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땅의 아픔과 소망: 이스라엘 순례(1)
거룩한 땅의 아픔과 소망: 이스라엘 순례(1)
  • 최긍렬 집사
  • 승인 2018.06.1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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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지 탐방이나 성지 순례와 같은 류의 여행문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느낌의 성지순례기이다. 기자 출신 다운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을 겸한 기행문은 가는 곳마다 독자들이 구약 성경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사실감을 준다. 그 동안 익숙했던 성지순례기와는 색다른 이스라엘 기행문을 계속 연재한다. 저자: 최긍렬(뉴하트선교교회 집사, CBMC 회원) -편집자 주-

 

여행을 시작하며

5월14일.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날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유대계인 사위 쿠슈너가 참석한 대사관 이전 축하행사가, 가자지구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로 수십명 사망, 2000명 부상한 총격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70년 전 5월14일도 다르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벤 구리온이 건국을 선포하면서 곧바로 아랍 5개국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대대적 전쟁이 일어난다. 제 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은 독립전쟁이라 부른다.

호텔로 가는 도중 이스라엘 지도를 펴 보니 벤 구리온 공항의 위치도 예사롭지 않다. 가나안 땅에 들어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처음으로 전면전을 벌인 곳, 에벤에셀과 아펙이 바로 이 부근이다. 뉴욕을 출발하면서 거룩한 땅, 약속의 땅을 보리라는 기대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압도되고 있었다.

슈펠라: 예루살렘, 베들레헴 등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들은 유다산지에 분포돼 있고  유다산지와 블레셋 해안 평야사이의 구릉지대를 일컫는다.  진빵이 모여있는 듯한 곳이 슈펠라다

긴장의 구릉지대 슈펠라: 구약성경이 보인다

하룻밤의 수면이 어제의 꿀꿀한 기분을 말끔히 지운다. 오늘은 5월15일, 첫 행선지는 슈펠라. 슈펠라를 알아야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관계가 보인단다. 우리말로 평지로 번역된 단어다.

어원적으로는 ‘낮은 땅’인데, 굳이 우리 식으로 옮기자면 ‘구릉지대’가 적당하다. 평지는 오역에 가깝다. 유다산지가 8-9백 미터의 산지라면 슈펠라는 2-3백 미터 높이가 대부분이다. 물론 블레셋 평야는 지중해와 잇닿아 있는 말 그대로 평지다.

슈펠라는 유다산지를 근거지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해안평야지대에 살고 있는 블레셋 사이의 완충지대이다. 말이 좋아 완충지대이지, 사실은 전쟁터다. 서로를 정복하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그래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슈펠라다.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이 한 판 벌인 엘라 골짜기가 다름 아닌 슈펠라에 있다.

엘라골짜기: 아세가에서 바라본 엘라골짜기. 이 곳에서 다윗과 골리앗이 일합을 겨룬다.

구약 성경 속의 슈펠라는 여러개의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다. 엘라골짜기도 그 중의 하나다.

다음으로는 소렉 골짜기. 삼손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버스 차창으로 바라본 소렉골짜기에는 마침 밀이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삼손이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 밀밭에 풀어놓아 블레셋의 밀밭을 초토화시킨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해안에서 예루살렘을 이어주는 아얄론 골짜기, 미가선지자의 고향 마레사 요새가 지키고 있는 벧 구브린 골짜기(구약의 스바다), 헤브론의 길목인 라기스 골짜기 등도 구약성경의 주요 배경이다. 애굽의 바로왕, 앗시리아의 산헤립왕,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이 유다산지를 공격하기 위해 이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갔던 기록들이 구약성경 곳곳에 기록돼 있다.

이처럼 슈펠라의 골짜기들은 블레셋 해안평야에서 유다산지에 있는 예루살렘, 헤브론 등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인 까닭에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벧세메스: 법궤를 실은 마차가 블레셋의 에글론을 출발, 이 길을 따라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향한다.

꿀렁꿀렁 슈펠라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다 버스가 일행을 처음 내려놓은 곳은 한국 야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름 모를 언덕배기 였다. 그 옛날 블레셋의 에그론에서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가는 길목이란다.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이 법궤 때문에 곤욕을 치르다 이 길을 따라 법궤를 보냈다고 하는 그 길이다.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사무엘상 6:11-12)

평범한 언덕배기에 3천 년 전의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은 암소는 7마일 쯤 되는 거리를 곁길로 빠지지 않고 똑바로 목적지 벧세메스에 도달한다. 아! 우리보고 이렇게 살라는 건가! 암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슈펠라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 비무장지대가 겹쳐 떠올랐다. 철조망은 없지만 항상 긴장감이 끊이지 않았던 곳, 그 곳이 슈펠라다. 어쩌면 현재의 이스라엘 전체가 슈펠라인지도 모른다.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전장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여행 내내 이 곳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런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원래 오늘은 블레셋의 중요 거점도시들과 가자 부근을 가기로 계획했었지만, 어제의 총격 때문에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대신 현재의 화약 냄새를 수천 년 전의 슈펠라에서 맡을 수 있었다.

벧구브린 석회암 동굴: 엘라골짜기에서 가드 쪽으로 가다 보면 벧 구브린 국립공원이 나온다. 석회암동굴로 지질이 연하여 쉽게 동굴을 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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