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가해자를 옹호하는 자비로운 교회
성추행 가해자를 옹호하는 자비로운 교회
  • 마이클 오
  • 승인 2018.01.20 0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추행 목사에게 지지를 보내는 멤피스 하이포인트 교회의 태도와 문제점

[미주뉴스앤조이(LA)=마이클 오 기자] 최근 불어져나온 멤피스 소재 대형교회 목회자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교회가 문제의 목회자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사건의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엔디 세비지 목사의 고백 <유투브 갈무리>

비극적인 사건과 더욱 비극적인 사후 처리

이번 사건은 멤피스 하이포인트 교회의 교육목사인 앤디 세비지가 20여년전 저지른 성추행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텍사스의 우드랜드 파크웨이 침례교회의 중고등부 담당 사역자였던 앤디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고등학생 줄레스 우드슨을 유인하여 성추행을 하였으며, 사건직후 사과와 함께 이 일에 대해 함구할것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핑턴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은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미투 (#MeToo) 운동에 용기를 얻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이메일을 보냄으로서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은 최근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캠페인으로서,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경험을 밝히고 알림으로서 피해자의 연대와 성범죄 방지를 도모하는 운동이다. 

줄레스에 따르면 앤디 목사는 자신의 이메일에 대한 어떠한 답장이나 직접적인 반응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가 앤디 목사의 소식을 들은 것은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온라인 블로그에 폭로하고 난 뒤라고 전했다. 아무런 답이 없던 그는 줄레스의 폭로 이후 갑자기 자신이 시무하고 있는 교회의 예배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밝히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고백을 통해 ‘자신은 그녀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제자훈련 그룹과 교회 스텝과 리더들에게도 사과와 용서를 구했으며, 교회의 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모든 절차를 밟았으며,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고 밝혔다. 

이 말을 전해들은 줄레스는 이러한 사과와 행동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사건 이후에 행했다고 하는 일들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건 이후로 절대로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교회는 그에게 나에게 절대로 이야기할수 없으며, 나도 그에게 이야기를 할수 없다고 말하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겉잡을수 없이 퍼지고 이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자, 앤디 목사는 지난주 자신의 사역에서 물러났다. 

 

황당한 교회의 반응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은 앤디 목사가 시무하였던 하이포인트 교회의 반응으로 인하여 더욱 커져가고 있다. 앤디 목사가 자신의 성추행을 고백하자 회중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었고, 이러한 장면이 고스란히 언론과 온라인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하이포인트 교회 서신 <하이포인트교회 웹페이지 갈무리>

이뿐만 아니라 하이포인트 교회의 담임목사인 크리스 콘리는 교인들에게 전하는 소식 (A Word For The Highpoint Family)을 통해 앤디 목사와 그의 가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편지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유감이나 피해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발견할수 없었다.  

 

쏟아지는 비판들

충격적인 목회자 성추행과 함께 가해자를 감싸는 교회의 태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휘튼칼리지의 교수인 에드 스테츨은 크리스챤니티 투데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명백한 성추행범죄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하이포인트 교회의 태도는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대신 가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가하였다.

그레이스(GRACE, Godly Response to Abuse in the Christian Environment) 재단의 설립자인 보즈 츠베지안도 CBN News와의 인터뷰를 통해 앤디 목사의 성추행은 우월한 권력과 권위를 바탕으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라고 규정하였다. 이번 사건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주어진 신뢰와 믿음을 깨어졌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회자의 과거를 인지하고도 안일한 검증과정과 무조건적인 옹호를 일삼는 하이포인트의 태도와 방침도 치명적인 문제라고 비판하였다. 

이 밖에도 이 소식을 접한 수많은 네티즌들은 피해자인 줄레스를 지지하고 위로하는 글들과 함께, 하이포인트 교회를 향한 비난과 성토를 쏟아내고 있다. 

네트즌들의 비판 <http://watchkeep.blogspot.sg/ 갈무리>

자신에게 중독된 교회

이번 성추행 사태를 대하는 하이포인트 교회의 태도는 오늘날의 교회가 가진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수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 비해 명백한 약자였다. 10대의 어린 여성이었으며, 가해자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수많은 교인들 중 한명이었다. 이에 반해 가해자는 우월한 위치와 영향력,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신뢰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희생시킨 강자였다. 

