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앙은 내부로 향하는 초월
교회와 신앙은 내부로 향하는 초월
  • 마이클 오
  • 승인 2017.10.23 2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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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목회 및 사역 탐방]-(3) 미쉘 김 상담사 인터뷰
미주 뉴스엔조이는 미주의 한인교회와 신앙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보다 나은 내일을 전망하고자 '대안적 목회 및 사역 탐방' 시리즈를 마련하였다. 곳곳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을 통하여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교회와 신앙의 내일을 그려보고자 한다

미주뉴스앤조이(LA)=마이클 오 기자] 미쉘 김 상담사는 결혼 및 가족 치료 상담사로서 엘에이 및 파사데나 지역의 교인 및 교민들의 삶과 신앙을 돕고 있다. 그녀의 활동은 단순히 상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세미나와 강의, 워크샵 등 종횡무진 펼쳐지고 있다. 그녀는 여기에다 막 학교 문턱을 넘고 있는 두 딸과 사역을 하는 남편까지 도우며, 도저히 가능할것 같지 않은 스켸줄을 살고 있는 슈퍼우먼이다. 하지만 분주함과 피곤함보다는, 이 살인적인 스켸줄에 걸맞지 않은 진지함과 여유로움이 풍겨졌다. 무엇이 이 묘한 대비를 만들고,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신앙인들과 교회에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았다. 

Michelle Kim ⓒ <미주뉴스앤조이 마이클 오 기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몇가지 키워드로 설명할수 있을것 같다. 관계, 공동체, 그리고 신앙이다. 삶은 관계 가운데 이루어 지는 경험이라고 할수 있다. 사람은 관계 가운데 의미를 찾고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때로는 관계가 난관과 아픔, 그리고 상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관계의 경험은 성인이 되어 맺은 관계 가운데 투사되고, 치유와 필요를 채우려는 욕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나에게도 어린시절과 성장과정 가운데 경험한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결핍이 있었다. 이런 것들과 끊임없이 내면적인 씨름을 하면서, 관계라는 말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점점 커져갔던 것 같다. 

사실 상담공부를 하기 전에는 영문학과 신문방송을 전공하였다. 다큐작가 같은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관계 보다는 미디어를 토대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꿈을 꾸었다. 이런 방식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진정한 관계나 의미있는 삶을 만들어 내는데 무기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소비와 안주하려는 욕망만 부추길 뿐, 진정한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선교사 훈련생으로 미국에 왔다. 그때 공동체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묵은 관계의 기억과 상처들이 동료 선교사들과의 관계 가운데 치유되고 회복되는 경험을 하였다. 머리로 알고 있던 개념들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고, 그 과정 가운데 공동체라는 키워드가 관계라는 말과 함께 내 삶 가운데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다. 더불어 이러한 공동체의 경험은 신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전환점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이후에 이러한 키워드들을 삶으로 통합하고 실천해보기 위해서, 풀러신학교로 왔다. 결혼 및 가족 치료학 (Marriage and Family Therapy)을 통해, 관계, 신앙, 공동체 등의 키워드를 통합하고, 이를 실천해야겠다는 소망과 소명을 발견하였다. 졸업이후 엘에이공립학교 (LAUSD) 소속 비영리단체에서 저소득층 이주민 가정을 위한 상담사로써 일하게 되었다. 화려한 미국의 이면을 절실히 경험하였다. 가정 폭력, 트라우마, 중독등에 시달리는 다양한 형태의 벌거벗은 삶을 보았다. 이들의 삶 가운에 신앙과 교회가 어떤 의미일까 많은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Healing, Growth, and Hope라는 주제로 ‘미쉘 킴 Therapy’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삶의 현장 가운데 내면적 상처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 그리고 성장의 통로로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다. 신앙이 현재의 삶 가운데 치유와 회복, 성장을 통해 경험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교회의 빈곤한 내면

상담사로서 바라본 교회는 어떤 공간인가? 

