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맹신도
내 이름은 맹신도
  • 신성남
  • 승인 2017.11.02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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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선에 있으면 해적이다

지난 2012년 남부 지방의 한 모텔에서 슬픈 사건이 일어났다. 두 명의 어린 아이가 살해되었다. 피의자는 놀랍게도 그 아이들의 엄마였다. 조사 결과 그녀는 신흥 종교의 맹신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전달되는 지시를 따르면 잘 먹고 잘살 수 있지만, 그것에 따르지 않을 경우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하는 기복적 교리를 가진 종교다. 무속적 종교는 언제나 잘 먹고 잘사는 걸 미끼로 유혹한다.

처음에는 '집 앞에 피자를 사다 놓으라'는 등 사소한 지시를 내리며 끌어들인 후 나중에는 아이들에 대해 '잠을 재우지 마라', '소풍 보내지 마라', '역에서 노숙하라'는 등 이상한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는 계속되는 지령에 따르지 못해 1억 원 이상의 벌금을 내다 결국 더 이상 그걸 감당하지 못 해 두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다.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 기막힌 사건은 세상 복에 눈이 먼 엄마의 무지로 시작된 일이다.

그런데 만일 이 사건을 보며 비웃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건 정말 무지한 거다. 왜냐하면 이와 유사하게 멍청한 일들이 오늘날 개신교 속에도 매주 빈발하고 있건만 그들이 무심코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맹신은 눈먼 신앙이다. 눈이 멀면 방향을 구별하지 못 한다. 그리고 방향을 분간하지 못 하면 반드시 대형 사고로 가게 되어 있다. 그건 시한폭탄이다.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차가 차선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머리 속에도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심각한 맹신이 하나 있다. 바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확신이다. 수시로 목사님께 듣는 단골 설교의 주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성경까지 인용하는 설교자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잘 믿는다.

물론 그 말 자체는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문제는 누구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숙고가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우상을 섬기는 것도 외견상 신앙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이 결여되면 맹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제법 독실한 신앙 같으나 사실은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믿음은 좋은데 그 방향이나 내용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 히틀러를 굳게 믿던 독일 국민들이 엄청난 패망을 겪은 것과 같다.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이 헌신적으로 전장에 나가 피를 흘렸고 여성과 노인들은 군수 공장에서 밤낮으로 구슬땀을 흘렸지만 모두 헛된 수고였다. 그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만 수천 만이다. 그래서 맹신은 무서운 거다.

교회에서도 무조건 믿으면 '목사님 말씀'에 묻혀 '하나님 말씀'을 분간 못 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심하면 이런 맹신은 마침내 예수님의 가르침까지 부인하는 현실로 나타난다. 중세 교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무지한 맹신 덕분에 교황이나 사제의 말이 성경을 대신했다. 그러더니 결국엔 돈 주고 산 면죄부가 십자가를 대신했다.

요즘 주변의 교회들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정상적인 사역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목회에 억눌릴 때가 많다. 예배 참석하고, 돈 바치고, 그리고 주일 성수 잘 하면 그게 성공한 신앙의 증표일까. 우리는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과 헌신의 모습을 얼마나 보고 있는가. 그곳에 과연 병든 자와 약한 자를 섬기며 갈리리 해변을 걸으시다 십자가를 지신 가난한 목수의 모습이 있던가.

사치한 예배당, 직분 계급화, 지나친 연봉, 고액 강사비, 헌금 남용, 십일조 강요, 설교 표절, 목회 독재, 교인 차별, 성직 매매, 성추행, 그리고 교회 족벌화 등 왜 이런 것들이 맹신의 눈에는 안 보일까. 강단에선 거룩함을 노래하고 내려와서는 교회를 세습하는 위선을 저들은 왜 외면할까. 맹신이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맹신도를 만들었을까. 교회 밖에는 맹신도가 없다. 결국 맹신도를 만든 사람은 강단을 독점한 목회자들이다. 한국 개신교는 주로 목사만 말한다. 기독교 진리가 맹신일 리는 없지만 인간이 그 진리를 왜곡할 때 맹신이 발생한다.

설교로 맹신하게 하고, 기도로 맹신하게 하고, 찬양으로 맹신하게 하고, 헌금으로 맹신하게 하고, 예배로 맹신하게 하고, 축도로 맹신하게 하고, 그리고 종교 생활로 맹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맹신은 실제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맹신은 하나님 대신에 신상을 섬기는 행위다. 그리고 작금의 부패한 교회 속에는 '성직주의'라는 신상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 담임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권력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그리고 맘몬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사야 시대처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사44:10)"를 다시 물어야 할 때다.

나는 표절 안 했다. 나는 횡령 안 했다. 나는 월권 안 했다. 나는 성직 매매 안 했다. 나는 표적 설교 안 했다. 나는 성추행 안 했다. 나는 학력 세탁 안 했다. 나는 교회 세습 안 했다. 그리고 나는 교회를 사유화하지 않았다. 이딴 소리 함부로 하지 말기 바란다.  

해적선에서 노를 저으면 그는 해적이다. 주방에서 요리만 했어도 해적이다. 칼 들고 노략질을 안 했어도 스스로 승선했으면 그는 아주 나쁜 해적이다. 우리 배의 선장이 겸손한 사람이라거나 항해사가 착하다거나 하는 말은 매우 웃기는 이야기다. 개인적 교양이나 성품에 관계 없이 거기 타고 있는 자들은 그냥 해적일 뿐이다.

가장 한심한 경우는 자신이 공범자인 것조차 모르는 인생이다.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친 것을 모른다. 맹신도 또한 목회질과 해적질을 구분 못 한다. 그들은 방주와 해적선을 구별 못 한다. 한국교회엔 맹신도 투성이인데 아무도 자신을 맹신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도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의 교회는 어떤 배인가.

"그들은 모호한 정의로 믿음의 힘을 쇠약하게 만들며 거의 말살할뿐 아니라 '맹신'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냈다. 비할 데 없이 엄청나게 유치한 무지를 이러한 허구로 장식함으로써 그들은 가련한 사람들을 속여 멸망하게 만든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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