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는 없고 협잡꾼이 넘친다
선지자는 없고 협잡꾼이 넘친다
  • 신성남
  • 승인 2018.01.10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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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침묵하는 교회

중세 교회는 선지자를 핍박한 교회다. 위클리프를 죽였고, 후스를 죽였고, 그리고 수많은 개혁자들을 죽였다. 성경을 읽었다고 죽였고 성경을 가르쳤다고 죽였다. 사제, 주교, 추기경, 그리고 교황 등 스스로 제사장이란 사람들은 많았지만 막상 선지자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이단으로 몰아서 불태워 죽였다.

유대의 왕과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세례요한을 죽였고 그리스도를 죽였다. 성전을 떠나지 않던 여선지자 안나는 아기 예수를 즉시 알아보고 감사하고 감격했지만, 같은 성전 속의 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오랫동안 관찰하고도 못 알아보았다.  

교회가 돈과 권력에 환장하면 하나님의 아들도 못 알아본다. 하물며 어떻게 선지자를 알아보겠는가. 교회가 맹신으로 타락하면 선지자가 사라진다. 만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데 그 바닥에서 무슨 선지자가 나타나겠는가. 어쩌다 선지자가 나타나도 도리어 박해하거나 죽일 뿐이다.

초기 한국교회에는 시대의 선지자가 많았다. 주기철, 김교신, 손양원, 그리고 장기려 등이 그런 분들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은 어떤가. 이스라엘의 엘리야 시기처럼 선지 학교(신학교)까지 도처에 세우고 직업 선지자를 양성한다고 난리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오히려 거짓선지자가 판을 친다. 교회에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적고 누가 바른 말을 해도 듣기 싫어한다. 입으로는 늘 성경을 말하고 예수를 노래하지만, 실상은 성경을 왜곡하고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

성직자라는 사람들조차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씀은 잘 가르치지도 않고 오로지 돈과 성공을 찬양한다. 그저 주일 잘 지키고 돈만 잘 바치면 그게 무슨 만복의 근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도한다. 그들에게 하나님나라는 저 멀리 있고 부귀영화는 언제나 눈 앞에 있다.

그래서 교회 헌금을 수억 또는 수십 억이나 횡령하는 목사가 출현해도 이젠 별로 놀라지 않는다. 그 덕분에 교인들 모르게 교회 돈을 5년 동안 무려 500억 원이나 가져간 목사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떤 장로들은 도리어 그걸 숨겨주고 도와준다. 맹신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정상적인 상식으론 도저히 소통이 불가하다.

심지어 목사도 사람이니 헌금 도둑질, 설교 표절, 학력 사칭, 문서 위조, 목회 독재, 성추행, 그리고 교회 세습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어차피 심판은 나중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니 우리 비천한 인간들은 그런 악행을 오직 사랑으로 덮고 침묵하자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그럼 도둑질 안 하고, 표절 안 하고, 성추행 안하고, 그리고 세습 안 하고 사는 그 많은 다른 목회자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은 사람이 아니고 무슨 희대의 성인이나 성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더구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알량하게 적용한다면 아예 경찰이나 법원이나 교도소도 모두 없애지 왜 세금을 낭비하나. 거짓선지자와 맹신도들의 논리는 사악하기 그지 없다. 아마 자신의 재산이 도적질 당하거나 자기 딸이 성추행 당해도 그렇게 태평할지 정말 큰 의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또 다시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 도대체 어찌 된 역사인지 돈 걷는 종교는 조금도 변한 게 없다. 오히려 돈 안 밝히는 성직자가 천연기념물처럼 보기 힘들다.  

개교회는 물론 노회, 연회, 총회, 그리고 기독교 연합단체까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썩었고 더욱 악취가 심하다. 누가 봐도 더러운 종교 협잡꾼들이 대형 교회의 당회장, 노회장, 감독, 총회장, 그리고 대표 회장을 차지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그들이 하는 일마다 악행이 아닌 게 드물다. 게다가 이런 부실한 사람들이 교회 돈을 이용하여 사회에서 상까지 받고 기독교 지도자 행세를 하며 개신교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나는 지금 모든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싸잡아 매도하는 게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건강한 교회와 순수한 목회자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상당수 교회는 이미 부패에 너무 중독되어서 그것이 일상화되었고 심각한 부패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른 말을 하다가 톱으로 죽었고, 세례 요한은 왕을 비판하다가 칼로 죽었고, 그리고 틴데일은 성경을 번역하다가 불로 죽었다. 그러나 다행히 오늘날은 바른 말을 해도 굳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 그런데 만일 약간의 불이익이 두려워 기독교인의 선지자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모든 백성이 다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로 오셨다. 따라서 그의 지체가 된 교회와 성도들도 동일한 직무를 지닌다.

이제 성도들은 단지 예배당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권리만 주장하며 기복 놀이에 몰두할 게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의로운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달콤한 설탕만 뿌리지 말고 바른 삶을 이끄는 진정한 소금이 되어야 한다.

선지자가 침묵하는 교회는 진리를 상실한 죽은 교회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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