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밟고 일어서는 교회
여성을 밟고 일어서는 교회
  • 마이클 오
  • 승인 2018.02.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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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첼 거드리 칼럼 “여성을 희생시켜 세워진 조직은 그들을 해방시킬수 있나?”
미국의 미투운동 (#METOO)을 계기로, 최근 검찰 조직내 성추행과 조직적 은폐 시도가 폭로되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고질적 문제점과 희생자들에 대한 지지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이러한 사회적 각성과 움직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수없이 일어나는 교회내 성범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과 해결, 그리고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소저너에 기고된 네이첼 거드리 목사의 비판과 제언은 눈여겨볼만하다. 자신의 칼럼을 통해 교회내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변화를 위한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달 초, 뉴욕타임즈지에서는 멤피스 소재 대형교회의 목사인 엔디 세비지가 회중 앞에서 서서 자신이 청소년 목사였을 당시 젊은 여성과 함께 일어난 후회스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엔디 세비지 목사의 고백 <유투브 갈무리?

그의 고백은 이 사건의 주인공인 여성이 자신이 청소년 시절 다니던 휴스턴의 교회에서 당한 일을 폭로한 바로 다음날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외딴 장소로 유인되어 구강성교를 할것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폭로에 대해, 세비지의 설명은 매우 모호하며 각본에 따라 짜여진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희생자가 성추행으로부터의 회복과 치유,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할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비지는 이 고백이 있은 후 회중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기사에서는, 세비지와 동료 목회자들은 그의 추행에 대해 ‘죄’라고 이야기하였으며, 내부적으로 ‘처리’할것을 선택하였다. 이 ‘처리’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처리’가 법적인 절차를 밟는것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피해자 쥴스 우드슨에게 침묵할것을 요구하였다. 특별히 이 교회의 담임목사는 그녀에게 자신에게 저질러진 ‘죄’ 앞에서 조용히 있을것을 계속적으로 지시하였다고 한다. 

“여성을 밟고 일어서는 어떠한 공동체도 그들을 구원화고 회복하는 주체가 될수 없다. “

미투운동 (#METOO)의 시작부터, 우리는 수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성범죄의 경험을 폭로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어떤 여성들은 강요에 의해 침묵을 하였고, 다른 여성들은 직장과 관계, 그리고 심지어는 조직의 체면때문에 침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이 운동과 이 순간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 성추행 가해자가 기립박수를 받고, 추행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그를 계속 고용하고 있다. 우리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회 내부에서 생기는 복잡한 문제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신학들에서부터 뿌리쳐 나온다고 믿는다. 우리가 가진 신학은 남성에게 더욱 많은 권력을 부여한다. 이것은 신은 남성이며, 그 신이 우리의 공동체와 가정과 교회를 남성 아래,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는 지극히 여성혐오적인 신학에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와 기도 가운데 사용하는 인간중심적인 언어 가운데 지배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신학들은 여성들이 고난과 순종의 운명 가운데 머물러야 하며, 그 가운데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며, 여성들이 더욱 적게 불평하면 할수록, 우리의 가학적이고, 부조리하며, 죽음을 야기하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쩔수 없는 상황을 더욱 잘 견딜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신학은 죄는, 비록 다른 희생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이며, 개인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합쳐져 교회 내에서 고질적이고도 실마리를 찾을수 없는 성폭력 문화를 조장하는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 낸다. 

여성주의 설교자로서, 나의 연구는 어떻게 우리의 설교가 이런 악질적인 조건을 약화시키고, 강단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낼수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미투운동 (#METOO)은 우리의 신학들에 내재한 위험성에 관한 성찰에의 요구이며, 이러한 중대한 숙제는 이미 윌 게프니나 모니카 콜맨 같은 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것은 또한 교회가 성범죄로 인하여 오염되기 시작하였을때 어떻게 구조적이고도 체계적인 책임을 다 할것인지에 대한 성찰 또한 요구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구조적이고도 체계적인 방안들에 대해 세가지 실제적인 제언을 주고자 한다. 이 제언이 절대로 충분한 것이 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이 제안들이 식탁과 회의실 등에서, 여성들에게 더욱 안전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대화의 시작점은 될수 것이다. 

