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처형 방법은 중세 로마 시대에서는 가장 악독한 사형 방법이었다. 이 처형 방법은 동양에서 시작했고, 고문 수단으로서도 사용했다.
주로 로마인들이 십자가 처형을 했는데, 노예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주로 이 방법을 시행했다. 십자가는 수직 버팀대와 횡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횡대는 버팀대 꼭대기 또는 꼭대기 바로 아래에 가로 놓여 있었다. 수직 버팀대의 높이는 보통 사람의 신장 정도. 수직 버팀대에는 발 디딤대가 놓여질 때도 있었다.
십자가 처형을 받는 죄수들은 이틀에서 사흘만에 죽게 되어 있었다. 그나마 발 디딤대가 있으면 죽는 시간이 약간 길어지기도 했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발 디딤대가 없이 십자가에 손발이 묶인 채 매달린 경우에는 사형수의 혈압이 급격히 줄어 맥박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빨리 죽는다.
십자가에 매달리면 고통 당하며 죽어
게다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대부분 사형수가 채찍질을 심하게 당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리면 뇌수와 심장에 피가 불충분하게 공급된다. 그래서 시력장애가 발생한다. 로마 군병들은 날카로운 동물의 뼈나 철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기절 직전까지 때렸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지는 건 다반사였다. 때로는 사형수의 다리를 곤봉으로 때려 무릎 아래를 부러트렸다. 이렇게 되면 사형수는 더 이상 체중을 견딜 수 없어 피가 순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심부전증이다.예수님이 달린 십자가의 높이는 약 210cm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그 전에 사망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십자가에 달리면 두 발을 모은 뒤 복사뼈 바로 밑에 대못을 박는다. 다음에는 끈으로 양팔 목을 가름대에 묶고 손목뼈 사이에 못을 박는다. 이런 다음 십자가를 세워 고정한다. 이렇게 달린 십자가에서 낮에서 땡볕에 밤에는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때로는 날짐승의 공격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글을 읽으면서 상황을 떠올려 보자. 너무 끔찍하고, 말 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올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당시에는 노예들에게나 행했던 방법으로 사형을 당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몸으로 느낄 수 없다.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운 상황은 글이나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체감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노력은 가상한데…
지난 9월 13일부터 이틀간 뉴욕전도협의회가 맨해튼에서 플러싱에서 십자가 대행진을 했다. 약 150명의 목사와 교인들이 십자가를 들고, 전도지를 나눠주며, 예수를 전했다. 동시에 낙태와 동성애 반대를 부르짖었다. 뉴욕전도협의회 회장인 이희선 목사는 "십자가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산다"며 낙태와 동성애 등을 꼽았다.십자가의 의미를 잃어린 것이 낙태와 동성애뿐인가. 그래서 십자가를 들고 동네 한 바퀴 돌면 그런 게 다 없어질까. 사람 모아놓고 전도지 돌려가며 예수 믿으세요 한 번 외치면 뉴욕이 복음화 될까. 물론 십자가 대행진에 참여한 목사나 교인들은 그게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뉴욕을 복음화하기 위해 열심히 전도한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뉴욕이 복음화 되는 것은 단순히 예수 믿는 사람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칭 기독교 국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떤가.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른 방식 때문에 먹거리 문제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개신교인들은 그라운드제로에 모스크 설립을 반대하고 있고, 어떤 목사는 코란을 불태우겠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하지 않았다.
미국은 인종 갈등, 빈부 격차, 종교 갈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된 게 낙태와 동성애 때문인가? 아니면 예수 믿는 사람이 적어서인가? 아니면 무슬림 때문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빵이나 돈을 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게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주일성수를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일에 일하지 않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사회를 교회가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교회에 장애인, 동성애자, 가난한 사람들이 맘 놓고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십자가를 들고 자랑스럽게 돌아다닐 때가 아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회개를 해야 할 때다. 그럴 때 뉴욕이 복음화가 되고,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가 이루어 질 수 있다.
십자가와 관련된 정보는 기독지혜사에서 발간한 성서대백과를 참조했습니다.
이런 저런 퍼레이드들이 이곳 미국에 많이 있습니다. 다 경찰의 보호도 받고 지지하는 시민들의 박수도 받고 그럽니다. 근데 유독 기독교의 퍼레이드는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들이 기자님의 마음에 부끄러운 것입니까? 전단지를 나눠주는 행위가 부끄럽습니까? 그건 어떤 종류의 시위에서도 다 하는 일입니다. 게이들의 퍼레이드는 쿨해보이고 기독교의 전도행진은 촌스럽고 부끄럽습니까?
혹 복음을 부끄러워 하는지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비리들을 성토하고 욕하고 업신여기는 자리에서 내가 바로 기독교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우리 인간들을 보면 참 답이 안나옵니다만… 그런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선포해야 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형벌은 당시 가장 저주받은 치욕스런 형벌이었지만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노방전도를 욕하려거든 먼저 바울을 욕하십시요. 그가 한 전도의 방법중 하나가 바로 노방전도입니다. 물론 회당에 가서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수단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옛날 소피스트들의 괘변이 판을 치던 시절에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열심히 선포했습니다. 현대에도 물론 너무 공격적이어서 욕을 먹는 전도도 있기는 하지만 노방전도나 이런 퍼레이드를 하는 자체가 잘못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전도로 하나님께로 오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헐뜯는 일 멈추고 이젠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로 묵묵히 복음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신 십자가대행진의 성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