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와 폭력의 단념
지배와 폭력의 단념
  • 최태선 목사
  • 승인 2018.08.2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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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교회 신옥주 그리고 교회에 대한 단상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신옥주의 교인 폭행 장면

과천 은혜로 교회 사건을 다룬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았다. 한 마디로 미쳤다.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장면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기독교를 생각한다. 결국 기독교는 혹세무민하는 종교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다. 더구나 요즘은 정통이요 귀감임을 자랑하는 교회들이 세상의 지탄을 받고 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지탄을 받는다. 자중지란 정도가 아니라 근본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그 와중에 교회를 떠난 이들은 전문가가 되어 교회를 비난한다. 예전에는 안티 크리스천이라는 말도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감히 안티라는 말조차 사용할 수가 없다. 안티가 아니라면 무뇌아로 손가락질을 받는 세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방송을 보면서 인간의 이성이 집단지성에 의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았고, 집단지성이 얼마나 광기로 치달을 수 있는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데올로기도 그렇지만 종교가 가장 효율적인 집단지성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그 집단지성 속에서 방향을 잃으면 그곳에서 탈출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이성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가 없다.

그곳의 한 젊은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같은 집단 사람들에 의해 맞아 죽었는데도 죄를 운운하며 아버지 스스로 자원해서 선택한 것이며, 사인이 간경화이고, 거기까지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했다. 그 아들의 말과 그 말하는 표정을 보면서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집단지성에 무력한지를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집단지성의 광기를 우리는 정통이라고 말하는 대형교회들에서 보았어야 했다. 상습 성추행범이 설교를 잘 한다고 자신의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어보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위 방송에 출연한 아들과 다르지 않다. 가짜와 거짓말투성이의 목사를 추종하는 이들도, 세습이라는 있어서는 안 될 악행을 저질러도 그것이 자신들이 바라는 바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이들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집단지성의 광기에 이성이 함몰된 사람들이다.

결국 그런 일들은 세상을 판단해야 할 교회가 세상의 판단을 받는 세상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천사들까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 개혁을 외치는 이들 역시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식이 통하는 교회처럼 슬픈 기독교를 본 적이 없다. 복음이 상식과 부합하는가. 아니다. 복음은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어서 어처구니 없기까지 하다. 성서의 예를 보자.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다 알지 않는가. 그곳에서 주인은 빈둥거리며 놀 수밖에 없는 루저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한다. 비효율적이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하루종일 일한 사람들과 똑같은 품삯을 준다. 불공평하다! 그것도 하루 종일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한 사람들보다도 먼저 준다. 조삼모사가 인지상정인데 이건 비이성적이다! 비합리적이다! 아니 몰상식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이 하나님 나라이고 그런 비이성적, 비합리적, 몰상식한 방식으로 포도원을 관리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복음은 상식이 아니라 상식을 뒤엎는다. 그야말로 몰상식이다! 하나님 나라인 교회는 상식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야 한다.

결과적으로 은혜로교회와 같은 이단들은 복음을 잠식한다. 티브이에 방영된 그들의 모습이 사실은 성서가 말하는 교회를 더 많이 닮았다. 그들은 함께 모여 네 것 내 것이 없는 공동체를 이루었다.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며 자신들을 성찰한다. 하지만 그들을 이끌어가는 동인이 무엇인가.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들을 이끌어가는 동인은 지배와 폭력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보아야 할 것은 지배와 폭력이다. 잘못된 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지배와 폭력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서가 말하는 성령공동체를 이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키엘케고르가 말하는 거위들이 된다. 뒤뚱거리며 교회를 열심히 나가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들의 날개는 사족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그냥 죽는다. 복음도 하나님 나라도 그들에게는 단지 머나먼 피안의 세계일뿐이다. 현실과 무관한 죽은 후의 세계일뿐이다. 그렇게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의미를 상실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거나 위장하는 뒤뚱거리는 거위들이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경원시해야 될 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지배와 폭력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이단과 정통이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지배와 폭력을 단념해야 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지배와 폭력을 단념하고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자기 비움(케노시스)에 있다. 그리스인들은 모두 그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무력함의 증거는 가난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들의 나라이다.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가난해져야 한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프란치스코처럼 가난을 신부 삼아야 한다. 나는 신옥주에게 다른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한다면 가난을 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정통인 대형교회 목사들에게도 똑같이 말하고 싶다. 그래서 법조인과 의사와 교수들이 많음을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힘없는 가난한 자들이 생명으로 풍성해져 존엄을 지키며 인간답게 사는 모습을 말없이 보여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곳이 지배와 폭력이 없는 제자들의 사회이며 진짜 교회인 성령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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