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말모이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김기대
  • 승인 2019.02.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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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책을 읽다](2)-언어를 장악한 법비들이 김경수를 잡았다.

어떤 무의식이 작동했을까? 영화에서 판수(유해진분)가 조선어학회에 관여하게 되는 장면에서부터 갑자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이하 앵무새)라는 오래 전 영화 제목이 내 머리 속에 소환되었다. 일제하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잃어야 했던 이야기를 다룬 ’숭고한’ 영화 '말모이'를 보면서 '앵무새'라니. 그 옛날에 봤는지 안 봤는지 가물가물해서 '말모이'를 보고 나와 집에서 유튜브로 '앵무새'를 봤다. 토속 에로물로 오해 받을 만한 제목과 달리  '앵무새'는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주연 배우 정윤희와 조연 김형자(지금도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 김형자 맞다)가 각각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영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의 한장면

앵무새에서 최영감(황해분)은 한국전 참전 군인 출신이다. 전쟁 중 그는 죽은 어미 옆에 있던 갓난아기 수련(정윤희분) 과 죽은 전우의 아들을 자신이 키우기로 결정한다. 최영감도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성불구자가 되었고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그는 노동을 하면서 두 아이를 남매처럼 키우는 것으로 큰 위안을 삼는다.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 앞에서도 스스럼 없이 속옷 자랑을 하는 해맑은 수련은  벙어리였다. 서로 간에 친남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둘은 사랑에 빠지는데 둘 사이의 사랑에 반대한 아버지에 의해 수련은 타지로 보내졌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1981년, 전두환이 광주에서 학살을 감행하면서 정권을 잡은 이듬해다. 군인 출신 최영감을 성불구자로 설정한 것은 전두환이 근본도 없는 군인, 또는 그가 찬탈한 정부가 근본도 없다는 뜻이다. 당시에 안전기획부 요원들이 영화의 상징을 읽어낼 만한 식견이 없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영화 '암살'에서 조진웅과 하정우가 요즘 조선 돼지가 왜 맛이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온 그 이유, 조선 돼지는 죄다 불알을 까서 맛이 없다고 말할 때 그‘불알’이다.

최영감은 두 남매가 아무런 혈육도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며 키워왔지만 남매는 오래 전부터 이를 알고 사랑을 나누어 왔다.전두환 치하에서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은 드러난다는 의미다.  벙어리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1981년의 시대상황과 상관없이 수련의 동네로 놀러 오는 철없는 젊은이들에 의해 몸으로 항거하던 앵무새는 죽임을 당했다. 광주의 피울음을 숨기기 위해 마구 소비되던 향락의 문화들이 수련을 죽였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도 뭘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죄가 되는 거야"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수련은 '앵무새 죽이기'의 그 앵무새(흑인)였다.  

'말모이'는 서발턴들의 이야기다. 서발턴(Subaltern)은 안토니오 그람시가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해 썼던 용어로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하층민, 하위주체, 종속계급 등으로 쓰이는 개념이다. 판수는 일제하에서 2등 국민인 조선인인 동시에 조선인 사이에서도 글을 모르는 사회 하층민이다.  조선어 사전을 주도적으로 편찬하는 식민지 지식인이자 명문가 출신의 정환(윤계상분)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남편을 함흥 감옥에 두고도 위험한 사전 작업을 편찬하는 또 다른 서발턴인 자영과는 쉽게 친해진다.

서울역 역사에서 발견된 조선어 사전 원고가 해방 후 서울역 역사에서 발견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판수는 말을 못하는(실제로는 글을 못 읽는) 앵무새였지만 몸으로 울며  식민주의와 계급주의에 저항했고 원고를 지켜냈다. 판수는 극중 조선생(김홍파분)과 감옥생활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조선생은 한글학자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복역 중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한 이윤재 선생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윤재는 이전에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소매치기 잡범으로 감옥에 들어온 판수와 만나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이처럼 서발턴들과 식민지 지식인들의 연대를 그렸다.

왜 일본은 조선어의 사용을 금지했을까? 1920년대에 이미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의해 조선어사전이  발간되었었다. 총독부의 유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진영에서 자체 사전 편찬 시도가 계속되었다. 총독부의 사전이 연구대상으로서 조선어 사전이었다면 우리는 민족어 사전이 필요했다. '말모이'는 이 과정에서 서발턴 판수를 중심에 세운다.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1980년 2월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작가 로렝 비네는 바르트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해 '언어의 7번째 기능'이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는 미셀 푸코. 쟈크 데리다를 비롯해 당대의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바르트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다. 타살로 추정되는 바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언어의 7번째 기능에 관한 메모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언어 학자 로만 야콥슨의 이론인 언어의 여섯 가지 기능에 이은 7번째 기능이 도대체 뭐길래 사람을 죽게까지 만드는가?

7번째 기능이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혹은 살아 있지 않은 제3의 인물을 능동적 메시지를 전할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마법적(주술적)기능이다. 로넹 비네는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 아얄론 골짜기 위에 멈추어라, 그러자 해가 그대로 머물렀고 달이 멈추었다"( 여호수아 10정 12절)는 성서를 인용한다.

이것이 언어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지배자들은 이 언과 어를 지배하려고 들었다.  권력은 언어에서 나오므로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어를 죽은 언어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조선에서 '한자'의 권력에 눌려 살던 판수는 '한글'의 권력에서도 소외되어 있다가 한글을 통해 자의식을 키워나간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17살 아일랜드 청년 미하일 오설리번(Michael O'Sullivan)은 자신의 이름을 '마이클 오설리번'이라고 잉글랜드 식으로 발음하지 않았다고 영국군에 의해 맞아 죽는다. 철자가 같음에도 말이다. 침략자들은 항상 언어에 민감했다.

제국주의적 횡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자국의 언어 사용을 금지할 정도의 야만은 사라진 시대다. 그러면 여전히 언어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기자들은 형평성을 가장해 대중을 현혹하고, 법전의 어려운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법관들은 온갖 교언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시켜 나간다. 그들의 권력을 위한 일이라면 일본 전범기업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있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뺐을 수도 있다. 대통령은 탄핵당해도 법을 가진 그들의 권력은 견고하다. 이 과정에서 김경수가 '선고'의 가면을 쓴 '허언'에 당했고, 이재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법을 가진 자들은 청산의 대상'이라는 주술(언어의 7번째 기능)이라도 계속 되뇌어야 할 때다.     

<영화>
말모이, 엄유나 감독, 2019
암살, 최동훈 감독, 2015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감독, 1981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 2006

 

<책>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2003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외 지음, 태혜숙 옮김. 그린비, 2016
​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영림카디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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