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부패가 오직 목사만의 잘못일까?
교회 부패가 오직 목사만의 잘못일까?
  • 최태선
  • 승인 2018.10.30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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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단상] 교회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오늘날 교회의 부패의 원인을 목사의 탓으로 돌린다. 맞다. 목사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교회 부패의 탓을 목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더 잘못된 일이다. 교회 부패의 탓이 정말 목사만의 잘못이라면 그런 목사들을 제거하면 부패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너무도 피상적인 조치이다. 비유하자면 깊은 내상을 입은 사람의 피부를 치료하고 병을 고치려는 것과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목사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목사가 잘못이 드러나도 행세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목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역시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종교놀이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교회, 그런 목사,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두지 말고 그렇지 않은 교회. 그렇지 않은 목사, 그렇지 않은 교인들이 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교회 부패의 척결은 교회의 정화로 드러나야 한다. 예수님이 성전 정화를 위해 짐승들을 쫓아내고 환전상들을 쫓아냈지만 성전이 정화되었는가. 성전은 결국 무너져야 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오늘 부패한 교회는 무너져야 한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져야 한다. 예수님은 심일 만에 다시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일을 직접 마치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분은 무책임한 분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분의 말씀대로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분의 말씀대로 되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아무리 교회를 구석구석 청소해보라. 이미 부패한 교회는 아무리 대대적인 손질을 가해도 깨끗한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런 교회들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만일 니느웨처럼 회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할 일은 그들에게 멸망을 선포하는 것으로 족하다.

얼마 전 나는 대형교회 부패한 목사의 잘못을 고발하는 한 사람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의 행위에 동조하기 때문에 찾아간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그 목사의 잘못을 깨달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의 정력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 목사의 처리에 연연하는 것은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예수의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를 좇을 수 없다. 그것이 비록 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 여전히 교회를 위해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국 여전히 부패한 교회에 희망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런 일을 인간의 힘으로 해내겠다는 맹신에 빠져있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찾아간 이유는 그 사람의 그런 열정이 부패한 그 교회와 다른 새로운 교회로 이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그런 열정이 바르게 사용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은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 몇 개를 제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은 기독교 역사에서 반복되어 일어나는 일이다. 부패한 교회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나는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부패한 교회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 그런 부패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부패한 교회의 규모와 하는 일들을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오인하며 잘못된 길을 계속 따라가면서 자신들의 부패한 마음 역시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기님과, 감리교 김씨 형제님들과, 오정현님과 전병욱님에게 감사한다.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다른 길을 달려가고 있는 그런 교회들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성서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아무리 그들이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여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아무리 지적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된 이들이 불로 연단한 금을 사야하고 흰 옷을 사야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야 할 때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그런 부패한 교회 앞에 서서 그들이 교회임을 인정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주범과 종범을 가리는 일은 결국 새로운 출발 자체를 불가능하게할 것이다.

오늘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구절이 새삼스럽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은, ... 나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부패를 깨달은 사람들이 이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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