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회퍼의 시대를 살고 있나?
우리는 본회퍼의 시대를 살고 있나?
  • 신기성
  • 승인 2018.01.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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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ough Publishing House
이 기사는 소저너스(sojo.net) 2018년 2월 메거진에 실릴 칼럼이며, 소저너스 인터넷 판에 게재된 글이다. 저자는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아우구스부르크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 로리 헤일(Lori Brandt Hale)과 시카고 멕코믹 신학교의 기독교 윤리학 교수 레지 윌리암스(Reggie L. Williams)이다. (편집자 주)

[미주뉴스앤조이=신기성 기자] 기독교인들은 자주 역사라는 실험실에서 도덕적 지침을 얻곤 한다. 윤리적 어려움을 겪던 시기를 다른 이들보다 잘 살았던 사람들이나 공동체를 통해서 배운다는 의미이다. 기독교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던 시대에도 그리스도께 충실했던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얻기 위해 역사를 돌아본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두고, 본회퍼를 공부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본회퍼는 누구인가?

본회퍼는 히틀러 정권 초기부터 그들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저항했던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였다. 그리스도 중심의 평화 윤리를 지키며, 간디의 비폭력적인 정치적 저항을 소망했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글들을 썼던 그였지만, 결국 히틀러에 대항한 쿠테타에 가담하게 된다.

본회퍼는 그의 글에서 그 자신과 동료들은 “거대한 악의 무리들이, 빛의 형태로, 선의 모습으로, 역사적인 사명으로, 사회 정의의 탈을 쓰고 나타나 모든 윤리적 개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시대와 나라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실체에 대한 인식, 역사적인 위기, 그리고 그 나라의 희생자들을 위한 도움의 절박성 등을 담아내는 철저한 윤리적 분별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본회퍼는 “기독교인들은 정치적인 투쟁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만, 사랑에 대한 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나서 싸울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애를 통해서, 본회퍼는 기독교인의 신실함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사회와의 상호관계를 중요한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신학적 틀을 제공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감당해야 할 구속적 고난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단순한 종교와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구분했다. 종교는 신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인 반면에, 그리스도 중심 신앙은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육신 사건 안에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는 비종교적인 그리스도 중심 신앙을 강조했다.

본회퍼는 악이 선으로 가장하는 시대에, 고난당하는 사람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과 연대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목회자였다.

 

가해자들, 방관자들, 그리고 저항자들

우리는 지금 도덕성이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나라는 정치, 종교, 신분 문제 등으로 갈라졌다. 현 정부는 이런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 건설, 남미 이민자들과 무슬림들에 대한 인종 차별,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혐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멸시 등이 현 대통령이 쏟아내는 상징적인 증오적 발언과 분열적 정책들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그의 민족주의 슬로건은 백인 우월주의 자체가 이데올로기였고 통치 이념이었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욕망이다. 대다수의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으로 포장된 이 욕망을 공유한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트럼프 정부는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시키고, 중동으로부터 오는 난민들을 거부하는 정책들을 추진해 왔고, 군대에 있는 성전환자들을 위험에 빠트렸고, KKK와 신 나찌 주의자들에는 관대했으며, 평화적인 시위대는 적대시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시민들은 인종과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되고 차별받는 나라가 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

나찌 독일에서의 교회와 본회퍼의 상황을 돌아보는 것은 현 시대를 대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자는 말한다. 다른 모든 시대에 그랬듯이, 당시에도 가해자들과, 방관자들과, 나찌에 저항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데이빗 거쉬(David Gushee)는 말한적이 있다.

히틀러는 독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로써 아리안 족을 추앙함으로써 독일에서의 백인 민족주의에 불을 붙였다. 아리안 지배자 민족(Herrenrase, master race)의 개념은 이상적인 독일을 위한 이미지로써 가공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재정적으로 파탄 상태였으며 전쟁의 패배에 대한 죄책과 치욕을 감당해야만 할 때였다. 지배자 민족 아리안의 이상적인 그림은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핵심 사상이었다.

히틀러와 그의 조력자들은 이 이미지를 퍼트리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유럽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거나 몰살시키는데 까지 가게 된다. 나찌가 그 가해자들이다.

방관자와 조력자가된 교회

『카톨릭 교회의 간략한 역사』라는 책에서, 토마스 보켄코터(Thomas Bokenkotter)는 히틀러가 독일의 카톨리과 개신교회를 “국가 부흥 사업의 초석”으로 삼겠다고 맹세했다고 밝혔다. 개신교는 한 목소리로 나찌를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카톨릭은 1933년에 공식적으로 히틀러 제국과 바티칸 사이에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한, 나찌의 침입을 당하지 않고 목회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반대급부로 국가에 재정적, 정치적 지지를 보내게 됐다.

이 협정은 카톨릭 교회를 나찌의 공포 정치에 공모한, 공식적이고 집단적인 방관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1998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찌에 저항하지 못하고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과 다른 희생자들을 돕지 못한 과거에 대해 공식 사죄했다)

일요일 아침 독일 교회는 나찌 장교들과, 친위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생사를 가름하던 의사들로 가득 찼었다.

독일 교회로 불린 개신교의 일부는 방관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 많은 개신교인들은 히틀러와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명백한 지지를 보내고 이를 뒤받침한는 신학을 주장함으로써 가해자의 대열에 동참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말살과 나찌 독일에 만연했던 백인 민족주의를 지지했다. 그들은 나찌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으며 정부에 대한 총통의 권위와 교회 사이의 구분을 없앴다.

