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태극기 부대
교회 안의 태극기 부대
  • 최태선
  • 승인 2018.10.14 02: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단상] 태극기 부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고

나는 며칠 전 자기 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한 목사를 만났다. 그는 그분들이 교회의 개혁과 바름을 외치지만 그분들 가운데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태극기 부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고라고 하였다. 그 목사님은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그분들의 그런 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매주 한 번씩 만나는 내 죽마고우 역시 강남의 대형교회 성도다. 그를 통해 이미 그 교회 카톡방에 돌아다니는 가짜뉴스들을 많이 보았다. 친구는 자기에게 보내온 그런 글들이나 뉴스들을 가끔씩 내게 보낸다. 이런 글들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가 내게 그걸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친구와 나는 거의 매주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니까 한심하다는 자신의 느낌을 내게 전하는 것이다.

태극기 부대는 그냥 나이 든 노인들이 돈 받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 한때 우리 사회의 주축이었던 사람들, 강남에 살면서 한다하는 사람들이 다수 섞여 있다. 거기에서 기독교는 그런 사람들의 사고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한 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목사의 말대로 어쩔 수가 없다.

태극기 부대에 참여하는 분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예를 들 필요가 없다. 내가 지적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분들의 닫힌 마음이다. 그분들에게는 합리가 필요 없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 믿고 싶은 것만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불같은 분노를 표출한다. 그분들의 그 같은 성향을 철학적인 용어로 ‘전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괜찮다. 누구든, 특히 나이가 들면 권위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넘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사회 전체를 위해 통제되어야 한다. 작금의 ‘가짜 뉴스에 대한 처벌’ 문제가 대두된 것은 바로 그러한 필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분들은 막무가내다.

나는 그분들의 막무가내식의 정치적인 사고나 판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분들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들의 사고나 판단을 기독교와 관련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성서가 말하는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넘어 지극히 보잘것없는 이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시는 분이시다. 성서가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심판의 근거는 바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세상에 살 동안 어떻게 대했느냐이다.

그리스도인은 과정적 존재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를 때까지 날마다 자기의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고, 자신을 성찰하여 자기부족을 깨달아 알아가는 존재이어야 한다. 하지만 닫힌 사고, 막무가내식 사고로는 그러한 성숙에 다다를 수 없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다른 이들에게 이끌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

나는 평생을 교회 안에서 충성하신 분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르게 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 의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밝혀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구세주이고, 복음이 희망이고, 하나님 나라가 모든 사회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임을 세상이 알게 되기를 원한다.

좋은 교회는 자기부족을 깨달아 알게 하는 교회이다. 그것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복음대로 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인 진보이다. 영적 진보는 성취에 의해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부족을 얼마나 많이 깨달아 알게 되느냐에 의해 가려진다. 나는 엄숙한 태극기 부대의 일원이 아니라 진리의 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겸손한 얼굴의 그리스도인 베테랑들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기독교 안에 있는 태극기 부대 분들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