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본 통일의 염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본 통일의 염원
  • 권영석
  • 승인 2018.05.03 09:3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영석 목사 특별 기고

갈라진 슬픔과 고통의 역사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한 겨레 의식이 점점 옅어지더니 급기야, 서로를 적성국가로 간주하게 된 지가 제법 된 듯합니다. 구미 열강의 식민지 "정책"(피식민지국 처지에서 보자면, 이런 것을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을 모방하고자 과욕을 부리던 일본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조선은 아마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대륙 진출의 길잡이 역할에 딱 들어맞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던 한반도는 섬나라의 불안정한 지리적 소외를 단숨에 극복하게 해 줄 수 있는데다가, 장구한 역사 속에서 문화적으로도 공통분모가 많았던 터라 '황국신민'이란 호칭 아래 심리적인 통합조차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였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은 당시의 이런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고 진하게 입음으로써 상처투성이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하겠습니다.

<http://axed.nl/noord-korea-steelt-van-zuid-korea/>

허리 잘린 국토가 보여주듯,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극심한 고통과 아픔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만 해도 한반도에 분포된 자원들을 보면 남북한이 상호보완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었겠으나, 왕래는 물론 교역까지 완전 차단되면서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결핍을 벌충하기 위해 별도의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했습니다. 나아가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듯이 생이별을 당한동포들의 눈물과 회한의 깊이를 생각하면 그 아픔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남과북의 장벽을 넘어 그리운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가족의 정리를 회복하기위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돈으로나 빽으로나 또 그 어떤 것으로도 가당찮은 얘기 아니었습니까? 전후에 실향민들이 서러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북녘 땅에서 가장 가까운 군사분계선 인근인 속초 지방에 대거 정착하였었다 하니,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정도가 전부였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왜 이런 슬픔과 아픔을 겪어야 한단 말입니까? 같은 동족끼리, 같은 가족끼리 생이별을 당하고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살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하였던 것입니까? 당시 조선말의 국운이 기울고 국력이 쇠약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째서 전범국가인 일본을 두 동강내지 않고 한반도를 두 동강 내어 함부로 선을 긋고 장벽을 치게 되었던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구미의 소위 선진 문화를 자랑하던 이들의 생각과 분별력이 이다지도 얄팍하여 결국 한반도와 우리민족에게 무자비한 짓을 저지른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만일 우리를 전범 국가인 동서독의 처지와 동일선상에서 견주어 얘기한다면, 이는 매한가지로 무지한 역사의식의 소치가 될 것입니다

<https://namu.wiki/w/남북%20이산가족%20상봉>

게다가 서러움을 당한 피해자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불쌍히 여기기는 못할망정 서로를 원수로 간주하여 총부림과 칼부림을 주고받았으니, 이런 '설상가상'은 또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참으로 우리의 근대사는 박복하다 못해 기구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피식민지 국가들이 독립 이후 한 국가 내에서 서로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피차 간 이해차로 인해 갈등이 증폭하고 권력의 암투가 진행하여 내전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왕왕 있긴 하지만, 우리는 단일 민족, 단일 언어, 단일 문화를 지닌 한겨레끼리 이런 끔찍한 살육을 경험하였으니 그 트라우마는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흉측한 재앙의 족쇄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좌우의 대립의 전열에 섰던 자들이 그나마 식자층이었을 터, 그들의 리더십이 남긴 것은 번영과 복지가 아니라 더 많은 상처와 아픔뿐이었으니, 이제는 그 누구라도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염치없어서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런 공백을 이용하여 친일 부역자 같은 기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재벌과 결탁하여 국정을 농단하여 왔으니 그야말로 혼란도 이런 혼란이 없었던 것입니다. 면면히 이어오던 민초들의 3.1정신이 5.18과 6.10 등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촛불민심으로 발화하게 되었으니, 이제야말로 우리 민족이 깨어날 때요, 역사다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라 하겠습니다. 남북화해를 넘어 남북통일을 이루는 일은 사실 우리의 역사적 과업 가운데 으뜸가는 과업이지만, 그 동안 먼 길을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독특한 정황으로 말미암아 이 중차대한 과제는 계속하여 뒷전이 되어 왔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분단의 현실이 생뚱맞게도 도리어 기회주의 정권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선거 때만 되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패악한 색깔론과 북풍론이 시사하듯이 소위 출세한 지도자들이 굴리던 잔머리는 통일을 점점 더 요원하게 만들고 분단을 고착시켜 왔던 셈입니다.