교회라는 공간은 인간의 영적인 필요와 성장을 위한 치유 공동체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좀더 영적인 측면에 방점을 찍고 싶다는 말이다. 외형적인 측면, 즉 조직과 경영, 이루어야 할 어떤 의무나 숭고한 교회의 정의 이전에, 실재하는 사람과 그들의 영혼에 관한 장소라는 것이다. 사람이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보다 건강한 하나님과 나, 그리고 서로간의 관계를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치유와 성장을 도울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교회를 이해하기 쉬울것 같다. 예수님은 온전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으로 이해된다. 초월적인 존재인 것 만큼이나 이 땅의 존재로, 이 땅을 향한 존재로 오신 분이다. 그분을 따르는 교회 또한 같은 방식이어야 할것 같다. 저 높은 곳을 향해가야 하지만, 동시에 이 땅의 존재로써 주변과 내면을 향하기도 해야한다. 외부와 내부로의 운동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재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라는 공간의 대부분은 신성으로 채워진것 같다. 초월적인 이상과 그것을 향한 지향운동으로써 교회의 말씀과 신앙생활이 짜여진 경우가 많다. 반면에 교회를 이루고 있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삶과 그 내면에 관한 관심은 소홀할 때가 많은거 같다. 그들이 이 땅의 존재로써 경험하는 고통과 애환의 문제는 관심 밖이거나 관념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피할수 없다. 교회를 바라볼때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어려움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특별히 슬픔과 애도의 문제에 있어서, 너무 일방적인 영적 해석이 난무한다. 심리학적이고 임상적 접근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도의 전인격적인 성장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설명을 듣다보니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라는 두 단어가 떠오른다. 어쩌면 현재의 교회는 하나님의 드높은 말씀을 쫓는 과정에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특성으로써 로고스적인 성격이 강한데 반하여, 내면적이고 정서적인 특성으로써 파토스적인 측면은 많이 부족하다는 말인거 같다. 

동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고스로 표현되는 말씀조차 파토스로 읽고 해석할수 있다. 수많은 예수님의 비유와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단순한 가르침과 충고가 아니라 충만한 열정과 감정을 느낄수 있다. 어쩌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논리와 지식을 취하는 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있는 감정에 대해 경험하고 공감하는 행위까지 포함할 것이다. 

신앙 또한 이러한 로고스와 파토스의 통합으로 이해할수 있다. 지식과 논리, 이상과 절대성 만으로는 신앙을 완성할 수 없으며, 어떠한 실질적인 의미도 가지기 어렵다.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것들 만큼이나 내면적이고 개별적인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둘을 통합하려고 할때 전인적이고 건강한 신앙을 가질수 있다. 

오늘날의 교회가 이러한 통합적인 신앙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관심을 가지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실재적인 사람들의 삶의 경험은 내면적이고 감정적인 형식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판단과 결정 등의 이성적인 경험은 그리 지배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교회가 얼마나 사람들의 삶의 경험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볼수 있다. 많은 교회는 감정의 어려움과 난관을 그저 영적으로 해석하고, 피상적인 기도나 말씀만으로 접근하려 한다. 혹은 이러한 내면의 문제를 수치(Shame)나 믿음의 문제로 해석할때도 많이 있다. 이런 교회의 태도는 성도들에게 이질감과 결핍, 고립감을 느끼게 하며, 더욱 심각한 내면적 위기로 몰아가기 쉽다. 이와 함께 근현대를 거친 한국인들에게는 개별적인 감정에 대한 관심 보다는 돈과 명예, 대의등 외부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이 더욱 많아져, 이러한 위험에 더욱 쉽게 노출될수 있다. 

이민 교회에 있어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자녀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민자로써 부모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상처들을 자녀들에게 사회적 성공과 안정이라는 방법으로 투사시킴으로써, 그들의 내면적 건강을 해치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본다. 이러한 비극은 결국 로고스적 이상과 대의에 비해 파토스의 결핍과 부재가 낳은 결과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현실적으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교회는 바운더리 세팅이 필요하다고 본다. 교회가 많은 일을 할수 있지만, 모든 일을 할수는 없다. 나름의 전문영역을 구분하고, 그 외에 필요한 부분은 전문가들과 함께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특별히 내면적인 위기 가운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전문적인 돌봄과 치료가 시급하게 필요한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은혜로운 교회 같지만, 실상 그 가운데에는 체면과 수치심, 신앙적 자책 등으로 가려진 시한폭탄 같은 위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시기를 놓쳐 더이상 돌아올수 없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비극을 막는 길은 끊임없이 목회자와 관련 전문가들 간에 협력과 연대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목회자 스스로도 위기를 판단할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과 감각, 그리고 전문 영역을 향한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Michelle Kim ⓒ <미주뉴스앤조이 마이클 오 기자>

