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잡아라(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Carpe diem)
  • 최태선
  • 승인 2018.11.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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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이 명언은 번역된 구절인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영성과 관련하여서는 ‘지금 여기서’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렇다. 신앙의 성숙은 ‘내가 지금 여기서 제대로 살고 있고, 만족하고 있는가.’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말로 ‘내 일상 안에 얼마나 기쁨이 있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삶의 기쁨은 내 영성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20년이 넘었으니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가족 여행을 떠났다. 대구 인근의 한 절寺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내가 딸의 이름을 불렀다. 딸의 이름은 ‘기쁨’이다. 내가 기쁨아 하고 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한 스님이 듣고 ‘네가 기쁨이니? 이름 참 예쁘다. 그런데 슬픔이는 어디 있니?’라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불쾌했다. 하지만 절이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스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기쁨만 존재하지 않는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다. 알고 보면 기쁨과 슬픔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다. 지금은 그렇게 말을 걸어온 스님에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하지만 여전히 기쁨이인 내 딸에게 다가오는 슬픔은 싫다. 어쩌랴 그것이 인생이다. 내 슬픔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딸의 슬픔은 싫다. 그러니까 난 아직도 먼 것이다.

사실 그뿐이랴. 나는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지금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룩한 목적이 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내 소명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거룩한 목적 역시 나의 집착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그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일 하실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지만 나는 나의 집착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나는 카르페 디엠을 논할 자격이 없다.

오래 전 관상기도를 배우고, 하게 되면서 기도가 힘들어졌다. 청원이 사라지고 나니 기도의 절박성이 사라진 것이다. 주님 앞에서의 멈춤과 합일도 섹스만을 원하는 사랑이라는 느낌이 들어 시들해졌다. 그래서 걷기 기도나, 예수기도가 주가 되었고 가끔씩 화살기도를 날리게 되었다. 나를 관찰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당연히 성찰의 시간 역시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의 거룩한 목적에 ‘올인’하게 된 것이다.

거룩한 목적도 내 뜻을 주님께 강요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고 나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나도 일하면 된다. 내가 할 일은 지금 여기에 충실히 사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받아 그것을 즐기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슬픔으로 받아 애통해하면 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

가족의 채근은 언제나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그들의 고생과 아픔이 소중한 영적 훈련이란 걸 알면서도 근시안의 피조물인 나는 그것을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 참 많이 미안하다. 물론 나는 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내의 돈 벌어오라는 호통은 이제 내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러면 기껏 다잡아 놓은 모든 것들이 흐트러지고 만다. 외롭다. 고독하다. 무력함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인생의 무거운 짐이다. 그래서 비움의 영성, 수동의 영성은 내게 말로만 존재하는 공空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그래서 성서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분명하게 천명한다. 성을 점령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쉽다. 그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다 신앙에서의 성공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그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의 성공에 연연해서 말이다.

첫눈도 내렸고 이제 겨울이 깊어간다. 내 인생도 이젠 겨울에 도달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새로운 생명에의 도약을 위해 숨죽이는 시간이다. 나무가 위대한 것은 겨울을 이기기 때문이 아닐까. 그 자국이 나이테에 선명하게 새겨져 나무는 바람에도 끄떡없는 튼실한 줄기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영혼의 계절은 자연의 계절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정확하게 임한다. 내가 힘든 것은 순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한다던 내 공언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하루살이가 되어야 할 때이다. 오늘도 힘겨운 하루가 내게 주어질 것이다. 감사로 받아 기쁨과 슬픔으로 넘치도록 채워야겠다. 내 잔이 넘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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