다시 꿈꾸는 하나, 화해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겠습니다만,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의 염원이 이제 두 동강난 이 민족, 그동안 [부끄러운] 정체성을 차라리 숨기고 살아야 했던 우리 겨레를 다시 하나로 화합하고 형제애와 동포애를 맘껏 나누고 누리도록 하는 새역사의 전기를 마련하는 '신호탄'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촛불 민심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바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길을 닦는 일이었다 하겠습니다. 남북 간 동포들 사이의 격차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남한 내에서도 서로 간에 위화감과 소외감을 극복하고 자비와 정의가 넘치는 평등과 평화 사회를 꾸리는 것은 사실 지극히 당연한 한 민족의 역사적인 소명이 아니겠습니까? 휴전 이후, 그것도 동족인 같은 동포 간에 벌어진 살벌하고 잔인한 전쟁이 있은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데아직도 종전조차 선언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세기적인 조롱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http://m.hyundaenews.com/27783>

따라서, 뒤집어 얘기하자면 이제 겨레의 끊어진 정리의 줄을 다시 잇고, 분단된 국토지만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도로(철로, 항로, 항해로)와 통신망이라도 우선 개통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세기적인 역사를 쓰기위한 물꼬를 트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남북의 두 정상의 악수를 두고 "세기적인 악수"(historic handshake)라며 환호를 보내는 외신들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인 셈이지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자 하나님의 뜻(天倫)을 따르는 길이었음에도 70년이 다 된 지금에서야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운을 떼려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라기는 이제 남북의 화해를 넘어 통일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 나감으로써 자랑스런 한반도의 온전한 국토와 반만년 역사의 온전한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다만, 화해란 질곡의 역사 속에서 뒤틀려왔던 관계를 복기(復棋)하여 그간의 착오를 피차 인정하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리고 위무할 수 있어야 진정성이 있다 할 것이며, 또한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런 대원칙을 무시한 채 과거를 그냥 덮어 버리고 넘어 간다면, 이는 외면수습 차원의 봉합이지 진정한 화해라 할 수 없을 것이며, 언제든 "수 틀리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가 십상이지 않겠습니까? 4.27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이 종전협정을 넘어 평화협정을 통해 '민족적 화해'와 '평화[적]번영'을 조망하는 획기적인 반전을 담아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간의 부끄러운 욕심으로 얼룩졌던 현대사에 대한 기본 공감대를 확인함으로써 화해와 화합의 닻을 확실히 내릴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겠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혹평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JTBC 캡처>

자유한국당이나 태극기 집회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반동적이고 비합리적인 발언이나 팩트 체크조차 거치지 않은 광기어린 '논평'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자면, 이런 아쉬움 내지 그간의 트라우마가 응축해 놓았던 분노의 정서가 지성화되어(intellectualized) 의심과 불안의 그림자로 노정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처음에는 이념대결로 시작하는 듯했지만, 결국 남북한이 매한가지로 탐욕에 기반한 독재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기득권 세력의 과거사 왜곡을 은폐하고 갑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불평등 사회를 고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북분단의 긴장에 편승했다는 점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해방 이후 지금까지 권력을 사유화하려던 남북한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러움을 시인하고 속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제 남북의 분단과 내전 그리고 그 이후 통일을 가로막던 직접적인 원인제공 세대는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아서 사과와 회개의 주체와 객체가 사실 불분명해졌다 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마지막으로 박정희 신화는 역사의 단죄를 이미 받은 셈이며, 김정은 위원장이 세습권력의 연장선에 있긴 하나 그 역시 분단과 전쟁의 주체이기보다는 독재 권력의 희생물에 불과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70년 세월은 많은 것을 역사의 수레바퀴 뒤로 삼켜버렸으며, 복기의 근거가 되는 기억 자체가 명료하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북한 인민들에게는 그나마 김일성 3대가 분단이래 지금껏 유일한 국가수반의 역할을 도맡아 온 셈이니, 김정은 위원장 말고 달리는 남북 간의 대화 창구가 없다 하겠습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염원이나 구호만으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질 수는 없는 일, 결국 이제 다시 재개하게 된 비핵화 논의를 기점으로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를 다짐하는 약속에 기반하여 신뢰를 다시 쌓아가야 할 것입니다. 상식이 통하기만 했어도, 서로의 욕심을 접고 양보하기만 했어도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실향민들이 고통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이제부터라도 상식이 통하고 모든 국민이 다 같이 행복할 권리를 누리는 한겨레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이념과 시스템의 충돌로해 앞으로도 때때로 오해와 갈등의 경우들이 발생하겠지만, 판문점 선언이 명시한 대로 같은 핏줄,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한 통일 민족을 견지하고 '통 크게' 나가야 하겠습니다.