하지만 이런 권력의 불균형 가운데 생긴 범죄를 인지한 교회의 태도는 약자와 희생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위로와 회복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강자인 가해자의 입장과 행동에 대해서만 관심과 위로를 보내주었다. 

하이포인트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가해자가 자신들의 교회 소속이며, 피해자는 자신들과 관계없는 외부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이해할수 있다. 자신들과 맺은 관계와 거리에 따라 관심과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가 자신들이 맺고 있는 사적인 관계로 인하여 약자 대신 강자의 편을 들고, 약자를 소외시키는 행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제식구 감싸기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교회가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향한 감수성에 관한 치명적인 결함이 나타났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약자와 소외된 자들과 공감할수 없고, 그들의 삶과 아픔을 받아들일수 없는 교회의 삐뚤어진 내면이 드러난 것이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의 치명적인 결여는 단순히 일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오늘날 교회와 신앙 안에 내재된 장애이자, 태생적 한계에 더욱 가까운것이다. 왜냐하면 하이포인트 교회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는 조직의 생존과 성장의 강박에 짖눌려, 외부를 전혀 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조직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일이라면, 강자와 약자의 논리쯤은 쉽게 무시되고, 약자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채 소외되고 배재되는 구조가 오늘날 교회에 특징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보수성, 아니 수구성은 교회가 체제에 순응하고 세상의 권세에 발맞추어 걸어온 유구한 역사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교회 가운데 제국주의적인 정체성이 이미 오래전 부터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관계와 양상을 엄밀하게 살펴보는 일은 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이 진정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진 교회와 닮았냐는 것이다. 

적어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가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향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로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과 그의 뒤를 이었던 제자들과 사도들도 역사와 사회가 나눠놓은 계급적 특권과 토대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더욱 낮아짐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갔다. 하지만 약자에게 다가가고 그들과의 경계를 끊임없이 지워가며 하나가 되어 가는 삶과 공동체로서 교회의 정체성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의미없이 나부끼는 깃발 이상의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수구성, 조직의 논리는 결국 외부를 상실하고, 타자를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오늘날 교회의 특징중의 하나가 게토화라는 것은 결고 우연한 비극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가운데에서 경험할수 있는 것은 조직 그 자체에 대한 우상화와 충성의 강요이며, 계급적인 구조 가운데 낀 인간의 소외와 희생이다. 이번 사건에서 하이포인트 교회가 보여준 약자에 대한 무감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외부를 상실한 교회는 결국 약자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목소리들을 상실하게 되고 오직 강자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공허 가운데 외쳐지는 복음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복음일 뿐만 아니라, 도구적 복음이 되어버린다.  

교회의 진정한 정체성 상실과 조직의 논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교회가 부름받고 나아가야할 길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그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대한 강박은 필연적인 귀결일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교회내에서 신앙이란 광할한 바다 가운데 던져진 종이배처럼 지향점을 잃은채 떠내려가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나아가 이 종이배에 탄 사람들은 지독하게 사변적이고 피상적인 신앙과 삶에 중독될수 밖에 없다. 교회가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얻는 것은 바로 그 자신에의 중독인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상실된 정체성이 이러한 비극의 본질이며 교회가 겪는 문제의 원인이라면, 그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까? 관념적인 작업보다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아는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교회가 스스로 자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상과 함께 숨쉬고 살아감으로서, 자신의 외부와 타자를 받아들이고, 그 경계를 지워가는 실천이 먼저다. 이러한 행동으로 교회는 잃어버렸던 삶과 타자에 대한 감각을 다시 느낄수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새로운 삶과 하나됨으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상상할수 있을 것이다. 

비극은 항상 끔찍하고 절망스럽다. 하지만 그 비극적인 삶 앞에서 슬픔으로 무릎꿇기 보다는, 그 상황을 직시하고 분연히 일어서려는 비극에의 긍정이 이시대와 교회에 진정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진정한 회개, 깨달음과 돌이킴이 시작되기를 소망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