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자살
목회자의 자살
  • 미쉘 김
  • 승인 2018.09.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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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 미쉘 김, 목회자 자살과 우울증에 대해
사진 출처: 김유비닷컴

최근 인랜드 힐(Inland Hill) 교회 담임(Lead pastor) 앤드류 스톡클린 목사의 자살 소식을 들은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유명인 들의 자살이 아침에 일어나 제일 처음 듣는 충격적인 뉴스가 된 것이 새삼스럽진 않다. 이번 해만도 전 세계를 여행하며 맛집쇼를 진행한 CNN의 Anthony Bourdain , 뉴욕패션가의 아이콘인 Kate Spade, 한국의 국민 정치인 노회찬씨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16년 국가 정신 건강위원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10- 34세 인구의 두번째로 높은 사망 원인이 자살이다. 한국이민 사회와 아시아계 미국인의 통계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살 소식에 나름대로 둔감(?) 해 진 것 같은 우리에게도 “목사”의 자살은 또 다른 충격과 혼란을 가져다준다. 앤드류 목사는 어린 세 아들과 아내 케일라 (Kayla)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왜 그는 자살을 시도했을까? 그가 은혜로운 사역자로, 겉으로 흠잡을 것이 없는 존경받는 남편으로, 아빠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뤘었다는 점, 교회에서도 특별한 스캔들이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자살이 아닌, 목사로 설교에서도 회중과 나눴던 우울증 (Depression)과 불안 장애 (Anxiety)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목사의 믿음과 구원의 문제는 어떻게 고민되고, 또 그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남겨진 사모 케일라는 목사였던 남편의 자살로 인한 충격과 슬픔을 솔직하게 블로그(http://godsgotthis.org)에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사랑한다고 얘기해 줄 것을,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줄 것을, 우울증과 불안을 조금 더 이해해 줄 것을, 그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영적인 공격 가운데 같이 기도해 줄 것을”이란 글로 표현하며 슬픔을 애도하고 있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

앤드류 목사 직접 겪고 있었다고 고백한 우울증(Depression)과 불안 장애(Anxiety)는 약물치료만으로, 또는 영적인 기도와 말씀만으로 극복되는 병이 아니다. 우리는 주변의 우울증을 겪는 지체들을 볼 때 의지가 약해서 게을러서,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판단을 쉽게 한다. 불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믿음이고, 불안 장애의 일종인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호흡 곤란으로 고통을 호소하거나, 일상의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이해하기보다 판단의 잣대를 먼저 들이댄다. 그러므로 많은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이라는 잣대에서 오는 판단이 두려워 자신의 상황을 속 시원히 털어놓고 기도와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 꼭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 배우자의 어려움이라고 하더라도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에 관한 인지가 부족한 이민교회의 문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주제로 치부되기 쉽다. 거기다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하는 목사가, 사모가, 자녀들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힘들어 한다는 것은 교회라는 조직자체내에서 용납될 수가 없다. 목회자와 그 가족들은 수치심으로 더 아픔을 은폐하고,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해결하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사실 압박감과 고립감으로 인해 내적으로는 많은 심리적 질환을 겪고 있다.

임상심리에서는 자살을 우울증의 한 증상(Symptom)으로 본다. 우울증상을 진단하는 검사(PHQ9)지에도 “자신이 죽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자신을 해치고 싶은 생각”이 있으냐 하는 질문이 꼭 들어간다. 자살을 일어나지 않을 우울증의 최악의 상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동전의 다른 양면과 같이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일어 날 수 있는 증상으로 본다. 그것은 낮은 자존감(worthlessness)과 무력감, 고립감으로 내가 없어지는 것이 가족이나 속한 공동체에게 짐이 덜 되고, 견디기 힘든 마음의 아픔을 종료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해결 수단으로 자살이 인식된다는 것을 상담가가 항상 의식하고 임상치료에 임한 다는 것을 뜻한다. 자살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더라도, 자살 충동, 생각 등이 불현듯이 나면 자신을 해칠 가능성(Self-harm)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고, 더 나아가 계획이나 수단이 발견되면 상담자는 바로 비밀 보장법을 파기하고 내담자 가족에게 알려서 24시간 내담자가 관심과 케어를 받게 한다거나, 정신병동에 입원하여 계속적인 치료와 보호를 받게 할 법적인 책임이 있다. 자살은 언제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예방에 주력 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정신 건강

