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는 알고 개신교는 모르는 '진짜' 회개
서지현 검사는 알고 개신교는 모르는 '진짜' 회개
  • 지유석
  • 승인 2018.02.02 15:0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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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밀양] 떠올리게 했던 서지현 검사의 고발 동기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내부고발이 전방위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용어정리부터 하고자 한다. 서 검사는 29일 JTBC뉴스룸에 출연해 2010년 장례식장에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자신에게 가한 성추행 사실을 털어 놓았다.

서 검사의 고백 속엔 안 전 국장의 범행은 물론 검찰 조직의 민낯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서 검사의 고백은 범죄에 대한 고발이자 검찰 조직 내부의 치부를 알린 내부고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론 '내부고발'이라 적고자 한다.

서 검사의 내부고발은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에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서 검사는 JTBC 뉴스룸 인터뷰 말미에 자신이 고발에 나선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마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2007년작 <밀양>을 떠올렸다. 나 역시 그랬다. 오래 전 영화이어서 줄거리를 살짝 언급하려 한다.

▲ 서지현 검사의 내부고발은 영화 <밀양>을 떠올리게 했다. ⓒ 시네마서비스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신애는 남편을 추억하고자 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내려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고향에서 유괴범의 손에 아들을 잃는다. 신애는 한동안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우연히 교회를 찾게 된다. 그곳에서 위안을 얻은 신애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던 차 신애는 큰 결단을 내린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교도소를 찾는 날, 함께 신앙생활하던 성도들은 신애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신애는 유괴범을 만나보고 더 큰 충격에 빠지고야 만다.

유괴범은 너무나도 환한 모습으로 신애 앞에 나타난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너무나 너무나 평안한 가운데 생활한단다. 자신이 유괴해 살해한 아이의 엄마가 왔음에도 가해자는 너무나 당당하다.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하나도 없다. 이런 살인범의 모습에 신애는 그만 넋이 나가고, 그때부터 깊은 회의에 휩싸인다.

용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교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영화 <밀양>은 신애의 고통을 통해 '용서'가 잘못 이해되고 적용됐을 때, 용서가 하나님의 은총이기는커녕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그린다. 이런 이유로 <밀양> 개봉을 전후한 시점에서 많은 교회에서 이 영화를 주제로 한 설교가 이뤄지기도 했다.

'용서'라는 이름의 '폭력'

앞서 용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교리라고 적었다. 성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제자 베드로는 예수에게 형제가 잘못을 했을 때 몇 번 용서해 줘야 하냐고 묻는다. 이때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 마태복음(공동번역) 18:21~22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교 교회는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감싸줄 것을 신도들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인간이 본디 불완전한 존재라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용서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죄책고백이다. 한국 교회, 특히 개신교 교회는 바로 이 점을 오해해 신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죄책고백이란 말 그대로 죄가 있으면 그 죄를 드러내라는 의미다. 영화 <밀양>의 유괴범이 진심으로 용서를 받으려 했다면 절대자 하나님에게 앞서, 신애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게 순서다. 그러나 가해자, 그리고 신애와 함께 신앙생활 했던 성도들은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애는 다른 성도들에게 마저 날을 세우기에 이른다.

현실이라고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갈등이나 분쟁이 불거졌을 때, 특히 가해자가 목회자나 장로 등 교회 내 권력자의 위치에 있을 때 무조건 용서하고 덮으라고 종용한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돌로 치라"는 예수의 말씀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안태근 간증, 완벽한 <밀양> 실사판

안태근 전 국장이 바로 이런 사례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서 검사의 내부고발이 있고 난 뒤,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가해자가 2017년 10월 양재동 온누리교회에서 간증한 영상이 올라와 빠르게 확산됐다.

안 전 국장은 검찰 조직 입문 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법무부 정책기획단장·대검 정책기획단당·서울서부지검 차장·법무부 인권국장 등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알짜' 요직만 거쳤다. 

그러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 후배 검사들과 가진 만찬에서 돈봉투를 건넨 정황이 드러나면서 면직 처리됐다. 간증하던 안 전 국장은 자신이 징계를 받은 걸 억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간증을 이어나가던 안 전 국장은 마지막에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의 간증 영상. 누리꾼들은 이 영상을 부지런히 퍼나르며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되물었다. ⓒ 온누리교회

"성경 말씀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찬송과 기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경말씀을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저 혼자 힘으로 성취했다고 생각한 제 교만에 대해 회개하며 저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안 전 국장이 눈물까지 뿌리며 신앙 체험을 고백했지만, 이는 명백히 거짓이다. 진실로 예수의 거룩한 사랑을 느꼈다면 자신의 성추행 행각으로 인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서 검사를 가장 먼저 찾아가 잘못을 털어 놓고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안 전 국장은 비난여론이 들끓는 와중임에도 "오래 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다"면서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접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다분히 면피성 해명을 내놓았다.

