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고, 죄의 고백 역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선언에 불과하다며 대각성 운동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1907년 평양대부흥이란

복음주의적으로 한국 교회의 영적 산실이 된 1907년 평양대부흥은 넓게는 1866년 9월 2일 당시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1903년 원산에서 감리교 의료 선교사인 하디의 성령 체험과 회개로 시작한 대각성의 불길이 번져 이듬해 1만여 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마침내 1907년 1월 14일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함께한 평양장대현교회의 사경회에까지 불길이 번졌다.

당시 평양장대현교회의 장로였던 길선주는 부흥사경회 도중 많은 교인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나는 아간(하나님의 제물을 훔친 자, 수 7:1)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고 고백했다. 길 장로의 회개를 시작으로 교인들의 회개가 이어졌으며, 고백의 내용도 축첩(蓄妾), 폭리, 아내를 구박한 것, 남의 돈을 갚지 않은 것까지 구체적이었다.

이 같은 평양장대현교회의 대각성을 통한 부흥은 기독교 학교의 학생들까지 번져갔고, 신앙의 열기는 '백만구령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대부흥의 근원지인 평양은 이후에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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