판문점을 넘어 통일로

<https://www.voakorea.com/a/4367312.html>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판문점 소식을 접하면서 박수와 경의를 보낸 것은 남북을 가로막고 있던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에 넘은 이 세기적인 사건이야말로 작금의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마치 사막 한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꽃이자 솟아나는 샘물처럼 뭔가 보이지 않는 갈증을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계 구석구석에 아픔과 서글픔의 잔해가 산처럼 쌓여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지구인의 현실임을 감안하면, 남북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마치 횡단보도 건너듯이 건넌 이 사건이야말로 그 자체가 희망의 상징이며, 두 정상이 나눈 악수야말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첫 단추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생각하면 우리 민족보다 더 억울함을 당한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슬픔과 원망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슬픔과 억울함의 깊이만큼 우리는 이제 도리어 세계인의 희망의 등불로 더욱 찬란히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식민지 "정책"을 얄팍한 논리로 정당화했던 서구 열강과 일본을 원망만 하고 있었더라면, 군부 독재의 서슬에 낙담하여 그냥 주저앉고 말았더라면, 재벌의 횡포와 갑질을 보고도 그저 내 한 몸 사리기에 급급했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이런 반전은 영영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북한의 주민들이 역사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정치 제도를 보완하고, 경제적인 자립을 통한 삶의 기본적인 안정을 확보하고, 그 누구의 인권도 함부로 유린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한 동포이자 형제로 대접을 받도록 하는 꾸준한 실행의 과정이 요구되겠습니다만, 이제 두 정상이 내딛은 샬롬의 발걸음을 완전히 없던 것처럼 되돌리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 세계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희망의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남한은 남한 대로 인내하며 자비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북한 역시도 더 이상 실망스럽고 수치스러운 일탈을 자초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분단을 둘러싸고 이모저모로 주체를 자임하였던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가 여전히 변수이긴 하나, 남북한 당사자들이 의기투합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통일된 의지를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남한의 경제 성장이나 북한의 군사력의 신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조선말에서 근대화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식민지라고 하는 뼈아픈 경험을 한 것이 도리어 항일운동을 통한 시민의식에 눈을 뜨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남북의 대치 상황하에서 겪었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의 과정을 통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 어디에 내어 놓아도 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기틀을 앞서서 마련하였던 여느 나라에 못지않게 시민의식과 책임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주체의식을 배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인민들의 의식 상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핵 개발 성공을 선언하자마자 '완전한 비핵화'로 급선회하게 된 배경에는 단지 경제적인 제재조처로 인한 압박 때문 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남북한이 비록 서로 다른 이념을 견지하고, 또 서로 다른 근대화 과정을 통과한 것이 사실이나, 문제의 주체인 남북이 나서서 한가지로 민족적 화합과 공동의 평화번영을 지향해 나가겠다면, 객체이자 문제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한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가 무슨 명분으로 감히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의 '핵화'(핵무장)를 견인한 비하인드 스토리의 전모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핵화'의 진의를 헤아리기란 무리이겠으나, '완전한 비핵화'를 하기로 한 "통 큰" 결단은 북한 당국이 짜놓았던 장기적인 로드맵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6.25 이후로 남북이 서로 불신하게 되면서 남한은 미군의 힘을 빌게 되었고 또 북한은 은혜를 입었던 중국과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은 미국을 두려워하게 되고, 또 남한은 '중공'을 덩달아 미워하게 되면서 당사자인 남북이 남북문제의 해결을 주도하지 못하고 소위 '외세'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형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미군 철수'를 단골메뉴처럼 선결과제로 늘 들고 나왔고, 6.25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는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의 적화야욕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eitherium_kr_5ae574a9e4b055fd7fcc7388>

