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목사가 머리를 기르냐고요?'
'무슨 목사가 머리를 기르냐고요?'
  • 이용욱
  • 승인 2010.05.21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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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영국 신사'가 '장발 목사'가 된 이야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지 대략 7~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남자치고는, 특히 목사치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머리가 길죠. 그래서 목사라기보다 무슨 예술인으로 보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히피족이냐, 역술인 같다, 걸인이냐는 등 긴 머리 때문에 꾸지람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예술인은 아니고 그저 평범한 목사일 뿐입니다.

간혹 머리를 기르는 이유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아주 실제적인 것입니다. 실은 저도 30대 중반까지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전도사 시절에는 하도 헤어스프레이를 많이 써서 학생들에게 ‘칼머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목사가 된 후에도 늘 머리카락 한 올도 흔들리지 않는 단정한 머리를 고집해 왔었습니다.  잘 정돈된 머리와 늘 반듯한 정장에 권사님들로부터 ‘영국 신사’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아침 교회에 가려고 바쁘게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외모에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며칠 후 꼼꼼히 따져보았습니다. 머리 손질을 위해 쓰는 시간, 매일 머리를 감고, 드라이하고, 빗질을 하고, 무스를 바르고, 스프레이 뿌리고,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가는 일 등을 계산해보니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긴 머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냥 한 번 머리를 감고 손으로 몇 번 툭툭 털면 끝이니까요.

얼마나 시간과 돈을 절약하냐고요? 머리를 손질하는 시간 절약은 일주일에 약 1~2시간, 미용실에 다녀오는 시간 매달 두어 시간, 돈은 최소량의 샴푸를 사용하는 것과 아내가 서너 달에 한 번 머리를 잘라주는 것(머리가 길면 혹 잘 못 잘라도 어느 정도 보완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랜 실습(?)을 통해 제 머리는 아주 잘 자릅니다)을 감안하면 거의 1년에 500불 가까이 절약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꼭 필요한 옷만 사서 유행에 상관없이 10년 이상을 입고, 야외에 나갈 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 외에는 아무 화장품도 쓰지 않는 수수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젊은, 더군다나 청년 문화 사역을 한다는 목사가 의외로 패션 감각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을 때 자존심도 상했고, 지금도 T.V에 화장까지 하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오는 세련된 목사님들을 보면 은근히 부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제 자신의 꾸미지 않은 외모가 익숙하고 주위의 분들도 편안하게 보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 하나크리스천센터의 이용욱 목사.
무슨 목사가 이렇게 사냐고요? 사실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폼생폼사’, 즉 외모를 너무 중요시 여기는 세상의 풍속과 싸우는 저의 작은 노력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지고 있습니다. 패션, 헤어, 스킨, 성형 수술 등에 쓰고 있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생각해 보세요. 그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얼마든지 좀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더 이상 저를 ‘영국 신사’로 불러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의 요즈음의 별명은 ‘장발 목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더 좋습니다. 아무래도 목사는 제임스 본드보다 세례 요한을  좀 더 닮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이용욱 목사 / 하나크리스천센터

* LA 기윤실 호루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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