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는 그리스도 몸의 암덩어리이다
대형교회는 그리스도 몸의 암덩어리이다
  • 최태선
  • 승인 2019.02.10 0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 전 한 유명한 목사님이 열대지방의 한 나무이야기를 하셨다. 나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 나무는 옆으로 4킬로 이상을 뻗어나가며 계속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데 생명력이 강해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영양분을 다 빨아들여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도 죽게 만든다고 했다. 심지어 그 나무가 죽은 후에도 한동안 그 나무가 자라던 곳에서는 어떤 나무도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그분은 대형교회가 바로 그런 나무와 같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분의 교회가 바로 대형교회이고 그분의 도움으로 세워지는 교회들 모두가 대형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생각으로는 몇 만 명 정도 되어야 대형교회였기 때문에 몇 천 명인 그런 교회들은 대형교회라는 생각을 못하신 것이다.

어쨌든 대형교회가 하나 생기면 주변의 모든 작은 교회들은 문을 닫게 된다. 사실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표현이 일반화된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교회가 살고 죽는다는 건 교회가 건물이거나 개인사업장이 되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교회가 생존을 걱정한다는 것은 이미 그 교회가 교회가 아님을 스스로 천명하는 것이다. 또 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오늘의 교회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들이 아닌 것이다.

만일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한 교회가 무한정 커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만일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오직 병리현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니까 대형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암 덩어리인 것이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은 정보를 공유한다. 어느 한 곳이 약하면 다른 곳들이 즉각 반응한다. 양분을 나누고 몸을 지키기 위해 면역세포들이 활성화되어 전체 몸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교회 역시 그랬다. 그래서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들을 왕래했다. 누가 가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왕래가 몸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작은 지체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다른 교회들이 최선을 다해 서로 도왔다. 극한 가난 속에 있던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기근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연보를 마련하기 위해 금식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교세가 비슷한 교회들의 목사들이 왕래하며 사례비를 챙길 뿐이다. 더 약한 교회를 섬기고 헌금을 나누는 일은 그야말로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교회를 도울 자원이 없어 금식을 한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교회들을 돕는 것은 세勢의 과시이며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금액은 정해져 있으며 기한도 정해져 있다. 그것은 진정한 나눔도 사랑도 아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그런 도움은 적선과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오늘날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의식이 아예 없거나 반대로 그러한 의식의 반대를 향해 치닫는다. 우월감은 다른 지체들을 죽이는 비수匕首이다. 그리고 교회들은 바로 그 비수를 휘두르며 대형교회를 향해 달려간다.

위의 유명한 목사님은 현상만을 진단했을 뿐 본질로의 발걸음을 내디디지 못하셨다. 지금도 그 목사님과 그 목사님의 도움을 받은 목사님들이 모이는 것을 본다. 개인적인 교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모임이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런 모임 자체가 무의식의 분파행위이거나 우월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가 커진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주변의 작은 교회를 돌보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이란 단 한 사람을 위해 다른 모든 사람을 죽이려는 살의殺意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 승패는 이미 그리고 무조건 결정되어 있다. 큰 자는 작은 자에게 져야 한다. 그것이 섬김의 진정한 의미이다.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 섬김을 통해 성취된다.

얼마 전 명성교회는 세습을 무마하기 위해 작은 교회들을 돕겠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능멸하는 행위이다. 그들이 정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안다면 그들은 분해되어야 한다. 나는 노숙자선생님들이나 구걸하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돈이 적선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적선은 세상의 눈으로는 아름다운 나눔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만일 그들의 것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도둑놈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그분들에게 되돌려줄 때 미안한 마음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드린다. 교회들 간의 관계에서는 얼마나 더욱 그래야 할 것인가.

다행히 요즘에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교회를 분리하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참 아름다운 현상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 일 역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런 일들을 자랑하거나 다른 교회들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을 삼가야 한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들 역시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모두가 평등한 하나님 나라를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금이 녹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빛이 비칠 때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 없이 녹는 소금처럼 소리 없이 밝아지는 빛처럼 우리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살리고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주님은 우리가 바로 그런 소금이며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녹지 않으려 하고 됫박으로 덮어두려는 우리의 욕망을 버리고 땅에 떨어져 썩는 한 알의 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는 유일한 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