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처벌할 조항 없는 허술한 교회법
성범죄 처벌할 조항 없는 허술한 교회법
  • 백정훈
  • 승인 2010.04.05 2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구체적인 범죄 규정 없고 형벌 기준도 전무

목회자의 성범죄를 바라보는 교회 바깥 사람들의 시선은 무척 따갑다. 그렇지만 목회자를 지도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노회와 총회는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에게 관대하다.

기독교여성상담소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등 교회 내 성폭력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도 이를 지적한다. 기독교여성상담소 박성자 전 소장은 2007년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교회 내 성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고 했다.

서울 ㄷ교회 서 아무개 목사는 간통 혐의로 2006년 6월에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연회가 서 목사에게 내린 징계는 '근신'이다. 최고 1년 동안 회의와 성례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2008년에 성 추문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강 아무개 목사는 자신이 문제를 시인했음에도 제대로 징계가 내려지지 않았다. 강 목사가 속했던 예장합동 ㅎ노회는 성 문제가 아닌 학력 위조를 이유로 가입을 철회시켰다.

노회는 성범죄의 경우 명백한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가해자를 처벌하기 힘들다고 한다. 예장합동 ㅎ노회 서기 목사는 "피해자들의 증언만 가지고는 징계할 수 없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피해자들이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든 사례처럼 사회법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자신이 시인했는데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개신교 여성 단체들은 가해자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다른 이유를 지적한다. 징계의 기준이 되는 교단 헌법에 성 문제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명확한 형벌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교단 헌법에는 성범죄를 죄로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 예장합동 헌법은 범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인, 직원, 치리회를 불문하고 교훈과 심술과 행위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나 혹 사정이 악하지 아니할지라도 다른 사람으로 범죄하게 한 것이나 덕을 세움에 방해되게 하는 것 역시 범죄이다." 예장통합 헌법도 징계의 사유가 되는 죄목을 11가지로 정했지만, 성범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장고신, 기장, 기성도 마찬가지다.

감리교 헌법이 그나마 성범죄를 언급한다. 범죄를 규정하는 3조 13항에서 "부적절한 결혼을 하거나 간음하였을 때"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폭력과 간음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감리교가 개신교 교단 최초로 만든 '목회자 윤리 강령'에도 성범죄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

그뿐만 아니라 각 교단 헌법에는 성범죄에 대한 형벌 기준이 전혀 없다. 예장통합, 기장, 기감, 기하성은 견책, 근신 등의 징계의 종류는 정했지만, 어떤 범죄가 어떤 징계에 해당되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재판하느냐에 따라 징계의 종류와 시한이 들쑥날쑥하다. 애초부터 죗값을 묻기 힘든 형편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정운형 사무국장은 모호한 교회법이 문제를 키운다고 했다. 정 국장은 "목회자들은 교회 일을 사회 법정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교회법은 너무 허술해서 공정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죄목이 명확하지 않고 범죄를 포괄적으로 정의한다.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고 했다.

정 국장은 "목회자 윤리 규정을 만들고 교회법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평신도들이 노회나 총회를 불신한다. 교단의 권위가 통하지 않는 때가 찾아올 것이다"고 했다.

기독교여성상담소의 성폭력 예방 지침
 
교회 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회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목회자만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목회자 자신도 성적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고, 교인들도 목회자를 '주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우상화하면 안 된다. 각 교단도 성폭력을 다룰 수 있는 교회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 기독교여성상담소가 정리한 지침을 소개한다.

교회 / 교단이 할 일

1. 교회는 성폭력 피해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교회법을 제정해야 한다.
2. 교회법에 성폭력의 범죄 규정과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3. 각 교단은 성차별과 성폭력 예방 지침서를 만들고, 교회와 신학교에서 이를 가르쳐야 한다.
4. 각 교단은 성 윤리를 위한 목회자 자체 정화 기구를 설치, 운영하여야 한다.
5. 각 교단은 성폭력 피해자 치유와 보호를 위한 시설을 설치, 운영하거나 후원해야 한다.
6. 교회는 교회 내에서 행해지는 모든 성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성폭력을 근절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
7. 교회는 교인들을 위한 성교육(성폭력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8. 교회는 성에 대한 바른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고 교회가 이를 실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목회자 개인이 할 일

1. 목회자 자신도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홀로 심방을 하거나 밀폐된 공간에서 상담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다.
2.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배우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성적인 욕구를 부부 관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3. 목회자 자신의 성에 대한 가치관, 또는 여성관에 대해서 성찰해 보아야 한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하거나 욕구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지, 또는 성에 대해 지나치게 금기시하거나 남성들의 성적 남용에 대해 관용적이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4. 성적인 문제와 관련한 어려움이 생겼을 때 믿고 의논하고 처리할 수 있는 자원(선배 목회자나 전문 상담가)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5. 목회자의 성적 비행은 목회자의 권력 남용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인들이 할 일

1. 평소 자기주장을 분명히 하는 태도를 갖도록 한다. 불쾌한 성적인 접촉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다.
2. 상담이나 심방 시 목회자와 단둘이 있게 될 경우를 삼간다.
3. 목회자를 우상화하거나 절대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4. 성폭력은 성관계가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5. 평소 성폭력에 대한 충분한 예비지식과 대처 방법을 익혀 둔다.
6. 도움 받을 수 있는 상담소의 연락처 등을 알아 둔다.

* 위 내용은 기독교여성상담소가 발행한 <기독교인을 위한 성폭력 예방 지침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