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예루살렘, 그 복잡한 성아!
아! 예루살렘, 그 복잡한 성아!
  • 최긍렬 집사
  • 승인 2018.07.15 0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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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긍렬 집사의 이스라엘 기행문 마지막회

갈릴리를 뒤로 하고

사흘간 갈릴리에 머물면서 정이 들었다. 예수님의 숨결과 발길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살던 고향’같은 갈릴리를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나머지 여정에 나선다. 최종 행선지는 예루살렘. 그 전에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 한 둘이 아니다. 나사렛, 므깃도, 갈멜산, 가이사랴 그리고 텔아비브. 동선이 길어 벅찬 하루가 될 것 같다.

예수님의 홈타운 나사렛: 예수님 당시는 깡촌이었지만 지금은 큰 도시를 이루고 있다. 현재는 아랍마을. 예수님이 태어난 곳(베들레헴)과 성장한 곳 모두 이슬람 도시가 됐다. 갈릴리 지역 최대 도시였던 찌포리, 요나의 고향인 가드헤벨이 나사렛의 옆동네이다.

텔아비브와 욥바

긴 하루를 보내고 저녁 어스름에 텔아비브에 여장을 풀었다. 내일은 예루살렘, 벌써 마음이 설렌다. 마음을 살짝 접어두고 오늘 저녁은 텔아비브를 즐겨보자. 지중해를 끼고 있는 텔아비브는 아름답고 평화롭다. 많은 사람들이 석양의 해변가에 나와 있었다. 한국 서해안의 대륙붕처럼 수심이 낮고 수온이 적당하다. 게다가 동해안처럼 물이 깨끗하다. 그래선가 어린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텔아비브에서 며칠이라도 바다를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아비브의 해변을 따라 3-40분 남쪽으로 걷다 보면 욥바를 만난다. 욥바는 ‘예쁘다’라는 뜻이다. 전에 어디에선가 욥바는 ‘욥의 아들’이라고 들었는데 잘못된 정보란다. 말 뜻대로 욥바는 실제 아름답고 아기자기하다. 욥바 가운데 있는 공원에 올라서니 지중해와 텔아비브의 마천루가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예루살렘 성전의 중요 재료인 레바논의 백향목. 두로에서 띄운 백향목 뗏목이 욥바에 도착하면 마차에 실려 예루살렘으로 운반되었다. 솔로몬이 처음 성전을 세울 때도, 또 후에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했을 때도 그랬다. 욥바는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난 곳이기도 하다. 요나가 원수나라 수도인 니느웨로 선교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스페인으로 도망가기 위해 숨어 들어왔던 곳이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는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기 전 보자기 환상을 본 곳도 욥바다. 항구도시 욥바는 선교의 통로였다.

므깃도: 므깃도는 요한계시록에 최후의 전쟁터로 그려진 아마겟돈의 모형. 문명이 만나는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열강들의 각축전이 끊임없이 벌어진 곳이다. 므깃도를 빼고 인류 전쟁사를 논할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픔

날이 밝았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날이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27마일. 성경으로, 지도로,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 예루살렘성의 땅을 직접 밟는다니.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곧바로 예루살렘 성으로 가지 않고 주변의 유적지를 빙빙 돈다. 기대감을 높이려는 계략(?)이려니 했다.

먼저 놉이라는 곳에서 예루살렘을 정탐했다. 예루살렘 성 기준으로 기드론 골짜기 동북쪽 건너편 높은 산등성이다. 현재는 히브리대학이 위치해 있다. 놉은 사울에 쫓기던 다윗과 병사들이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찾았던 곳. 제사를 물린 떡으로 다윗 일행을 후대한 까닭에 아히멜렉 제사장을 포함, 85명의 제사장과 가족들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했다.

놉에서 조금 내려오니 감람산이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눈물 뿌려 기도했던 겟네마네 동산이 있다. 감람산에서 바라본 예루살렘성은 처참하다.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곳에 두개의 이슬람 사원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그 중 하나는 황금사원. 휘황찬란한 황금색의 돔이 시야를 압도한다. 예루살렘 성을 힐끗 바라보면 황금사원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할 곳에 우상이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성전 미문: 예루살렘성전 동쪽에 있는 미문: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했던 이 문을 16세기 이슬람 오스만 왕조의 슐레이만 1세가 막았다. 미문 아래 쪽에 보이는 비석들은 메시야의 재림을 막기 위한 무슬림들의 무덤이다.

꽉 막힌 성전 미문도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미문은 감람산에서 성전을 들어갈 때 사용하는 문으로 동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6세기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 오스만 왕조의 슐레이만 1세가 그 문을 철벽처럼 돌로 막아 놓았다. 일본이 맥이 흐른다는 곳곳에 말뚝을 박았듯이.

또 미문 바로 앞에는 무슬림 무덤이 말 그대로 진을 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순결한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 이 미문을 통해 입성한다.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슬림 무덤을 지나야 하고 메시아는 무덤 때문에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곧 메시아를 막기 위해 문을 돌로 막고 무덤을 설치한 셈이다. 기드론 골짜기의 감람산 쪽에는 유대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영혼들의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감람산에서 본 예루살렘성: 솔로몬성전이 있던 곳에 2개의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 있다. 특히 황금사원의 위용은 압도적이고 상징적이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벌써 복잡하기만 하다. 북쪽 이슬람구역인 다마스쿠스 문을 통해 마침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조그만 상점들이 호객하느라 분주하다.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상점에는 유대교. 기독교 기념품들로 넘쳐난다. 예루살렘성에는 모든 것이 섞여있는 듯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마지막 길을 걸었다는 돌로로사, 예수님의 묻혔다는 무덤교회, 치유의 베데스다 연못, 통곡의 벽. 거룩한 흔적들이 그곳에 다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뭉클하지 않다. 머릿속만 복잡하다. 거룩한 성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내가 문제는 아닌가. 나는 그저 관광객으로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고 있었다.

성문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베드로가 주님을 3번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다는 갈리칸투교회 옆 계단 길 때문이다. 예루살렘성에서 전투를 벌였던 예수님이 성전을 빠져나와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던 그 언덕길이다. 예수님이 수없이 지나다녔을 터다. 헉헉거리며 이 언덕길을 오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예수님은 거룩한 성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며: 소망

기행문을 처음 써봅니다. 낯이 설었습니다. 초보 티가 역력합니다. 룰룰랄라 산뜻해야 할 여행 단상들이 무거워 보인 이유입니다. 특히 전쟁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숙명처럼 안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전쟁이니까요. 그 최후의 전쟁터는 골란고원도, 므깃도도 아닙니다. 예루살렘임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라고 한 ‘땅 끝’ 역시 예루살렘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날,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날이 전쟁의 끝이고 복음의 종착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만난 선장이 말합니다. 이스라엘 안에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5-6만 명이라고 합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쳤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P.S: 이번 여행의 기획 단계부터 교육. 안내까지 손수 수고해 주신 김경래 교수님<뉴욕 Faith Bible Seminary: 히브리어>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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