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라는 갑질, “동의하든지 나가든지”
신앙이라는 갑질, “동의하든지 나가든지”
  • 마이클 오
  • 승인 2018.06.09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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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경 협회, 직원에게 신앙 서약서 강요해

[미주뉴스앤조이=마이클 오 기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보급 단체인 미국 성경 협회 (American Bible Society)가 직원들에게 자신들이 정한 보수적인 믿음과 성윤리를 지킬것을 요구하여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성경 협회 로고 <위키피디아>

직장에서도 신앙 서약서를?

RNS(Religious News Service)에 따르면 미국 성경 협회는 ‘성경적 공동체의 서약 (The Affirmation of Biblical Community)’이라는 문서를 통해, 모든 직원이 협회가 정한 믿음과 윤리를 준수할것을 요구하고 이에 서약서에 싸인을 할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서약에는 모든 직원은 교회에 출석하여야 하며, 남녀로 규정된 결혼 관계를 벗어난 어떠한 성행위도 해서는 않된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다양한 신앙적 삶에 대한 요구를 담고 있다. 

협회의 새로운 규정을 접한 직원들은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적 믿음과 윤리의 기준이 저마다 다를수 있고, 어떤 믿음과 윤리를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이자 권리인데도 불구하고 협회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이러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은 “이번 서약서에 나오는 모든 항목과 요구에 동의하고, 또 지킬수 있다”고 밝힌 한 직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더욱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는 동의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서약서 발표를 통해 미국 성경 협회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기관이 되어버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표를 제출한 다른 직원 역시 ‘복음주의자들의 메세지만 강요하는 이런 기관에서는 더 이상 일할 수가 없다’며 실망감을 표현했다.  

협회는 오는 2019년 1월부터 모든 직원이 이 서약서에 싸인을 해야하며, 만약 거부할 때는 사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경적 공동체의 서약 (The Affirmation of Biblical Community) '

이러한 협회의 보수화에 대해 기독교 역사학자 존 피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미국 성경 협회는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들을 위한 장벽을 쌓고 있다. 이 장벽은 자신들이 과거에 걸어온 발자취로부터 스스로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서약서는 협회가 지금까지 광고해온 협회의 열린 자세와 포용성에 대한 배신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협소한 성경적 시각으로 인해 상처를 준 이들에게 사과한 일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비판 또한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협회가 그동안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사용해온 ‘사과’라는 동영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 동영상의 내용은 “그동안 사랑의 책인 성경이 미움을 일으키는데 사용되어 왔으며, 여성을 억압하고 노예제도를 옹호하며 이방인과 소수자들을 혐오와 경멸로 대해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협회가 믿는 성경은 이 모든 부조리와 잘못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책이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동영상 Apology <미국 성경 협회>

신앙이라는 폭력

이번 서약서 발표와 직원들에게 싸인을 요구하는 행보는, 미국 성경 협회가 여전히 자신들의 협소한 시각과 권위적인 자세, 그리고 통제와 금지를 통해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의 내용과 공유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자신이 가진 신앙이 아무리 고매하고 순수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타인과 공유할 때에는, 상대방의 입장과 그들이 처한 삶의 맥락과 언어를 충분히 고려하고 또 존중하고 배우는 자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앙의 공유가 개인과 개인이 아니라, 개인과 조직 혹은 공동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이러한 미덕은 더욱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수 앞에서 개인은 언제나 다수의 폭력에 희생될 가능성을 안고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 인정받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질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 주장과 입장만을 주장하고 강요하는 것은, 그 의도의 순수함과 내용의 당위성과 관계없이 무자비한 폭력이 될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사회적으로 지탄과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전체성 즉, 자신의 진리가 모두의 진리라는 착각 가운데 가해진 폭력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정으로 신앙이 소중하다면 그 내용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하고 나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좀 더 성숙하고 유연한 소통의 미덕이 교회와 신앙의 공동체 가운데 더욱 깊숙히 자리잡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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