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교회서도 햄 볶아요"
"여자라서 교회서도 햄 볶아요"
  • 김세진
  • 승인 2010.09.10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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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한국 교회 내 여성 … 집사, 사모, 여성 목회자의 일상을 쫓다

대학교 때 속했던 선교 단체에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다. 수도권에 있는 40여 개 대학 중에 남자가 많은 경우는 우리 학교가 유일했다. 가는 곳마다 '어떻게 남자가 더 많지' 하고 신기해했다. 대부분 교회에 여성이 더 많듯, 대부분 선교 단체에도 여성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기독교인은 461만 2,902명으로, 남성 기독교인 400만 3,536명보다 60만 9,366명(53.5%) 더 많다. 숫자가 많음에도 한국 교회에서 여성들은 약자다. 교회나 교단 리더 중에 여성의 비율은 현격히 낮다. 여성 목사와 장로는 많지 않다. 교회의 중요한 일을 기획하는 당회에 여성이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식당 봉사나 안내 등은 여자 집사들이 도맡는 경우가 많다. 목사의 아내, 사모에게는 독특한 지위가 부여된다. 교인들은 사모가 교회 일을 잘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고 내조를 잘하고 교인들 가정도 돌아보기를 원한다. 세 가지 일을 잘하려면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여성 목사, 사모, 여성 집사로서 사는 일상은 어떨까.

▲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2008년 5개 교단 800명 여성에게 물었다. 여성들 중 11.1%가 식당 봉사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식당 봉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3.3%에 불과했다. ⓒ뉴스앤조이 이용준
나는 마리아인가, 마르다인가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말이 유행하자 곧 패러디물이 나왔다. "여자라서 햄 볶아요." 피식 웃다가 생각해 보니, 이 문장이 말하는 바가 의미심장하다. 남자가 아닌 여자라서 햄을 볶는다는 뜻인가. 교회에서는 어떨까. 교회 여성들은 '여자라서 행복할까', '여자라서 햄 볶을까'.

강인자 집사(53)는 교회에서 여성이라 행복하지는 않다. 여성에게 요구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식사 당번, 꽃꽂이, 교회 청소, 심방 등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고, 바자회 준비와 진행, 부흥회 강사 음식 준비 등 비정기적인 일도 잦아 힘들다고 했다. 마리아처럼 은혜 받아야 하는데, 마르다처럼 부엌일 하느라 말씀을 못 듣는다는 불평도 생겼다.

그 불평이 수치로 나타난 결과가 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교여연)가 2008년 예장․기감․기장․성공회․복음교회 5개 교단의 800명 여성들에게 물었다. 여성들 중 11.1%가 실제 식당 봉사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식당 봉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3.3%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여성들 중 64.9%가 식당 봉사나 안내 같은 일을 '남녀 구분 없이 참여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여성이 잘하므로 어쩔 수 없다' 혹은 '당연히 여성의 일이다'고 30.4%가 답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양성평등위원회가 올해 남녀 2,145명에게 조사했을 때, '남녀 구별 없이 식당 봉사나 안내를 해야 한다'(21.7%)는 응답보다 '남자도 도와주어야 한다'(63.7%)는 의견이 많았다. 임희숙 목사(기장 양성평등위원회)는 남녀가 모두 식당 봉사와 안내를 당연한 여성의 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당회는 출입 금지?

식당 봉사와 안내가 여성의 일이라면, 교회에서 남성의 일은 무엇일까. 2010년 기장 양성평등 실태 조사에서 '제직회 논의의 결정권이 남성에게 있다'는 응답이 지배적(78.5%)이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당회에 여성이 참석하지 않는다. 한교여연 2008년 조사에서는 '교회의 중요한 일을 계획하거나 결정할 때 여성도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응답이 80.4%였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정은숙 집사(47)는 교회의 일을 계획할 때, 여성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원인 중 하나로 한국 교회의 권사 제도를 꼽았다. 권사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인데, 이 제도가 여성들에게 장로 대신 권사 직분을 줘서 의결 기구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 여성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대신 감사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부교역자는 좋은데 담임목사는 안 돼

당회에 여자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을 리더도 세우지 않는 교회도 있다. 김종미 씨(30)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남자만 목자로 세운다. 여자에게는 보조 역할만 부여한다. 김 씨는 교회에서 여성 목사나 장로를 본 적이 없다. 여성 목사 안수를 금지하는 교단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다.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도 있지만 아직 여성 목사 비율이 높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목사를 처음 배출한 감리교단도 2009년 당시 전체 목회자 9,144명 중 여성이 491명으로 5.37%에 불과했다. 다른 교단 상황도 비슷하거나 이보다 더 열악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윤은주 목사(33)는 안수를 받았다. 목사가 교회 내에서 하나의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안수를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여성 목회자의 수가 너무 적고 처한 환경이 열악하니, 한 명의 여성이라도 더 안수를 받아 목회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목사 안수를 받는 것 자체로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기장 양성평등 실태 조사를 보면, 여성 부목사 청빙 찬성(90.6%) 비율이 여성 담임목사 청빙 찬성(73.3%)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여성은 대표보다 보조 역할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관행을 반영한다. 김은혜 교수(장신대)는 예장통합에 여성 목사가 1,000명이지만 일반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는 10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일반 교회에서 청빙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사회복지 시설 등에서 특수 목회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교단의 여 교역자들은 어떨까. 고은혜 전도사(55)가 속한 예장합동은 여 교역자와 남자 목사의 은퇴 시기가 다르다. 남자 목사는 70세, 여 교역자들은 60세 은퇴다. 고 전도사는 교구 사역에 관심 있지만, 은퇴를 준비하며 사회 복지 쪽을 담당했다. 여 교역자는 은퇴한 후에 일반 교회 사역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가려진 존재

교회 사역을 하긴 하지만 나서서 하기 어려운 또 한 사람이 있다. 목사의 아내, 사모가 그들이다. 이재순 씨는 신학교에서 공부했지만 교회에서 나서서 활동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교회에서 목사의 아내, 사모는 자신이 사역을 하기보다 남편을 내조해야 한다는 게 한국 교회 교인들의 생각이다. 이 씨가 저녁 시간에 교회에서 일하고 있으면 더러 어떤 성도는 목사님 저녁을 차려 드렸는지 묻는다. 그런 교인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다. 사모도 스스로 교회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다.

2008년 하이패밀리 조사에 따르면, 교회와 가정생활의 양립(24.4%)과 사모 역할에 대한 교인들의 높은 기대(11.1%)가 사모를 힘들게 한다. 교인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충실하려니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마다 다른 교인들의 기대를 채우려니 버겁다. 이영애 씨는 한때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우울증을 앓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한국 교회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없는 자처럼 여겨지진 않는가.

김세진 / 한국 <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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