현재로선 김정은의 공개 선언을 믿어보고 내민 손을 잡아보는 것 말고 더 좋은 대안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프레스 센터에 3000명이나 되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전 지구적인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한 약속이니 맨 정신으로 짐짓 연출한 것은 아닐 터, 동기의 진정성부터 의심하고 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으로서도 비핵화를 선대의 유훈이라 언명하면서 '완전한 비핵화'(아마도 미국이 요구하는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에 상응하는 의미로 사용한 듯)란 워딩까지 꼭 집어서 사용한 것을 보면 가히 그 의지의 확고함을 천명한 듯합니다. 심지어 미군철수라는 단골 메뉴조차 조건으로 걸지 않겠다는 것을 보면, 남북간에 뭔가 진정어린 동포애가 통했거나, 아니면 사면초가에 몰려서 자구책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양보하기로 한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터인데, 핵개발을 거의 완성한 시점에서 굳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힐 이유가 딱히 없음을 생각하면 전자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게 아닐지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남북관계가 이리 급물살을 타고 반전되고 있는 것이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 혹 김정은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파문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가 저으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관건은 무엇을 계기로 불신에서 신뢰로 돌아서게 되었느냐 하는 것인데, 변곡점에 해당하는 어떤 한 가지 사건을 꼭 집어서 단서를 찾기보다는 지난 70년 동안의 남한 사회가 겪어 온 공의와 평화를 향한 염원과 저항의 물결을 따라가 본다면 해답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 대한민국은 거짓과 불의가 진리와 합리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써왔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초지일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공화국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걸어온 발자취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모름지기 김정은의 의식 속에 우리 민족의 향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역사관의 [대]전환을 혹 일으켰던 게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염원과 그에 따른 저항의 흐름의 클라이맥스는 두 말할 여지없이 2016 촛불 혁명을 통해 국민의 손으로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는 과정이었다 하겠으며, 새로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명실상부하게 국민을 대표하는 촛불 대통령이자 촛불 정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쁜 생각이나 악한 영향력이 전염되듯이 좋은 생각과 선한 영향력 역시 전염성이 강한 법,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초미의 관심사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아야 하는 남과 북 사이에 공명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이상하다 할 것입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842553.html>

인간사에 의미 있는 모든 일은 신뢰의 회복과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되는 법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 역시 그 첫 관문은 상호신뢰의 구축에 달렸으며, 지난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반성과 미래를 향한 바른 안목을 공유할 때에 그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하겠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제 집 대문 넘듯이 넘나들고, 도보다리 위에서 형제처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광경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희망과 기대의 여명이 밝았음을 예고하여 주었다 하겠습니다. 이는 다만 남북 분단의 뼈아픈 트라우마를 겪어 낸 우리 민족을 위한 새 역사의 아침이 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신 냉전 체제의 군사적 긴장과 무역 보복의 삼엄한 구도 하에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있는 세계인들에게까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입니다. 북한이 그동안 핵을 개발하는 흉악한 일을 저질렀었다면, 이제 스스로 핵을 폐기함으로써 핵우산 아래 놓인 지구인들에게 핵없는 세상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나아가서 전쟁 없는 평화의 세상이 결코 허황한 꿈이 아님을 일깨우고 고무하는 대반전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자 지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여 한반도의 비핵화가 전 지구적인 비핵화를 견인하는 '신호탄'이 되는 참으로 "통 큰" 역사의 변곡점이 되기를 염원하며 꿈꿔 봅니다. 하나님 나라가 벌써 임하였는데 우리는 아직도 핵무기 숫자를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찌질하고 부끄러운 일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속 좁은'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완전한 비핵화", 됩니다. 아니 반드시 되게 해야 합니다. 아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통재라 2018-05-03 14:37:23
"현재로선 김정은의 공개 선언을 믿어보는 것 말고 더 좋은 대안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북한정권은 매번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지킨 적이 한번도 없다. 이번 비핵화 약속도 실제로 핵을 제거할 때까지는 절대 믿을 수 없다. 전세계가 북한이 핵 포기하면 김정은은 가다피 짝이 날 거라며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믿지않고 있다. 그럼에도 친북사상을 가진 일부 한국사람들은 북한이 약속할 때마다 아무런 검증없이 무조건신뢰하고 선동하는 나쁜 행동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