ⓒ patheos

고백교회의 저항

독일 기독교인들과 반대로 고백교회(the Confessing Church) 운동은 교회의 권위의 상징으로써의 히틀러를 반대하던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고백의 대상이라는 신앙을 선언했다.

본회퍼는 바로 이 고백교회에 속해 있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강조했지만, 본회퍼는 나찌 문제가 곧 교회의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는 유대 유산을 공공 영역에서 제한한 나찌 정부의 아리안 민족주의에 대항해 “교회와 유대인 문제”라는 글을 썼다.

본회퍼의 에세이는 교회와 국가의 권위에 대한 루터교의 오랜 이해에 기초한다.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지지는 단지 인도주의적인 이상뿐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신앙 고백에 관한 것이고,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이기도 했다.

1933년에 작성한 에세이에서 본회퍼는 국가가 정의와 질서를 지켜야 하는 의무에 충실한지 물을 책임과 권리가 교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이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그들을 도울 책임과 권리가 있다고 기록했다. 게다가, 교회는 국가가 법을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혹은 소홀히 적용할 경우에 그것을 저지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자면, “만일 어떤 미친 운전사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사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것이 교회가 감당해야할 직접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1년 뒤, 칼 바르트는 바르멘 고백이라고 알려진, 왜곡된 독일 교회의 신앙 고백을 정죄하고 고백교회를 세우는 기도가 된 "바르멘 선언"의 주요 저자가 되었다. 본회퍼는 저항 운동의 지속적인 지지와 함께 바르멘 선언을 환영했다. 본회퍼의 저항은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의 실체적 삶과의 구체적인 조우 가운데 형성된, 그리스도를 향한 신학적 헌신에 의해 주도되었다.

 

본회퍼의 신학

본회퍼의 초기 신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공동체 안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사상을 담고 있었다. 그에게 교회는 “공동체로써 존재하는 그리스도”였다. 기독교인의 신실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인 상호 관계가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내가 타인을 만나는 것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며,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윤리적 요구라고 했다.

본회퍼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진정 인간을 인간되게 하고 인간적이게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1930-31 년 사이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사회적 인종적, 민감성을 신학적 통찰에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온 평화주의자 쟝 라셰르(Jean Lasserre)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알버트 피셔(Albert Fisher) 등을 포함한 학생들과의 대화와 삶의 나눔은 그의 사회적, 정치적 견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독일로 돌아온 후 본회퍼는 독일의 “인종적 자부심”은 죄라고 선언하는 루터교 교리문답의 공동저자가 된다. “피와 토양”이라 외치는 백인 민족주의 선언을 활용한 독일의 민족 평등 전통(German Völkisch tradition, 독일 나치 점령지에서 인종적으로 독일계 및 독일과 가까운 아리안 족에게는 법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지만 열등한 민족들은 배제하는 전통의 의미한다. 이 피와 토양은 버지니아 샬롯츠빌에서 신나찌주의자들이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있다. 교리문답에서 본회퍼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라는 사도행전 17:26 말씀을 인용한 뒤, 백인 민족주의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진리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본회퍼 뉴욕 유니온신학교 시절, 세번째 줄 맨 왼쪽이 본회퍼 (ⓒ 에큐메니안)

이 시대에 물어야 할 질문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지 10년 후인 1933년에 본회퍼는 저항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강력히 지지하는 글을 썼다. 그는 이 글에서 묻기를 “누가 굳건히 서 있는가?”라고 하며 “그(녀)는 자신의 궁극적인 표준이 이성이나, 원칙, 양심, 자유, 덕목 등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신앙 안에서 순종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부름 받을 때 이 모든 것들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책임적인 사람이며 하나님의 질문과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이성, 원칙, 양심 혹은 덕목 등을 포기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이 악이 선으로 가장해서 나타나는 복잡한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본회퍼의 중요한 신학 사상 중 하나는 인간을 대리한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대리해서 행동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주장했다.

본회퍼의 삶과 사역과 죽음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고 묻게 한다.

이 사상은 신학적인 동시에 도덕적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독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사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도록 하려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을 본회퍼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되고 인간답게 되로록 하려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고 재해석했다.

본회퍼의 경우에, 이웃을 대신해서 행동하는 것은 강제수용소에서 고난당하고 죽어가는 그들의 이웃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형태로 드러났다. 따라서 나찌 정부를 바꾸기 위한 음모에 가담하게 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이런 백인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의 악을 그들의 신앙에 모순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다. 나찌는 기독교인들의 도움을 통해 힘을 키워갔다.

 

폭력이 아니라 연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가 지금이 본회퍼의 시대라고 부를 때 이것은 폭력적 저항을 요청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폭력은 답이 아니다. 본회퍼의 신학과 삶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본회퍼의 삶과 사역과 죽음은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묻게 한다. 폭력이 정당한지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우리는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소외시키는 사회, 정치 구조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사회적 책임을 축소하여, 교회 안으로 제한된, 일요일 아침의 공동체에서만 “좋은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우리의 이웃 그리스도를 섬기는 방식을 택할 것인가?

본회퍼의 삶과 사역과 죽음은 바로 이런 물음들을 물을 수 있게 해 준다. 요즘 같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가해자가 될 것인가, 방관자가 될 것인가, 저항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레지 윌리암스(좌)와 로지 헤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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