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다고?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다고?
  • 양승훈
  • 승인 2017.11.02 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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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년에 <뉴스앤조이>를 통해 통해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 때 생겼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글을 쓴 후에도 이 황당한 주장은 한국교회에서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이 황당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랜드 캐니언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 것 같아서 몇 자 적는다.

한국인으로서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 때 생겼다는 주장을 하면서 그랜드 캐니언 창조과학 탐사를 인도하는 사람은 대표적으로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거주하는 박창성 목사와 LA에 거주하는 이재만 선교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창조과학자 헨리 모리스가 설립한 미국 창조과학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서 공부한 사람들로서 지구와 우주가 6천 년 되었다는 젊은 지구론을 신봉하고 있으며, 고생대로부터 신생대까지 대부분의 지층이 1년 미만의 노아홍수 때 생겼다는 대홍수론을 믿는 사람들이다.

젊은 지구론이나 대홍수론은 전문 학계에서는 더 이상 논의조차 되지 않는 주장이지만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마치 이러한 주장이 지질학계 내에서도 상당한 논쟁이 되는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서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위 두 사람이 반박한 내용을 중심으로 왜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터무니없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필자가 내년 2월 하순에 CUP를 통해 출간할 예정인 <그랜드 캐니언, 정말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을까?>의 일부를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그랜드 캐니언에 테일러스가 없다고?

먼저 박창성 목사의 주장부터 살펴본다. 박 목사는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대홍수론을 비판하는 필자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그랜드 캐니언에 테일러스(talus)가 없는 것이 대홍수론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은 박 목사 자신의 주장이라기보다 ICR 웹사이트에 실린 토마스(Brian Thomas)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보통 풍화와 침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절벽 아래에는 부서진 암석과 흙이 많이 쌓이게 되는데, 이것을 ‘테일러스’라고 한다. 만약 그랜드 캐년이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와 빗물, 콜로라도 강의 침식으로 이루어졌다면, 계곡 양쪽 사면은 부드러운 곡선을 나타내거나, 아래에 많은 테일러스가 쌓여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랜드 캐년을 실제로 가까이 가서 관찰해 보면, 수직 절벽과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부분이 많으며, 마치 최근에 물로 씻겨 내려간 것처럼 깨끗하고, 많은 양의 테일러스가 보이지 않는다. 그랜드 캐년 뿐만 아니라, 콜로라도 고원 일대의 침식지형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것은 대홍수가 수백만 년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으며, 후퇴할 때 침식한 물질을 부근에 퇴적하지 않고, 바다로 되돌아가면서 아주 먼 곳으로 운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1a. 테일러스 유형
그림 1b. 그랜드 캐니언의 테일러스

 

테일러스란 그림 1과 같이 가파른 낭떠러지 아래나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모난 암석 조각들이 모여 원추형 혹은 고깔 모양으로 쌓여있는 지형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절벽(崖) 아래 뾰족한 원추(錐) 모양으로 쌓여있는 돌 조각들의 무더기라고 해서 애추(崖錐)라고 부른다. 과연 그랜드 캐니언에 테일러스가 적은 것이 그랜드 캐니언이 대홍수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그랜드 캐니언에 테일러스가 적은 것은 대홍수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그랜드 캐니언 위쪽은 대부분 상당히 급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테일러스가 쌓여있을 수가 없다. 대부분은 계곡 바닥 가까운 것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대홍수가 아니더라도 콜로라도 강물에 의해 얼마든지 아래로 씻겨 내려갈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콜로라도강은 글렌 캐니언 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우기에는 많은 물이 흘렀기 때문에 바닥 근처의 테일러스들은 씻겨 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랜드 캐니언은 대부분이 쉽게 물에 의해 풍화 혹은 침식되기 쉬운 석회암이나 사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창성 목사는 그랜드 캐니언에 테일러스가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 계곡에 쌓여 있는 많은 테일러스를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요세미티는 단단한 화강암이나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계곡이다. 당연히 테일러스도 화강암이나 현무암일 것이고 이런 테일러스들은 석회암이나 사암과 같은 퇴적암들에 비해 풍화나 침식에 매우 강하다. 게다가 요세미티에는 콜로라도강과 같은 큰 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요세미티의 테일러스를 예로 들면서 그랜드 캐니언의 테일러스가 없는 것을 대홍수의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두 지역은 전혀 생성 과정이 다르다!

셋째, 그랜드 캐니언에 테일러스가 없거나 적다고 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토마스가 테일러스가 없는 부분만을 답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글 검색기에 “talus in Grand Canyon”이라고 적고 이미지 검색을 해보라. 그랜드 캐니언에는 그림 2와 같은 테일러스가 곳곳에 있다! 당연히 콜로라도 강물이 지나가는 하상 인근에는 과거에 강물이 많이 흐르던 시절에 모두 쓸려 내려갔을 것이기 때문에 테일러스가 없겠지만 강물이 닿지 않는 약간 높은 곳에는 지금도 테일러스가 많이 있다. 만일 오래지 않은 과거에 그랜드 캐니언을 뒤덮은 거대한 홍수에 의해 테일러스가 모두 쓸려 내려갔다면 콜로라도강 하상은 물론 꽤 높은 곳에 있는 테일러스까지 모조리 쓸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캐니언 내부 곳곳에 아직 테일러스가 많이 남아있다!