앤드류 목사는 본인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정신건강을 돌보라는 교회 리더십의 권유로 4개월간 안식을 취했다. 4개월 휴식이후 돌아온 강단에서 시작한 시리즈 설교인, 자신 자신을 비유하는 듯한 “엉망진창 인생(Hot mess)”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보냈는지, 정신과 의사와의 세션 가운데 불안장애의 일종인 강박증(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OCD)이란 진단을 받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있다. 자신의 심리적인 아픔과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완벽하심이 드러난다는 그의 감동적인 메시지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설교에서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터치하였다. 그런 목사로서의 최상(Mountain top)의 경험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로 세상을 떠난 목사를 통해 우리들은 이차적인 트라우마(Vicarious trauma)를 겪는다. 하지만 블로그의 글들을 보면 앤드류 목사가 이 시점까지 오기까지 겪은 마음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2015년, 약 3년 전 갑작스레 목사인 아버지를 백혈병으로 잃고 아버지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나 병으로 갑작스럽게 잃었다는 것은 트라마틱한 상실(Traumatic grief)이다. 임상심리에서는 최근 주변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살시도와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자살은 정말 아무 힘이 없고 무기력한 상태이기보다 약간의 평소와는 다른(Unusual) 에너지가 있을 때, 바닥을 치고 다시 약간 일어날 수 있다고 느낄 때, 자행되는 경우도 많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복용했을 경우 부작용 또는 조울증의 “조증”에서 오는 에너지로 자살충동/시도가 언급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앤드류 목사에게는 목회가 어찌 보면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 상실을, 신앙적인 혼란을 계속 느끼게 하는 트라마 연상기제(Trauma reminder)의 역할로 작용하진 않았을까? 담임목사라는 직책이 주는 공적인 이미지와, 책임, 매주 예배를 진행하고 교인들의 삶에 신경 쓰고 목양해야 하는 구조적인 관점을 이해할 때 굉장한 스트레스에 놓여 있었을 것이 짐작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과연 제대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그 트라마 PTSD를 프로세스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시간이 그에게 허락되었을까. 제대로 된 애도와 상실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중독과 같이 목회에만 전념했을 경우 프로세스 되지 않은 슬픔과 공허함은 우울증, 불안감로 변하고, 분노로 분출된다. 자살은 어찌 보면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분노이다. 더 나아가 아버지가 목사였다면 앤드류 목사는 목회자의 자녀(Pastor’s kids)로서 끊임없이 판단 받고 기대에 맞춰 자라야하는 우울과 불안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이미 보냈는지도 모른다. 본인이 목사가 되어 굉장히 사적인 아버지의 죽음까지 공적인 목회적 영역에서 강대상의 설교, 간증, 글로 풀 수 밖에 없었다면, 그의 영혼은 처절히 주님 안에서 그저 한명의 인간이기를 한없이 갈구하지 않았을까.

이민가정들을 상담하면서 “자살”의 문제가 교과서에 나오는, 신문에 나오는 얘기만이 아닌 이민 가정 가운데, 지금 현재의 가족이 아니라면, 그 전 세대에 있었던,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비밀과 같이 가정 곳곳에 있는 것을 본다. 설교자는 자살을 얘기할 때 멀리 있는 남들의 얘기라고 생각하고 언급할 수도 있지만, 설교를 듣는 가정들은, 그 영혼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살이 가정에 주는 충격, 죄책감, 우울증, 불안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평생 우리가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트라마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용서했고 치유 받았고 다 자유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마음가운데 우리의 그림자와 같이 항상 따라다닌다. 치료를 통해 증상을 없애고 고친다는 표면적인 관점보다는, 그 증상을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아픔의 이야기가 또 다른 관점으로 다시 쓰여지고(Rewriting trauma narrative),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지으신 나의 참 자아(Authentic self)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찌 보면 치유의 과정이 아닐까.

연약함을 끊임없이 감추고, 행위로 보여주기(Performance)에 치중했을 것 같은 그의 삶이 사실 우리 대부분의 목사와 그 가족의 삶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의외로 매주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주는 목사의 정체성과 역할이 끝나 자신의 인간적인 일상으로 돌아 올 때 오는 공허함, 자기혐오,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목회자와 그 가족들이 있다. 정신적인 또는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제일 내보이고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그룹이 어찌 보면 목회자, 목회자 가정이 되어 버린 듯하다. 그들의 믿음이 약하고, 기도를 게을리 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판단하고, 목회자에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도 인간으로 감정적 존재로 인정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청하고, 받을 수 있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가 우리는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목회자들도 교회 안에서의 심리질환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전문적인 영역과 연계하여 교인들에게도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하는 의뢰자(Referral)의 역할을 할 순 없을까? 이제 판단의 잣대는 내려놓고 주위에 또 다른 앤드류 목사를 우리는 먼저 돌아보고 보살필 수는 없을까? 앤드류 목사가 마지막 시간(Last hour)에 주님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지 주님을 제외한 우리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30년 삶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미쉘 김은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리치료사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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