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북촌, 저주의 삼각지대
갈릴리 북촌, 저주의 삼각지대
  • 최긍렬 집사
  • 승인 2018.07.0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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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하트선교교회 최긍렬 집사의 이스라엘 기행문 4번째
벳새다 쪽에서 바라본 갈릴리 호수. 이 근처 어디에선가 5병2어로 5천명을 먹이셨다. 호수 건너편에 보이는 도시가 일행이 묵었던 디베랴.

예수님이 화나셨다. 저주까지 퍼부으셨으니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하신 대상은 갈릴리 호숫가 북쪽의 3개 도시와 그 주민들이다. 고라신,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 갈릴리 호숫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성읍들이다. 이른바 부촌이다. 서로 지근거리에 있는 이들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1-24)

무엇이 예수님을 그렇게 진노케 하셨을까? 이들 성읍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위 말씀에 이미 간단히 언급돼 있다. 그 행간을 좀 더 들여다 보자. 예수님 스스로 많은 권능을 행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권능일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곳이 벳새다 들녁이다. 5천명을 상대로 대중적 권능만 보이신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타치도 있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쳐주셨다. 이 모두 벳새다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고라신에서 행하신 권능은 성경에 보이지 않는다. 미루어 보건대 고라신에서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사역의 중심이었다. 사진 속의 회당은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것.

가버나움은 어떤가.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선교센터, 사역의 전진기지다. 복음서에 ‘본 동네’로 소개된다. 영어로 His own city. 곧 집 드나들 듯 예수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리라. 자연히 많은 권능이 나타났다. 백부장의 하인이 나음을 얻었고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치유받았다. 또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셨다. 여인의 혈루증이 멈췄으며 침상에 누인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었다.

무엇을 더 바라랴. 가버나움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곳이었다.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다른 길을 선태하고 말았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하나님만큼 높아지려고 했다. 예수님 눈에 가버나움의 죄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들 성읍들은 예수님이 무척 공을 들인 곳이다. 복음이 바로 앞에 있었고 기적이 나타나고 치유가 멈추지 않았다. 저주가 아니라 복음의 3각지대, 선택의 3각지대가 돼야 했을 곳이다. 예수님의 저주대로 폐허가 된 이 성읍들은 돌무더기로만 발견되고 있다. 화려하게 보이는 가버나움의 유적들은 주후 3-4세기의 비잔틴문화의 흔적일 뿐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뉴욕에 다가오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부터의 구원이다.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곳으로 추정되는
요단강.  현재의 요단강은 개천에 가깝다.  관개사업의
영향이라고 한다.

다광야를 떠나 북으로 올라오면서 색깔의 변화가 완연하다. 황토색이 조금씩 옅은 연두색으로 바뀐다. 우리가 방문한 요단강은 그 즈음에 있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이 강물이 갈라졌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처럼 내리고 하나님이 음성이 들렸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다. 그래서인지 요단강은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예수님이 받았던 똑같은 물로 세례를 받고 싶은 까닭이다. 세례받을 때 사용하는 하얀 가운이 ‘8달러’라는 사인이 보인다. 다른 성지들과 다르지 않다. 상업화가 진하게 스며들어와 있다.

이렇게 거룩한 곳이 사실은 초라하다. 강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다. 시내라고 부르면 적당하다. 여호수아나 예수님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컸으리라. 지금은 관개사업 때문에 작아졌단다. 설령 요단강이 작으면 어떠랴. 초라하면 어떠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태어난 곳도 초라한 헛간 말구유 아닌가. 믿음은 규모에 있지 않다. 중심의 문제 아닌가. 영어로 HEART. 우리말로 중심, 심장, 마음이다. 믿음은 우리의 중심, 그 작은 HEART에 있다. 갈릴리 지역에 머무는 동안 4번 요단강을 건넜다. 건널 때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요단강을 떠난 일행은 여리고를 바람처럼 지나 북쪽 갈릴리로 향한다.

갈릴리 호숫가에 가까워 갈수록 초록이 짙어진다. 광야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녹음이 약간은 낯설다. 갈릴리 호숫가로 올라 가는 길에 벧산을 들렀다. 갈릴리 남쪽이다. 벧산은 데가볼리 지역의 중심도시로 이스르엘 골짜기와 요단골짜기가 만나는 요충지다. 또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갈 때 지나가는 길목이기도하다. 숲이 우거지고 수자원이 풍부한 농경지로 ‘만약 이스라엘에 에덴동산의 입구가 있었다면 벧산이었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갈릴리와 사해 사이에 있는 벧산은 이스르엘 평야와 요단골짜기가 만나는 옥토 지역.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 사울의 시신이 성벽에 걸린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비잔틴 시대의 것으로 2개의 야외극장, 공중 목욕탕 등 비잔틴 시대에 상당히 번성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벧산은 사울왕이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한 곳이다.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후 블레셋에 의해 머리가 잘린 채 벧산 성벽에 걸린다. 길보아 전투에서는 사울의 아들 조나단도 함께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통곡을 한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까운 조나단을 위해 다윗은 애가를 지어 그 슬픔을 달래고 또 그 애가를 유다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한다. 다윗, 사울, 조나단 사이에 펼쳐졌던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서사시는 벧산에서 그 막을 내린다. 이제는 다윗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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