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회를 보면 한국교회가 보인다
미국교회를 보면 한국교회가 보인다
  • 양재영
  • 승인 2018.01.18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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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새들백교회를 다녀와서...

[미주뉴스앤조이=양재영 기자] 한국의 미국에 대한 사회, 문화 등의 의존도는 절대적이라는 표현도 무색하다. 한국 유수의 대학의 외국계 학위자의 70% 이상이 미국계 박사라는 통계는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의 대부분은 미국 유학 출신자들이며, 교회의 예배와 목회, 신학은 유학파 목회자의 주도 아래 변해왔다.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는 목회의 모델들은 거의 미국교회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브루스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 같은 류의 책들이 한국교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하지만, 말랑말랑한 미국 목회자들의 처세와 성공을 위한 충고는 득보다 그 해악이 더 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류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 릭 워렌(Rick Warren)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다. 풀러신학교의 김세윤 교수는 릭 워렌의 신학은 ‘원시적 신학'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미국의 다수의 신학교에서 연구교재로 사용될 만큼 고평가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전통적 복음주의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복음주의를 개척했다는 찬사를 릭 워렌 목사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미주뉴스앤조이>는 미국의 현장 목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릭 워렌 목사가 시무하는 새들백교회를 찾아갔다. 그의 목회의 현장을 보면서 한국 교회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들백교회의 전경. 야자수 밑 파티오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독특하다 ⓒ <미주뉴스앤조이>

‘테마파크를 보는 듯한 착각’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레익 포리스트(Lake Forest)에 자리잡은 새들백교회를 방문하면 일단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어지간한 한국의 대학 캠퍼스 규모를 능가하는 교회부지를 둘러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돈을 밝히는 물질만능주의가 득세하는 지역이 남가주이다"고 비판했던 릭 워렌의 ‘사명의 10년' 캠페인 연설이 무색할 지경이다. 곳곳에 자리잡은 다양한 문화 체험 공간들은 마치 테마공원을 보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한다.

새들백교회는 캘리포니아 지역에 15개의 캠퍼스와 4개의 해외 캠퍼스를 두고 있다. 호주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캠퍼스를 확장하고 있는 힐송교회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그나마 새들백교회가 캘리포니아 외의 타주에 캠퍼스를 개척하지 않는 것은 나름 상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일수도 있겠다.

미국교회는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멀티 캠퍼스 확장이라는 트렌드가 자리잡은지 오래다. 교계잡지인 <아웃리치매거진>에 따르면 미국 100대 교회 중 75개 교회가 멀티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트포드종교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대형교회들이 평균 3.5개의 멀티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멀티 캠퍼스 설립은 한국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운영형태 등에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온누리교회, 은혜와진리교회, 사랑의교회 등은 미국교회를 능가하는 교세를 자랑(?)한다. 지나치게 비대해져가는 대형교회의 분산을 위해 멀티 캠퍼스의 불가피성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대형교회가 자신의 브랜드를 활용해 프랜차이즈를 확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가주 레익 포리스트에 자리잡은 새들백교회에서 주일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 <미주뉴스앤조이>
넓은 새들백교회에는 가족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 <미주뉴스앤조이>

 

“교회의 미래는 소그룹에…”

새들백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보면 한국교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미국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새들백교회의 예배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실용주의'이다. 미국도 예배 형식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경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교회에는 이미 미국식 ‘실용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우선 예배당이 아닌 넓은 캠퍼스 곳곳에 자리잡고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제법 쌀쌀한 캘리포니아의 아침 기운을 피하기 위해 야외 난로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파티오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아직은 낯설기만하다. 남가주 특유의 반바지에 편한 셔츠 차림은 양복과 정장이라는 권위와 형식에 갖힌 한국 교인들에겐 눈쌀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새들백교회의 예배는 아주 간단하다. 찬양과 설교, 그리고 간간히 보여주는 영상광고와 이벤트 소개 정도이다. ‘묵상, 찬양, 대표기도, 주기도문, 설교, 봉헌,…’ 등등으로 이어지는 예식 순서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도신경'을 예배순서에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할 필요도 없다. ‘모든 일들을 간단하게, 이해하기 쉽게, 적용하기 쉽게'라는 피터 드러커의 경영철학을 사사한 릭 워렌의 예배에는 ‘선택과 집중'이 분명하다.  