<출처: 구글이미지>

1. 권력을 해체하라

직무의 한계에 대한 일반적이 교육과 더불어, 교역자들은 그들의 독특한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대한 포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파멜라 쿠퍼 화이트는 그녀의 책 ‘다말의 외침: 여성을 향한 폭력과 교회의 대응’에서 목회자들이 저지른 성범죄에 대해 광범위하게 적어놓았다. 그녀는 이러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권력 불균형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하였다. 

교회는 목양과 상담의 한계를 깨닫고,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제도를 개발해야한다. 훈련을 받지 않은 목회자들에게 성폭력의 희생자들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 이후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필요를 알아차리고 대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총체적인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2. 내부 조력자들을 지정하라

몇해전에 나는 지역의 성폭력 사건 전담 센터를 통해 성폭력 희생자 지지자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다양한 상황 가운데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어떻게 도와줄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다. 도움은 단순히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에서부터 그들을 병원으로 데리고가서 성폭력 피해 사후 처리를 돕는 역할까지 다양하다. 이후로 나는 학교와 교회, 그리고 심지어는 사교 모임에 가서도 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교회에서는 성폭력 신고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목회자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폭력과 위험이든 사법기관에 알려야할 의무가 있으며, 특별히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 관한 사건들은 더욱 막중한 신고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도움이 되는 주의사항은 되지만,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이러한 것들은 기대에 머물고 만다. 만약에 성폭력 신고자를 지정할수 없다면, 누군가 안전하고, 능력이 있으며, 또 피해자들을 위한 조력자 역할을 할수 있는 사람이라도 지정해야 한다. 이 조력자는 희생자를 도와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일을 이끌어나갈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력자는 주일 아침과 같은 바쁜 시간에도 쉽게 찾아볼수 있어야 하며, 주중에라도 희생자들이 언제든지 찾아가 안전하게 상담하고 도움을 구할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희생자를 위한 조력자 문화를 만드는 것은 희생자들로 하여금 소외와 수치를 딪고 일어서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치유와 정의를 다시 세울수 있도록 용기를 줄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다. 

 

3.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라

교회는 성폭력 가해자를 열리고 투명한 절차를 걸쳐 밝혀야 한다. 가해자가 자원봉사자이든, 집사이든, 부목사나 담임목사이든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른 사역지로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투운동이 가르쳐준 중요한 교훈중의 하나는 성폭력의 상처는 침묵 가운데 더욱 곪아 들어간다는 것이며, 가해자는 오히려 은밀한 보호망 가운데 보호와 지지, 그리고 면책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침묵과 비밀의 이중함정을 깰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개하는 것이다. 

성범죄의 결과로 해당 가해자를 공개시키는 책임있는 절차는 피해자로 하여금 침묵을 깨고 고통스러운 피해사실을 알려야하는 부담감으로부터 해방 시켜준다. 이러한 절차를 확립하려면, 해당 공동체가 가해자와 연약한자들과 거룩한 연대위에 함께 서서, 책임감있게 범죄를 알리고, 이러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공개절차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실행되는 동안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 있어야 되며, 범죄사실이 규명되면 해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피해 여성으로 하여금 그들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와 고발이 중대하게 받아들여질것이라는 명확한 메세지를 보낼수 있다. 

미투운동 <출처: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542>

그동안 교회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여성들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희생당하여 왔으며,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쉽게 무시되도록 결정되었다. 이러한 태도들이 가해자를 지지하게 하게 여성을 향한 폭력이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미투운동 (#METOO)과 같은 캠페인은 우리들에게 여성을 희생양 삼아 세워진 어떠한 공동체도 그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킬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숙제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리고, 교회들은, 제발 미투운동 (#METOO)과 같은 기회는 곧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 이후로 찾아오는 Time’s Up 운동과 같은 경고 앞에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해야 할것이다. 

(원문출처:https://sojo.net/articles/can-institution-built-backs-women-be-one-liberate-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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