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교수 칼럼,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의 은밀하고 강력한 젠더 정치
강남순 교수 칼럼,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의 은밀하고 강력한 젠더 정치
  • 강남순 교수
  • 승인 2018.06.02 11: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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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기자회견시 질문을 받는 장면 ⓒThe Washington Post

1. 2018년 5월 26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판문점 회담' 결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지켜보았다. 기자회견을 보면서 나는 그 정치적 의미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게 되어서 참으로 흐믓했다. 회견이 끝나고 4명의 기자로부터 질문이 있었다. 3명의 국내기자, 1명의 외신 기자로부터의 질문이었다. 그런데 첫번 질문자로 지목된 기자가 여성이었고, 유일한 외신 기자로 지목된 사람도 여성이었다. 즉 2명의 여성, 2명의 남성 기자가 질문자로 지목되었다. 물론 대통령이 스스로 질문자를 지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일어난 이러한 질문자의 '젠더 분배' 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행위'이다.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젠더문제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중요한 '정치적 행위'이며 여러가지 점을 고려한 '의도된 행위' 라는 것이다.

2. 2014년 12월 19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년말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8번의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이 화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오바마 태통령이 질문시간에 남성 기자들에게는 전혀 질문의 기회를 주지 않고, 8번 모두 여성 기자들로부터만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이러한 ‘파격적 행위’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던 현실이 얼마나 큰 차별이었는가 라는 ‘배제’의 현실을 거꾸로 남성들이 경험하게 한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깊은 '젠더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러한 소위 ‘미러링’ 행위는 물론 매우 정교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 사이에도 여전히 성차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대통령의 ‘저항 행위’이며, 젠더정치의 중요성과 평등의 요청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에 던진 것이었다.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강남순 교수. ⓒ강남순교수 페이스북

3. 백악관 출입기자들로 이루어지는 <백악관 기자협회 (The 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의 만찬은 1962년까지 여성에게 문이 닫혔었다. 1962년 헬렌 토마스(Hellen Thomas) 가 초대되기까지 여성 기자들이 백악관에 출입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여성 기자들이 백악관에 등장한 이후로도, 여성 기자들은 성차별을 경험해 왔다. 예를 들어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임기중 43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그 43번의 기자회견에서 여성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한번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성차별적 구조에 오바마는 ‘미러링’의 행위를 통해서 의도적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여성 기자들로부터만 질문을 받은 오바바의 연말기자회견장에 있었던 남성 기자들은, 이 ‘거꾸로 된 실험’에서 여성 기자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당했던 차별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워싱톤 포스트지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러한 시도를 “놀라운(remarkable)” 또는 “경외스러운(awesome)”일이라고 극찬했다.

4. 기자회견장은 '보이지 않는 젠더차별'이 줄기차게 행사되는 정치적 공간이다. 누가 청와대 출입기자인가, 누가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 질문하는 '발화의 주체'로 지목되는가는, 언제나 '정치적 행위'이며 또한 '젠더 정치'의 수준이 드러나는 정치적 공간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가면서, 여성기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여성 기자들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물론 우연한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내게는 문대통령이 지닌 '젠더 평등 지향적 가치'가 담긴 몸짓으로 보였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 특히 대통령과 같이 그 사회의 온갖 권력이 집중된 사람의 행위에서는 아무것도 '사소한 것'은 없다. 행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모든 행위들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5.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작은 바람을 가지게 된다. 언젠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서, 그리고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하도록 지목받는 기자들 중에서, 젠더(남성, 여성, 트랜스젠더)는 물론이고, 장애(장애인, 비장애인) 등의 측면에서 평등성과 다양성의 메시지가 실천되는 중요한 본보기의 예증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본 기사는 강남순 교수 페이스북에 포스팅 된 글을 본인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글이다. - 편집자 주-

기사와 관련된 워싱턴포스트 보도: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fix/wp/2014/12/19/that-time-obama-called-on-all-women-at-a-press-conference/?noredirect=on&utm_term=.d03888f824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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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2018-06-02 13:07:48
5월 26일 문재인 기자회견장 사진을 보면 남녀 비율이 50:50이 아니라 70:30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남녀기자를 동수로 지목해 질문을 받은 것은 남성 역차별이 아닌가? 흔히들 남녀차별을 얘기할 때 숫자가 동등해야하고 연봉이 동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각 조직에 활동하는 남녀수가 다르고 근속연수가 다른데 동등한 결과를 주장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군복무는 남자 몫이다. 성차별이 없으려면 이스라엘처럼 여성도 군복무하게 해달라고 주장해야 할 것 아닌가? 의무는 남자, 혜택은 남녀동등, 이런 것은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