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지킬박사와 하이드
교회 안 지킬박사와 하이드
  • 이상명
  • 승인 2018.02.26 0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회세습과 교회와 목회자의 욕망
이상명 미주장신대 총장

“인간이란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 누군가는 욕망을 키우고 키워 하늘까지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데 누군가는 세속적 욕망을 포기한 채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워낸다.“ 영성가이자 인문학자 조현은 그의 책 《그리스인생 학교》에서 이렇게 밝힌다.

인간 창조 후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엄명도 인간 안에 요동치는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다. 유사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판도라 상자'로 유명한 판도라는 제우스의 심판에 의해 창조됐다. 아름다운 외모와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신적 명령을 어기고 여는 바람에 그 속에서 인류의 운명이 될 모든 죄악과 재앙이 튀어나왔다. 욕망에 의해 추동된 호기심이 부른 재앙이었다.

계시록의 저자는 종말론적 현상의 하나로 사람의 영혼조차 매매 대상이 되는 현실을 예로 들면서 개탄한다(계 18:13).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마다 맘몬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주인 노릇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 공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맘몬과 벗한 끝없는 욕망의 구렁이가 문제다. 우리 사회는 욕망과 비움 사이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아니, 욕망과 절제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져 온갖 탐욕의 노예로 정신적, 영적 불구가 되어 가고 있다. 성적 호기심으로 촉발된 욕망으로 인해 열지 말아야 할 동성애 상자를 열었고, 신적 영역에 도전하듯 하나님이 만드신 유전자를 맘대로 조작하기도 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듯 자신이 선과 악을 임의로 결정하는 주체가 된 것처럼 교만하게 굴기도 했다. 그 결과는 우리 인류가 앞으로 떠맡아야 할 것이다.

사회만이 욕망의 공간은 아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뒤로 돌아서서 맘몬의 노예로 살아가는 교회 안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없는가. 목회세습은 목회자가 욕망과 비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욕망에 백기를 드는 일이다. 그것은 이제껏 지상에서 쌓아올린 물적 토대와 인간적 영광을 영속화하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교회 안팎으로부터 신랄한 질타를 받으면서도 목회세습을 강행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사유화하는 프로세스에 이미 깊이 들어온 것이다. 이는 교회의 소유권과 주재권을 주님에게서 찬탈하는 반신주의적 행위고 인본주의적행태다. 세습만이 교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하여 모든 신실한 신자들이 지체가 되어 유기적이고 신령한 몸을 유지하도록 도우는 분이 성령이시다. 지나치게 인위(人爲)로 짜임새 있게 운영되는 교회에서 성령은 과연 어떻게 역사하실까. 이런 인위의 극치가 바로 목회세습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인위가 판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현장에서도 현존하고 역사하시는지 묻고 싶다.

목회세습은 교회와 목회자의 욕망의 결정체다. 한국의 대기업들을 일으켜 세운 주역들의 7, 80년대 신화가 한국 교회에 여전히 깊게 드리우고 있어 개탄스럽다. 대형 교회를 세우고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고 고백하지만 그 고백과는 달리 목회세습을 통해서라도 영광의 자리에 머무르고자 하는 목회자의 실상을 보며, 인간 속에 깊게 뿌리내린 욕망의 강하고 질긴 마력에 놀라게 된다. 물신주의라는 바벨론에게 포획된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목회세습이다. 하나님 대신 맘몬이, 성령보다는 인위가, 그리스도의 몸보다는 목회자의 가속(家屬)이 주인 노릇을 할 때 공교회성과 거룩성의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는 무너지고 만다.

목회세습은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가나안’ 성도들, 교회를 이탈하려는 청소년 세대들, 그리고 타종교로 개종하려는 교인들의 숫자를 계속해서 증가시키는 데에 크게 일조할 것이다. 이렇듯 목회세습은 교회 생태계의 음습한 곳에서 자라 공교회성을 해치는 독버섯과 같이 자라고 있다. 이 독버섯을 뿌리 뽑지 않고서 우리는 다음 세대 교회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회의 희망을 논하기 전 교회 생태계 안에 자라고 있는 독버섯과도 같은 목회세습부터 정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상명 목사 /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