그림 1b. 그랜드 캐니언의 테일러스

쉐퍼드 논문이 대홍수론을 지지한다고?

다음에는 이재만 선교사의 반론을 살펴보자. 이재만 선교사는 필자가 쓴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 홍수 때 생기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글에 대해 반론을 쓰면서 쉐퍼드(R.G. Shepherd)의 <Science> 논문을 인용하였다. 이 선교사는 그 논문이 마치 대홍수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논문은 인위적으로 만든 사행수로에서 흐르는 물이 어떻게 측방침식 및 하방침식을 일으키는지를 연구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주어진 사행수로에서 “하방절개 및 측방절개의 원리와 조절”(the mechanics and controls of vertical and lateral incision)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점에서 <Science>에 실릴만한 논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재만 선교사는 그 논문을 저자의 의도나 문맥과 전혀 다르게 인용했다. 이 선교사가 쉐퍼드 논문을 인용한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논문이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대홍수론적 해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아래에서 쉐퍼드 실험의 핵심적인 부분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쉐퍼드는 이 실험을 위해 그림 3과 같은 인공적인 모의 암반(simulated bedrock)을 만들었다. 모의 암반은 모래와 미사질 점토(silt clay)와 고령석(高嶺石, kaolinite)을 각각 79 : 19 : 11의 비율로 잘 혼합해서 걸쭉하게 만든 후 이를 그림에서와 같이 길이 60피트(18.28m), 넓이 4피트(1.22m) 수로에 부어넣었다. 처음에는 수로를 기울여서 혼합물이 골고루 퍼지게 한 후 모의 수로를 수평으로 만들고 2주일 동안 건조시켰다. 건조된 후에는 수로 양쪽에 1.5피트(45.75cm)의 수직 제방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혼합물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림 3. 쉐퍼드가 사용한 모의 수로 장치

일단 이렇게 만들어진 모의 암반에 쉐퍼드는 손으로(manually) 곡류 수로(sinuous channel)를 팠다. 그런 후에 그는 모의 수로에 물을 흐르게 하여 곡류 수로가 어떻게 침식(절개)되는지를 조사했다. 당연히 모의 수로의 기울기를 증가시킬수록, 즉 물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점점 더 강한 침식이 일어났다. 쉐퍼드는 총 73시간 동안 물을 흘리면서 침식 패턴을 조사했는데 이는 그림 4와 같았다. 당연히 물의 속도(수로의 기울기)를 증가시킴에 따라 침식속도도 증가했다. 쉐퍼드의 결론은 물의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측방침식만이 아니라 하방침식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쉐퍼드는 이 모의 실험을 통해 작은 강에서 수량이 적게 흐를 때는 측방침식이 지배적으로 일어나고 큰 강에서 많은 수량이 흐를 때는 하방침식이 더 크게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 결과를 기초로 쉐퍼드는 유타주 남동쪽에 있는 에스칼란테강(Escalante River)과 같은 강에서는 측방침식이 강하게 일어나서 심한 곡류가 형성된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반면에 콜로라도강의 지류들 중에서 유타주 구스넥스 주립공원(Goosenecks State Park)을 관통하는 산후안강(San Juan River)과 같이 많은 물이 흐르는 강에서는 하방침식이 강하게 일어난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림 4. 시간에 따른 좌측 만곡부(a)와 우측 만곡부(c), 그리고 그 중간부(b)에서 침식의 횡단면. 숫자는 물을 흘리기 시작한 후 경과한 시간을 나타내며, 그늘진 곳은 모래가 퇴적된 것을 표시한다.

하지만 이재만 선교사는 이 실험을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였다. 이 선교사는 급격한 홍수는 사행천을 만들지 않는다는 필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실험을 인용하였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실험은 노아홍수와 같이 크고 급격한 대홍수가 났을 때 그랜드 캐니언이나 콜로라도강과 같이 심한 사행천이 만들어지는지를 증명하는 연구가 아니다. 이 실험에서는 물을 흘리기 전에 이미 실험자가 사행하는 모의 수로를 만들어 두고 이 수로가 뒤이어 흘려보낸 물에 의해 어떻게 측방으로, 혹은 하방으로 침식되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흘려보낸 물의 양과 물을 흘려보내는 주기가 측방침식과 하방침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쉐퍼드의 실험은 노아홍수와 같이 급격히 흘러가는 물에 의해 사행천이 만들어지는 것을 증명한 실험과는 무관하다. 이 선교사는 원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논문의 내용을 왜곡,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 이 선교사는 그 논문을 본인이 직접 읽어보지도 않고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쉐퍼드의 논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속과 흐르는 물이나 물질의 양을 보더라도 저자가 전혀 노아홍수와 같은 대격변을 염두에 두고 실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쉐퍼드가 사용한 장치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길이 60피트(18.28m), 넓이 4피트(1.22m), 높이 1.5피트(45.75cm)의 수로였다. 그는 침식이 좀 더 효과적으로 일어나도록 1분에 30-50g/min의 속도로 모래를 물속에 섞어 넣었으며, 그가 사용한 모의 수로의 경사도 0.0167이었다! 이 수로를 통해 쉐퍼드는 초당 2.8리터의 물을 흘려보냈다.