서 검사가 종교를 갖고 있는지는 아직 파악을 못했다. 그러나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서 검사가 오히려 용서의 복음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안 전 국장의 위선적인 신앙체험 보다, 아래에 다시 인용할 서 검사의 증언이 진정한 용서의 복음을 일깨우고 있어서다.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땅의 교회,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죄악은 죄책고백 없는 용서의 복음 뒤에 가려져왔다. 그럼에도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목사들이, 그리고 성도들이 너무나도 쉽게 용서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이 같은 용서의 교의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욕보이는, 말 그대로 신성모독이다.

지금은 오히려 교회 밖에 있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 같다. 손석희 앵커는 1월 31일 JTBC '뉴스룸 - 앵커브리핑'에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범죄, 그리고 구약성서 <여호수아>서 7장에 기록된 아간을 언급하며 한국 개신교에 만연한 값싼 용서를 예리하게 갈파했다. 또 앞서 적었듯 서지현 검사는 교회가 왜곡해 이해하고 있는 용서의 복음을 제대로 일깨워줬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서 검사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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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2 2018-02-04 05:41:12
비난의... 댓글을 다는 이들의 사생활을 언론이 공개한다면 동일하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 피해자들과 과거의 추행들이 드러날 것이다. 앞으로 심판대에서 일어날 일이 그것일 것이다. 흔히들 사회적 범죄(Crime)와 성경의 죄(Sin)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사회적 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사회적 처벌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신이 살아계시다면 인간의 창조자요 주인이시며, 죄를 증오하시는 신 앞에 지은 죄악들은 신께 회개를 구해야 한다. 그로 인해 신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하며, 동시에 신의 표징인 타자들, 즉 내가 아닌 '이웃'에게 역시 동일한 용서를 구해야 신적 회개가 컨펌을 받게 된다. 사회적 범죄는 사회법으로 대가를 요구하고 처벌하면 된다. 더 큰 용서의 주체이신 창조주에게 회개하는 일은 그와 별개로 또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 회개 한 것을 이중인격이라 비난하면 안된다. 오히려 사회는 사회적 처벌을 받은 자들을 공평하게 대가를 치른 자들로 대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무슨 엄청난 용서의 주체가 된 것처럼 사회적 대가를 치뤘는데도 불구하고 주홍글씨를 붙이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않다. 그 많은 단계들 중 안검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개했으니, 이제 사회적 범죄가 있다면 당당히 그 대가를 치르고, 신의 메타포인 피해자 이웃에게 사과를 하는 단계가 남았다. 기다리고 지켜 볼 일이지, 아직 그 이전 단계에서 서검사가 한 말에 감사의 뜻까지 표현할 것은 아니다. 그녀 또한 그녀가 한 용서의 정의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치부를 드러낸다고 그들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진실 규명을 요청한다고 그들이 진리는 아니다. 정의를 외치는 자들은 항상 그들이 외친 정의에 의해 불의한 자임이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것을 정치계에서 많이 보지 않나. 기독인들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지만, 굳이 불필요한 감사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의견1 2018-02-04 05:26:11
밀양이란 영화의 살인자인 학원장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볼 때는 하나님께 용서 받았으니까 당신에게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신애가 잘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서 자신의 신앙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다. 학원장의 표정은 신애에게 전혀 미안한 감정이 없는 철면피의 표정은 아니었다. 이미 마음에 학원장을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신애는 피해자인 자기 외에 다른 존재가 먼저 용서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지, 그 학원장에게 분노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용서의 유일한 주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용서의 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영화 밀양의 상황과는 비슷하지만, 글쓴분의 이야기처럼 완벽한 동일 스토리는 아니다. 안검사가 하나님께 회개했다고 한다. 진실 여부는 하나님만 아시고, 차후 그의 삶을 통해 확인되어질 것이다. 서검사가 지적한 대로 피해자인 자기에게 사과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안검사는 어렵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서검사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응분의 처벌도 감내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의 길일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 아닌가? 용서해줄 테니 없던 일로 하자신게 아니라 그 죄과를 본인이 지고 죽음으로 대속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길을 갓 세례 받은 자에게 온 국민이 언론을 통해 요구하는 것도 그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 막 신앙을 가졌는데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쩌면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대가가 있을 것이다. 힘들겠지만 온누리 교회에서 피해자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잘 권면과 인도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과 댓글들 처럼 과거가 있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대표 간증을 시켰다고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지 못하다. 왜냐하면 세례는 그보다 더 악한 자에게도 회개의 징표로 주는 것이다. 비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