주차와 안내 봉사자들의 지나치지 않은 수준의 환대는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브로드웨이 수준의 조명과 영상 아래에서 진행되는 찬양팀의 인도는 이미 프로 급이다. 소파에 앉아 대담을 하거나 수백명의 은퇴 장병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등 설교의 방식도 자유롭다. 그렇다고 자유롭다는 것이 산만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배전에 받은 설교 요약지의 답을 찾느라 귀를 쫑긋대며 집중하는 모습은 수능을 앞둔 수험생을 연상케 한다.  

새들백교회의 ‘선택과 집중'은 소그룹모임에서 빛을 발한다. 약 6천개 가까운 소그룹들은 남가주 200여 지역에서 3만명 이상의 교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새들백교회는 4000개의 캠퍼스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평은 허언이 아니다. 소그룹의 내용은 단순한 성경공부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사회 구석구석의 필요를 채워나간다.

새들백교회의 한 관계자는 “소그룹 모임은 세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주 가정이나 직장, 심지어는 온라인을 통해 모임을 갖는다"라며 “두명 이상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찾아 스스로 만들수도 있다. 교회는 소그룹네트워크(small group network)를 통해 리더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남가주 레익 포리스트에 자리잡은 새들백교회에서 주일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 <미주뉴스앤조이>
새들백교회 교인들은 예배중 설교 요약문에 나오는 질문에 답하는데 열심이다 ⓒ <미주뉴스앤조이>
햇빛을 피해 야외 그늘에서 예배를 드리는 새들백교회 교인들 ⓒ <미주뉴스앤조이>

‘미국식 새로운 복음주의’

2008년 미국의 타임즈는 릭 워렌 목사를 표지인물로 소개하며 릭워렌 목사의 새로운 유형의 목회방식을 ‘릭 워렌 신드롬'이라고 표현했다. 20세기 복음주의 지배형태인 빌리 그래함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새로운 복음주의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빌리 그래함 식 전통 복음주의는 낙태, 동성결혼, 안락사 등과 관련한 개인적 보수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릭 워렌 식 새로운 복음주의는 빈곤과 인권, 지구 온난화 등의 사회적 이슈들을 복음주의의 중심 테마로 다루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보수적 남침례교단으로부터 신학을 배운 릭 워렌은 낙태와 동성애에 대해서는 전통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빈곤과 차별, 인권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개혁적이다. 2003년 아내인 케이 워렌과 함께 ‘새들백 에이즈 포럼'을 개최해 에이즈 문제를 복음주의의 이슈로 공식화 한 것은 이러한 그의 행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기도에서 불거진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릭 워렌의 ‘에큐메니칼'적인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새로운 복음주의의 천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복음주의가 과연 미래의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분분하다. 미국의 복음적 신학자인 마이클 호튼은 그의 저서 <미국의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를 통해 “예수는 상품이며, 죄인으로서 우리들은 소비자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상품을 포장하고 판매하는 사람들로 변질된다. 따라서 소비자들인 우리는 더이상 빚진 자들이 아니라 상품 구매자들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호튼은 ‘기독교 복음이 미국 문화의 옷을 입으면서 실용주의(pragmatism)의 시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새들백교회는 이러한 호튼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수 없는 교회이다. 어쩌면 호튼의 경고를 가장 잘 구현한 교회가 새들백교회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불식간에 한국/한인교회에 적지않게 스며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넓고 화려하게 펼쳐진 새들백교회의 전경을 둘러보며 문득 21세기 한국 기독교의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될 지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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