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이 필요한 시대 (1)
계몽이 필요한 시대 (1)
  • 이재호
  • 승인 2019.02.14 02:2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호 칼럼] 자신의 믿음을 음모론으로 보호하는 사람들

2018년 3월 17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서울에 모였습니다. (구형 지구를 가정한 과학 기술을 사용한) 비행기를 타고 온 세 명의 강사는 중력은 존재하지 않고, 세계 정부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며, 인간은 달을 비롯 지구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강연회에 참석한 한 사람은 다시는 구형 지구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올해 초 미국 워싱턴주에는 30여 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해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홍역은 미국질병통제센터가 2000년 소멸되었다고 선언했던 질병이지만,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아님이 증명된) 잘못된 믿음으로 자녀에게 백신을 맞추지 않은 부모들 덕에 다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지만원과 함께 김진태 이종명 두 명의 국회의원이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희생자의 증언, 한국군 내부문서, 미국 외교문서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었고, 음모론의 주장들이 일일이 반박되었음에도 아직 북한군이 개입되었다 믿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켐트레일, 창조과학, 환단고기, GMO 유해설, 임나일본부설, 달착륙 부정, 대선 개표 조작설, 대형 땅굴설, 홀로코스트 부정 등. 유사 학문과 음모론은 수 없이 많습니다. 게르마늄 팔찌나 수소수 같이 건강 관련된 거짓 정보는 끝이 없습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의 언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합니다. 거짓을 진실인양 호도하는 가짜 뉴스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보의 접근이 이전보다 훨씬 쉬어진 지금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사람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본 지식이 없습니다. 중력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만 있어도 지구가 평평하다 내어놓는 증거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비행기 배기가스의 입자가 찬 공기와 만날 때 콘트레일이 만들어진다는 원리를 알면 비행기가 사람을 죽이는 화학물질을 뿌려댄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동시대 사료에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 기록된 것을 안다면, 왜곡과 거짓으로 점철된 유사 역사학의 주장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지식도 없고 공부도 안 하면서 가르쳐줘도 듣지 않습니다. 진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진 창조과학 신봉자들에게 진화가 무엇인지 알려주어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백신의 유해를 주장한 웨이크필드의 논문이 조작되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시해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땅굴 음모론자가 주장하는 크기의 땅굴은 공학적으로 불가능함을 근거를 들어 알려줘도 소용없습니다.

단편적 지식을 부풀리거나 왜곡해서 증거라 제시합니다. 광주항쟁을 담은 사진 속 인물과 (80년 당시 4살이었던) 탈북자의 얼굴이 닮았다며 북한군이 개입되었다고 합니다. 들판에 널려진 물질에서 공해물질을 발견하곤 하늘에서 뿌려진 켐트레일의 증거라 제시합니다. 통계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왜곡된 기억에 의지해 개표부정이 있었다 주장합니다. 이런 ‘증거’들은 쉽게 반박되거나 틀렸음이 이미 입증되었지만, 한번 잘못된 믿음에 빠진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음모론으로 보호합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남극의 군대가 사람들을 막고 있다거나, 일본의 지원에 넘어간 식민사학자들이 우리 조상의 찬란했던 과거를 숨기고 있다거나, 빌 게이츠 같은 힘 있는 자들이 백신으로 사람의 수를 줄이려 한다는 음모론에 흥분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스스로 진리의 수호자라 생각하는 이들은 이 모든 것이 힘 있는 세력의 음모라 생각합니다.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7세기, 이성을 통해 무지를 깨우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불합리를 없애자는 계몽주의가 유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을 지배했던 미신에서 벗어나 상식과 과학이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백 년이 지난 지금 무지 속에 스스로를 빠뜨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이미 흘러간 과거의 사조라 생각했던 계몽주의가 오히려 지금 이 세상에 필요합니다. 어느 때보다 이성적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더불어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으로 거짓임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왜곡된 정보로 대중을 현혹하는 사람이죠. 다음에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필자 이재호님께서는 보스톤지역에서 특허 및 지적 재산권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하나더 2019-02-15 16:01:49
수돗물 불소화 인체유해설 무용론이 있는데 녹색당 환경단체 생태조직등에서 주장하고있습니다 이로 백신 유해설 처럼 엄마들 선동해서 정치세력화 하고 있습니다 한 번쯤 다뤄주시길

Jj 2019-02-15 15:12:39
변호사라는 사람이 떵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