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키우는 욕심보단 사람에 미쳐야'(?)
'교회 키우는 욕심보단 사람에 미쳐야'(?)
  • 최태선
  • 승인 2017.12.2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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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상] 광인 옥한흠

<광인 옥한흠>…'교회 키우는 욕심보단 사람에 미쳐야' - 한 기독교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먼저 광인이라는 말이 들어온다. 빛 光자 광인이다. 빛의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狂人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만큼 열정적이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좋은 제목이다. 그리스도인은 에베소서에서 보듯이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이다. 맞다. 그리스도인은 光人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빛은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화광동진의 빛이어야 한다.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뜻이다. 혹은 아예 티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연 이분은 어떤 빛이었을까? 수만 명 교인이 티끌이었다는 의미일까? 대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두 번째로 '교회 키우는 욕심보단 사람에 미쳐야'라는 말이 들어온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이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이 제목에서 말하는 교회는 무엇이고 사람은 누구인가? 이 제목에서 말하는 교회는 성서가 말하는 교회가 아니다. 어찌 성서가 말하는 교회를 욕심으로 키울 수가 있겠는가? 교회는 제자들의 공동체이다. 자기를 부인한 사람들의 모임인 그곳에 욕심이 끼어들 자리가 있는가? 그것은 단순한 일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일탈에 관심이 없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전진기지이며 복음의 모판이다. 그런 교회에 욕심을 갖다 붙이는 것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지독한 치기이다. 

옥한흠 목사

사람에 미친다는 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멋진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곳에서 사람은 높고 낮음이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다. 맞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사람에게 미친 사람들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제목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후임 목사인 오정현 목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자신의 교회 당회원들의 삼분의 일은 법조인, 삼분의 일은 교수, 삼분의 일은 의사라는 사실을 말하며 얼마나 멋지냐며 자랑하였다. 예수님이 관심이었던 가난한 자, 눈먼 자, 저는 자, 포로 된 자, 병자와 같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대비가 되지 않는가?

옥목사님은 설교에서 아무리 제자 훈련을 해도 꺼져가는 잿불 같은 자신의 교회 성도들을 활활 타오르게 하려고 조용기 목사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안수 기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도 수만 명 교회 목사인 자신이 다른 교회 목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안수기도를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며 교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셀프 해설까지 함께 곁들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도 각자의 몫에 맡기겠다.

나는 이분의 노력과 헌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분이 광인狂人이었음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분의 시대와 상황 속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한 목사임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목사가 되려는 목사후보자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이분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의 길은 낮은 곳을 향해 가는 예수님의 길이 아니라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정 반대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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