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 최태선 목사
  • 승인 2018.06.11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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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이다. 잠시지만 내가 기도를 하면 사람들의 병이 나았다. 그때는 내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래서 기도공동체에 들어가 살던 시기였다. 그곳에는 아픈 사람들이 찾아왔다. 몇 번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병이 나았다. 내 기도 때문에 나았는지 다른 이유 때문에 병이 나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내가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곳 목사님의 사모님은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능력을 주시기 위해 그런 어려움을 겪게 하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반대로 만일 그런 능력이 주어진 것이라면 그 능력이 없어지기를 기도했다. 나는 인간이 그런 은사를 담당할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나는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주목해왔다. 그런데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특히 성적 타락은 남자든 여자든 필수 과정이었다. 특히 은사를 바탕으로 목회를 하는 목사들은 100%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믿음은 귀납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경험에서 벗어난 보지 못한 많은 세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경험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능력이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길 기도한 후에는 나와 평소 교제가 없었던 환자들 곁에는 아예 가지를 않았다. 섭섭한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결정한 일들 가운데 가장 잘한 결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나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의 기사가 있다. 엘리사의 이야기에서 그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한다고 말했다. 엘리사가 구한 영감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것을 영적인 능력으로 이해한다. 그것도 사랑이 아니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한다. 구약이지만 대표적인 선지자인 그가 그런 능력을 구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신약이 말하는 내가 약할 때 강하다는 약함의 신학과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 이야기에 이어지는 내용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영감을 받고 벧엘로 돌아가는 길에 어린아이들의 조롱을 받는다. 그를 대머리라고 놀린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한다. 그러자 암콤이 나와 그 아이들 중 사십이 명을 찢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이야기가 성서에 기록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이 이야기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부흥집회에 와서 자기에게 대드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자기가 저주하는 사람은 24시간 이내에 죽는다면서 사람이 죽을까봐 자신이 미운 사람도 저주하지 않는다고 자랑하던 총회장 출신의 부흥강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성서의 기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목사를 그리스도인은 물론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이 이야기가 성서에 기록된 이유를 도무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냥 비슷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하나님 백성의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이해한다. 지도자가 되려는 그리스도인들은 힘과 능력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엘리사처럼 자신에게 대드는 사람들을 저주하여 죽이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독재자들이 된다. 그들 자신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겠지만 죽은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그런 하나님을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힘과 능력을 가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약화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하나님과 관련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엘리사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는 더 많은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탁월한 선지자이다. 그런 그가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는 탁월하지는 못해도 온전한 선지자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온전한 선지자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비우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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