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은 정의의 문제이다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은 정의의 문제이다
  • 신기성
  • 승인 2017.12.16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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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 투표 결과  공화당 3인 찬성, 민주당 2인 반대로 철폐안 통과됨 (ⓒWashington Post)

[미주뉴스앤조이=신기성 기자] 연방 통신위원회(FCC)는 지난 14일 투표를 통해 인터넷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을 폐기했다. 망 중립성 원칙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제정되었으나 이번에 총 5명의 위원 중 공화당 추천 위원 3명의 찬성으로 폐지되게 되었다. ‘인터넷’ 서비스를 ‘공공서비스(타이틀 2)’에서 ‘정보 서비스(타이틀 1)’로 성격을 바꾸어 시장 경쟁에 맡기는 형식이 된 것이다.

FCC의 위원장 아짓 파이(Ajit Pai)는 2011년에 전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처음 연방통신위원회에 지명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파이를 FCC 위원장으로 임명했으며 그는 줄곧 망 중립성 원칙을 폐기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는 투표가 있기 전날 밤에 산타 복장을 하고 나와 망 중립성 원칙을 조롱하며 “사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인터넷 사업을 이끌어왔다”고 주장했다.

FCC 위원장 아짓 파이(ⓒChicago Tribune)

이번 결정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반할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정책 자체를 뒤집는 결과이기도 하다. 부시 대통령 재임 시 FCC는 망 중립성 원칙이 채택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2004년 당시 FCC 위원장이었던 마이클 파월(Michael Powell)은 인터넷 사용자들은 다음의 네 가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웹사이트가 합법적인 한, 모든 컨텐츠에 대한 접속의 자유, 모든 온라인 프로그램에 대한 접속의 자유, 모든 사람의 고속 통신망 접속의 자유, 그리고 자신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을 자유 등이다.

 

‘망 중립성의 원칙’이란?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망 중립성 정책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nternet Service Providers, 이하 ISP)는 웹사이트든 엡이든 합법적인 사업자는 그 누구도 차별할 수 없다.
  •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그 내용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어떤 컨텐츠도 속도를 느리게 할 수 없다.
  •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 소비자나 회사를 위해 더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추가 요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인터넷 속도를 느리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ISP가 인터넷의 트래픽에 우선순위를 임의로 정해서, 특정 트래픽의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반대로 느리게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스트리밍 같은 특정 사이트나, ISP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추가 요금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버라이존 같은 ISP가 자신과 사업상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그룹의 관련 사이트 속도를 늦추거나 그들의 자회사 관련 사이트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 버라이존이나 캠캐스트, 에이티앤티 등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속도를 늦추고, 자사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속도를 높여서 판매할 수도 있게 되었다. 넷플렉스로 영화를 감상하다가 중간에 멈추는 현상이 반복되면 소비자들은 빠른 속도록 제공되는 서비스로 옮겨 갈 수 있으니 인터넷 서비스의 지각 변동이 생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ISP는 케이블 티비처럼 웹사이트를 패키지로 묶어서 판매할 가능성도 생겼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접속하려면 두 웹페이지가 포함된 패키지를 구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빈번하게 접속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접속을 위해서는 추가 요금을 지불하게 될지도 모른다. 페이스북이나 넷플릭스처럼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회사들은 앞으로 상당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전망이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망 중립성”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포르투갈에서는 이미 인터넷 사이트들을 분리해서 패키지 상품으로 나누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인터넷 패캐지 상품 (캘리포니아 민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 Ro Khanna 트위터 캡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따라서 다른 패키지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염려는 속도에 차별을 둘 수 있게 되었으므로 큰 돈을 지불하는 대형회사들은 고속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개인이나 가정 혹은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느린 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기업들은 초고속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며, 중소기업,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그만큼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갈수록 온라인 판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인터넷 속도가 사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긋라이트(GoodLight)의 데이빗 켈리컷(David Callicott)은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온라인에서 파라핀이 들어있지 않은 초(candles)를 판매하고 있다.

그밖에도 재택근무나 원거리 사업을 하는 모든 사업자들과 직원들, 프리랜서들, 인터넷을 이용하는 프렌차이즈 가맹점 등이 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인터넷 속도가 저하되는데 따른 사업의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이 망 중립성 철폐의 가시적 효과를 당장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앞으로 인터넷 패키지를 구입하며 필요한 사이트만 선별적으로 구매해야 할 때가 곧 오게 될 것이라고 비평가들은 주장한다.

