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참 싫다
나는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참 싫다
  • 최태선
  • 승인 2018.01.04 02: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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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상] 정교회와 이콘

오래 전 이야기이다. 목회자 영성수련회라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강사 중 한 분이 러시아 정교회 신부님이었다. 그분이 강의 전 삼위일체 성상을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것을 보고 수련회에 참석한 한 감리교 목사님이 항의하였다. 치우라고 소리를 지르며 강사에게 대들었다. 강사 신부님은 글쎄 그냥 한 번 들어보시라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만류로 그대로 두고 강의는 진행되었다. 소란을 피웠던 목사님이 중간에도 한 번 볼멘 불만을 터뜨렸지만 강의는 잘 끝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유대인들의 탈무드는 물론 불경이나 코란과 관련된 책들도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려고 노력했고 적어도 몇 권씩은 읽었는데 정교회의 서적은 읽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의 아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동에 있는 정교회 본당 주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주교님을 만날 때 개신교 목사에게 소개할만한 책을 하나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소개받아 사온 책이 <이콘신학>이라는 책이다. 그리고 왜 러시아 정교회 최신부님이 성상을 앞에 가져다 놓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교회는 이콘을 복음전달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해한다. 복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그것을 본 신자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감리교 목사님처럼 이콘을 우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같이 싸움을 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콘에 관한 이해가 동서방 교회 결별의 한 이유였다.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시몬 우샤코프, 1658년 그림, 좌측)과 그리스도의 얼굴이 찍힌 머릿수건을 들고 있는 성녀 베로니카의 이콘(사진:나무위크)

이콘신학을 읽으며 나는 불교의 마니차를 떠올렸다. 마니차 안에는 불경이 들어있다. 불경을 읽을 수 없는 불교신자들은 마니차를 한 번 돌리는 것으로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정말 어리석고 미신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미신 같은 행동이 실제로 신자를 변화시킨다. 그들을 경건하게 만들고 그들을 불교신자답게 만든다. 옳게 살려고 노력하고 자비심을 실천하려는 동기를 유발시킨다. 정교회의 이콘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담겨 있는 복음의 내용을 상기하며 복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콘이 마니차보다 한 단계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1960년대 중반 있었던 제2차 바티칸 종교회의의 결정사항이라는 걸 잘 모른다. 더욱이 그들이 사용한 성경이 라틴어 성경이고 그 이전에는 라틴어로 미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신자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성경은 문맹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책과 마찬가지였다.

이 사실을 안다면 정교회의 이콘이 훈민정음 서문의 ‘어리석은(여린) 백성’이라는 표현에 담긴 사랑의 역할을 한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친구의 아내는 정교회를 갈 때마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와 신자들의 온유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면서도 이콘이 우상이라 꺼림칙하다고 말한다.

나는 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기독교의 몰락을 예고하며 미래에 지속될 기독교가 동방정교라는 말을 한 이유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하지만 알면 알수록 교만해지는 사람들과 우상이라 여기는 이콘에 입을 맞추며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사람들이 나을까? 물론 가톨릭이 붙여준 이름이겠지만 나는 싸움만 하게 만드는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이 참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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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2018-01-07 05:15:21
바른글입니다. 글중에 나타난 한 목회자의 태도가 모든 개신교 목회자들을 대변할수는 없겠지만...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프로테스탄트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 생각합니다. 아이콘의 내용보다는 껍데기만 보고 이콘을 치우라고 하는 못배운 목회자...세례의 의미는 무엇인지, 성례의 깊은 뜻 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저 가벼움....기회가 있으면 정교회의 예배와 신학을 공부해 보면 그때야 깨닫게 될 자신의 무지함..안타깝네요.

정민영 2018-01-04 10:53:08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지 싶습니다. 최태선 님은 (그 용어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지금 순기능적 프로테스트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적 연속성을 거부하고 단절만을 고집하는 현대교회에 저항하신 거니까요. 이콘을 포함한 다양한 역사적 신앙표현들을 우상이라 정죄하면서도, 정작 우리안에 가득한 무형적 우상들("마음의 우상" 겔 14:3)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키우는 현대교회의 '영적 적폐'를 청산하고 이 시대 우리 몫의 개혁(프로테스탄트)을 꾸준히 감당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