내면에 불을 밝히기

교회와 신앙의 상황에 대한 인식 가운데 자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나’라는 존재, 자신에 대한 인식과 자기 자신과의 회복을 위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문제는 ‘나’의 위기와 상실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구조적인 변화나 개혁도 중요하겠지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내면과 참존재를 회복하는 것도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Self Compassion Group Therapy가 좋은 통로가 되고 있다. 매주 한번씩 6주 정도의 과정으로 하는 그룹 세션이다.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신앙인들이 이웃에게는 관대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나 가족에게는 비판적인 경우가 있다. 자신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은 정작 내면으로부터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자신을 움츠려들게 하고 비참한 존재로 만들어 간다. Self Compassion Group Therapy는 이런 내면의 목소리를 긍휼(compassion)의 목소리로 바꿔가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감성지능이 높은 아이로 키우는 육아 (Emotionally Intelligent Parenting: How to raise an emotionally intelligent child)는 2 -4회의 세미나를 통해 부모가 자신과 자녀의 감정을 인지하고, 알려줌으로써 서로의 애착관계를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성장 중심의 한국 문화로 인하여 성과 위주의 양육 방식을 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양육은 자칫 자녀의 관계적, 내면적 영역에서의 성장을 소외시키고, 여러가지 관계적 어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세미나는 부모로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identify/be aware), 표현하며 (communicate/express), 긍정적인 행동들을 선택하고 행하는 것을 도와주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또한 부모가 자녀들의 감정을 공감하고 인정해주면서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EQ가 높은 아이로 자라게 되는 대화방법을 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Michelle Kim Therapy를 통하여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자녀 문제, 부부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상담하게 된다. 이들을 만나다보면 특별히 트라우마와 애도 등의 많은 내면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상담은 이들에게 단순히 문제 해결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어려움을 치유와 회복, 그리고 성장의 발판이 될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 

대안이란 어떤 의미인가? 

희망적인 무엇이라고 해야겠다. 힘든 상황 가운데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노력하는 것이 대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창조적이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금 우리가 봉착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가 벌써 대안이 될것이다. 특별히 현재의 상황에서 대안은 중요한 말이다. 이전의 여러가지 모순과 한계가 지금의 위기와 절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 때에,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Michelle Kim Therapy ⓒ <미주뉴스앤조이 마이클 오 기자>

그 대안의 형태는 아마도 연대와 협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개인이나 소수의 엘리트의 능력으로 상황을 개선하는 영웅의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현재의 한계와 실패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각자의 역할과 장점들을 최대한 살려서,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대안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담 과정도 하나의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수 있다. 언제나 현재 상담자가 겪고 있는 문제와 한계점으로부터 새로운 인식과 해결점, 즉 대안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시에 상담자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와 함께 하는 협력 작업이며 연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상담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영역에 의미있는 대안의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상담이 대안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상담이 대상으로 삼는 영역, 즉 인간의 내면과 개인의 상황과 특성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개별적 상황에 대한 진솔하고 성실한 이해와 공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상담의 특성은 그대로 오늘날 교회에 의미있는 대안의 지점이 될수 있다. 끊임없는 경쟁과 자기 소외의 과정을 겪고 있는 현대인과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회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없는 신앙은 그야 말로 헛된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가 무언가 현재의 상황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면, 그 지점은 외부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의 가장 깊은 내부이며, 그 사람들 사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그 내부에 불을 밝혀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방향이나 소망이 있다면? 

그리 멀리 보지 않는다. 하루하루 집중하며, 오늘보다 한발 더 내딛은 내일을 살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다른 한 발은 여전히 오늘을 딛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는 것이 방향이고, 소망이고, 목표이다. 이런 진정한 ‘나’가 진정한 엄마, 진정한 아내, 진정한 상담가, 혹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나’가 타인에게 확장 되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부로 향하는 초월

오늘날 문명의 특징중에 하나는 초월에의 집착이 아닐까 생각해본적이 있다. 끊임없는 외부로의 운동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나’는 항상 '보다 나은 나’를 위한 극복의 대상이다. ‘나’를 탈피하기 위해 쉼없이 무언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더 나은 학생, 직장인, 남편과 아내가 되기 위해, 더 모으고, 더 소비한다. 교회 또한 더 넓고 화려한 성전을 원하고, 더 많은 성도를 원한다. 마치 현재의 교회가 부정되고 탈피됨으로써 더 나은 교회가 될수 있는 것 처럼 끊임없이 확장한다. 하지만 슬픈 현실은 이러한 초월에의 욕망이 더 나은 미래 대신, 자신의 상실과 소외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나’의 초월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수 없을 만큼의 공허와 내적 빈곤을 일으키고, 주변으로부터 고립을 일으킨다. 나아가 교회도 이러한 외부로의 운동을 통하여, 그 구성원의 삶과 생명력을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은 진정한 ‘나’가 없는 텅빈 교회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집착적인 외부로의 운동 가운데, ‘나’로 돌아갈것을 외치는 미쉘 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공허해지고 텅빈 내부가 오히려 ‘나’와 교회가 지향하고 회복해야할 진정한 외부라는 지적은, 오늘날 진정 대안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귀 기울여야할 메시지 일것이다. 왜소해보이지만 다부진 그녀의 걸음걸이가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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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18-11-23 03:08:50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