수로의 크기와 경사도, 그리고 1초당 흘려보낸 물의 양을 생각하면 이 모의 수로를 흐르는 물은 급격한 홍수가 아니라 매우 느린 물의 흐름을 모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선교사는 도대체 이런 모의 실험결과를 어떻게 대홍수론을 모의한 실험결과로 인용하는가? 다시 말해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어떻게 노아홍수가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거대한 침식계곡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사용하는가? 쉐퍼드의 논문은 느린 침식에 의한 초기 수로 형성의 모의실험은 될 수 있지만 전 지구적 홍수에 의한 그랜드 캐니언 형성과는 무관한 연구이다. 이 선교사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문맥에 맞지 않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가끔 획기적 과학논문 한편이 시대를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경합을 벌리다가 점점 어느 한쪽으로 증거가 모이게 되고, 그래서 흔히 말하는 주류 이론이 만들어진다. 그랜드 캐니언이 오랜 기간 동안 느린 침식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이 이론이 지질학계의 주류 이론이 된 것은 수많은 이론들이 경합을 벌이다가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지배적인 증거들을 중심으로 전문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그랜드 캐니언이 대홍수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은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창조과학자들을 제외하면 지질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된 주장이다. 처음에는 지질학자들 중에서도 대홍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주장은 증거가 부족하거나 불충분해서 전문 지질학자들이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예의를 갖추고 전문가들을 설득해 보라.

만일 이 선교사가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라는 전 지구적 격변에 의해 형성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었다면 그 획기적인 주장을 왜 전문 지질학자들 앞에서는 발표하지 않는가? 왜 대부분이 지질학적 배경이 전무한 일반 교인들 앞에서만 얘기하는가?

아직도 일반 지질학회는 진화론자들이 세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궁색하게 변명할 것인가? 모든 지질학자들이 진화론 이데올로기에 찌든 사람들이라고 폄훼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화론 지질학자들이라고 해도 적어도 학자라고 한다면 본인의 학문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정상적인 학술활동의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막는 그런 막무가내의 사람들이 아니다.

필자는 오랫동안 여러 지질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정상적인 학술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이라도 최소한의 학술적 증거와 논리를 제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더 이상 단지 창조론적 관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지질학회에서 발표하지 못하게 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인지 여부를 떠나 성실한 지질학자들을 모욕하는 말이다. 먼저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증거와 논리 위에 세워져 있는지, 터무니없는 성경해석에 기초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참고로 필자는 여러 해 전에 <다중격변창조론>이라는 지구역사를 다룬 지질학 서적을 발표하면서 그 책의 주장에 대한 몇몇 지질학자들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창조론자인 필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분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분들이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건설적인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박창성 목사, 이재만 선교사 두 분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고자 한다.

첫째, 선택적으로 창조과학자들의 글만 읽지 말고 제발 그랜드 캐니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여러 지질학자들의(그들의 종교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글을 골고루 읽어보기를 바란다. 두 분은 적어도 학부 수준에서는 지질학을 공부한 분들이니 영어로 된 전문 지질학 논문도 읽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런 저런 논문들을 찾아서 다 읽기가 어렵다면 근래에 출간된 캐롤 힐(Carol Hill) 등 11명의 지질학자들이 공저한 <오랜 지구의 기념비, 그랜드 캐니언: 노아홍수가 그랜드 캐니언을 설명할 수 있을까?>(The Grand Canyon, Monument to an Ancient Earth: Can Noah's Flood Explain the Grand Canyon?)(2016)라는 책을 주의 깊게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문헌들을 읽을 때는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지 말고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고 저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논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인용하기 바란다.

둘째,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는 바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지 말기 바란다. 어쩌면 노아홍수가 그랜드 캐니언의 형성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아홍수로 인해 그랜드 캐니언 전체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전문 지질학자들은 물론 조금만 지질학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랜드 캐니언이 1년 미만의 노아홍수 때 모두 퇴적, 침식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앞에서 누차 말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전문 학자들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린 주장이다. 더 이상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성경은 오늘날 대홍수론(홍수지질학이라고도 부르는)에서 말하는 바를 지지하는가?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노아홍수 때 그랜드 캐니언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가? 성경은 노아홍수를 말하고 있지만 노아홍수로 그랜드 캐니언이 만들어졌다는 등의 얘기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이다.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이데올로기화 된 젊은 지구론에 끼워맞추기 위한 창조과학자들의 틀린 성경해석일 뿐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는 바를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잘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책임 있는 학자의 바른 자세임은 물론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이다.

양승훈 교수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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