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고난은 불가피한 건가요?
이 세상에서 고난은 불가피한 건가요?
  • 권영석
  • 승인 2018.06.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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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를 통해 본 악과 고통의 문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모자이크 <아메리칸메거진>

삼위일체

"삼위일체"란 성경에 계시된 [야훼] 하나님을 인간의 제한된 논리로 이해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성경에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등장하는데, 이 세 인격(位) 사이는 서로 다르면서도 또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동등하나 다르다'고 하는 존재론적 기반 위에서라야 비로소 호상 관계(mutuality) 내지 상호의존 관계(inter-dependency)가 가능한데,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인격과 인격 사이의(間人格) 가장 고상하고 가장 아름다운 관계로 결속되어 있는, 곧 완벽한 인격적 연합을 이루고 계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때로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분 없이 그냥 하나님(Godhead)으로 지칭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럿이라고 할 수 없으며(1體적 존재), 그렇다고 동일한 하나님이 그저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3位적 존재). 말하자면 우리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한 분이신데, 그 하나님의 위격(person)이 셋이며, 그러면서도 이 세 인격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기에 한몸(body)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3위1체란 사실은, 3이면서 1이기에 삼이 아니요, 1이면서 3이기에 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자를 비초월적인 인간의 프레임에 비추어 설명하고자 했던 역설적 개념화 내지 선언적/계시적인 프레임에 다름 아니라 하겠으며 그 때문에 피조 세계에서 정확한 유비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여타의 모든 피조물과 달리 당신 안에서 서로 교감하고 협의하고 소통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한 몸(일체)으로서 간인격적(inter-personal)인 관계가 완벽하게 가능하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자충적(自充的)인 존재라 하겠습니다.

존재의 자충성이란 사실 끊임없는 진보 내지 확대 재생산 또는 무궁한 창조를 통한 자기-충만(pleroma)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을 텐데, 삼위일체 하나님은 스스로 안에서 모든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함께 꿈꾸고 기획하고 실행하고 감상하는 가운데 끊임없는 진보와 재생산 내지 자기-충만이 가능하신 분이라 하겠습니다.

삼위일체와 인간의 본질

비교컨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리는 인간과 비교해 보자면, 사람은 그저 한 사람이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몸을 지닌 1위1체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감, 협의,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 바깥에 있는 별도의 다른 인격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또 다른 인간이 필요한 존재이며, 그만큼은 늘 다른 인격에 의존적인 존재이자 유한한 존재 곧 피조적인 존재라 하겠습니다.

물론 인격이 없는 여타의 피조물과는 그야말로 격이 다른 차원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동물들의 교감과 협의 그리고 소통이란 본능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으로서 역사를 거듭할수록 문화를 축적해 왔던 인간과는 비교할 가치도 없다 할 것입니다.

이런 간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사람은 비록 1위1체이긴 하나 3위1체적(的)인 존재이며, 하나님의 간인격적인 성질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에서 인간만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상하고 아름다운 간인격적인(inter-dependent) 관계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독립된(independent) 자아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독립된 개 인격에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자인식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self-identity를 자아 정체감으로 번역하게 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인격체이기 위해서는 나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존재성에 대한 인식 곧 다른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독자적 내지 자주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데에 대한 자인식이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주성/독립성의 핵심은 무엇보다 [자기-]의지(self-will)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라고 하는 정체성은 분화된/독립적 인격체만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이며 동시에 거기에는 '나 나름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에 따르는 책임과 그리고 또한 나와 별도로 존재하는 다른 인격체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 내지 자기객관화의 책임 또한 수반한다 하겠습니다. 

삼위일체와 인간의 문제

바로 이런 자주성/독립성으로 인해 인간에게만 분별과 선택의 기준 곧 '선악'의 개념이 불가불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하겠으며,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하겠기에 때로는 '고난'이 동반하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하나님과 달리 자충적이지 못한 피조물인데다가, 개개인은 또 인류라고 하는 커다란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여느 인간이 선택한 것의 결과로 내가 혜택을 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댓가를 지불하기도하는 상호 의존적 존재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악과 고난의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하기가 힘든 것은, 이처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인격을 그리고 인격과 인격 사이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해 내기가 힘든 것에 기인한다 할 것입니다. 게다가 어쩜 현대 과학주의적 사고를 모든 것의 판단기준으로 은연중 내재화한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자유니 책임이니, 도덕이니 하는 간인격적 관계에 대한 개념의 부재는 물론, 공감과 협의와 소통에 대한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도리어 비인격적이 되어버렸다 할 것입니다. 

간인격적 주체로서의 인간 회복이 필요 <대한성공회>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의 가능성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그야말로 격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그분은 또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지닌 인격적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그 위대성을 다 헤아리고 완벽하게 설명할 순 없을지라도, 우리는 이 위대하신 하나님과 그리고 매한가지로 고매한 인격체로 지음받은 동류 이웃들과 더불어 공감하고 협의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원한 복락(영생)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삼위일체적 존재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떠나 엇나갔지만, 3위로 1체가 되셔서 스스로 충만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구원의 역사 또한 완벽하고도 충만하게 이루실 것이며, 마침내 우리는 악과 고난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악과 고난이 아예 문제가 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충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나라가 속히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완벽히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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