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잊은 명성교회 사태, 그 밑바닥은 어디인가?
부끄러움을 잊은 명성교회 사태, 그 밑바닥은 어디인가?
  • 최태선
  • 승인 2018.01.21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성교회 장로들, 전국노회장협회 성명서 항의 방문 소동을 바라보며

점입가경이다. 명성교회 장로들이 세습을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통합 전국노회장협의회 회장 목사의 교회를 찾아왔다. 명성교회 세습의 본질이 맘몬 숭배 영성,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에 있다며 김하나 목사가 명성교회 위임목사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에 항의하기 위함이란다. 명성교회 수석 장로는 "성명서 내용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왔다. 우리도 편한 마음으로 오지 않았다"고 했고 함께 온 다른 장로는 "전국노회장협의회 회장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느냐. 일개 노회장이 전 총회장(김삼환 목사)이 시무하는 교회를 비판할 수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모습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며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는 폭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이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성전청결사건을 들고 나온다. 예수님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나는 구차하게 예수님이 하신 행동이 폭력이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예수님도 순간적으로 폭력적이 되셨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폭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나는 이 사건을 화평케 하는 사람인 하나님의 아들들도 순간적으로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예수님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셔야 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너무 분노가 치밀어 폭력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 폭력이 치명적이지 않았고 계속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시다. 나는 예수님의 이 사건을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온유함이 가장 승했던 모세도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놀이 앞에서 너무 화가 나서 참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거룩한 돌을 집어던졌다. 이보다 더 참람한 일이 있겠는가. 아무리 화가 나도 모세는 그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내팽개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문제 삼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는 폭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이고, 예수님은 그 나라의 왕이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분은 폭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이어야 할 하나님 나라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똑같은 폭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때로 실패하는 것이 인간이다. 역으로 인간이기에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세습철회를 요구하며, 또는 세습철회를 지지하며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폭력(꼭 물리력이 아니더라도 힘과 권위와 같은)이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나 역시 때론 사나워지지만 사나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처럼 모순인 것은 없다. 사도 요한의 말처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지금은 서로 사랑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