예를 들면,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버라이존이 그들의 자회사인 야후나 AOL에 특권을 주거나 구글을 차단하거나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정책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버라이존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구글 검색을 위해 추가 요금을 지불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야후 검색창을 이용해야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결국은 인터넷 사용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터넷 해킹 그룹 어네니머스(Anonymous)는 파이와 그의 협력자들을 해킹할 것이며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실수를 했는지 알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철폐 결정에 대해 법적인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뉴욕 주 검찰총장 에릭 슈나이더맨(Eric Schneiderman)은 연방 통신 위원회의 불법적인 망 중립성 철폐를 멈추기 위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밖의 16개 주가 소송에 동참할 예정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는 아직 계획이 없는 주의 검찰총장에게 소송을 촉구하는 전화걸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 검찰청 전화걸기 청원운동 (ⓒFacebook)

 

왜 정의의 문제인가?

이제 ISP 회사들이 자사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사이트들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인터넷 접속에 관한 정보를 검열하고 수집해서 정보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개방된 인터넷은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그룹들이나 소수 약자들에게는 자신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다. 그 동안 가려져 있었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불의와 불평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던 서민들,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소수자들, 제도적 법률적 문화적 차별에 고통 받던 약자들에게는 정의와 평등을 외칠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이었다.

억압받던 사람들의, 특히 미국에서는 유색인종들과 변방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려질 수 있게 했으며,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조직이나 기관을 세우는 데에도 일조 했다. 이 모든 일들이 개방된 인터넷과 망 중립성에 의지해 왔다.

앞으로 거대 기업이나 초대형 사업장들에서만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해지고, 평범한 서민들이나 저소득층 시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내 보내는 것이 점점 더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흑인들의 인권운동 중의 하나인 “BlackLivesMatter”는 간단한 헤쉬테그(#)로부터 시작돼 거대 운동으로 번져갔다. 성추행 경험을 공유하는 #MeToo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운동은 인종차별과 성폭행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피해자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회적 정의 운동이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퍼블릭 날리지(Public Knowledge)의 윌머리 에스카토(Wilmary Escoto)는 미네소터 경찰에 의해 총에 맞은 필란도 캐스틸(Philando Castile)의 예를 들며, 그의 여자 친구인 다이아몬드 레이놀즈(Diamond Reynolds)가 그 장면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그녀의 네 살 난 딸의 울부짖는 모습과 함께 내 보내 3백 2십만 명이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퍼거슨의 비무장한 십대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 경찰관 대런 윌슨(Darren Wilson)의 총에 맞아 사망하던 장면도 트위터를 통해 알려졌다. 역시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던 존 크로포드(John Crawford)가 오하이오의 월마트에서 총격을 당한 사건과, 7살 난 어린 흑인 아이가 자기 집에서 잠자던 중 경찰에 의해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 등 이 모든 것들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했던 인터넷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흑인들은 이 모든 사건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세상에 알렸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 버클리 시의 스타벅스에서 한국인 유학생 애니 안이 한 백인 여성으로부터 “한국어는 역겨우니 쓰지 말라 여기는 미국이니까 영어를 쓰라”는 등의 인종차별을 당한 사실도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 덕분에 삽시간에 전 세계로 알려질 수 있었고, 피해자와 한인 동포사회의 목소리를 직접 전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망 중립성 원칙에 의해 특정 매체나 검열을 거치지 않고도 개개 시민이 직접 대중에게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앞으로는 개인의 사연뿐만 아니라 거대 담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국도 인터넷 서비스 제공 회사들이 마음대로 특정 사이트를 차단할 권리를 가졌다면 지난 해 촛불 시위가 그렇게 뜨겁게 타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정원, 검찰, 군 사이버수사대까지 동원해 야당과 비판자들을 검열해내고 찍어내던 그들이 갖은 회유와 협박을 동원해 특정 컨텐츠를 차단하거나 퍼트리거나 혹은 특정 사이트의 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빠르게 하는 등의 조작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겨레 그림판 장경군 화백 "MB식의 무한경쟁"

이제 IPS 회사들이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 보다는 자사의 이익에 도움에 되는 정책을 세우고 상품을 개발하게 될 것이고,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사이트나 컨텐츠는 차단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유색인종들과 소수자들 약자들을 위한 배려는 점점 줄어들 것이며 오직 시장 경쟁의 논리만이 인터넷 서비스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사회 정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시장 경쟁의 원리는 언제나 거대 자본 집단과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고착화하는 합법적이고(?) 허울 좋은 수단이다. 문제는 시장 경쟁이 아니라 공정과 공평성의 원리다. 인터넷은, 일부 특권층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합법적인 모든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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