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모노 다메니(아이들을 위하여)
고도모노 다메니(아이들을 위하여)
  • 신순규
  • 승인 2019.02.15 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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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지난달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과 강압으로 점령한 나라들의 소녀들을 전쟁의 참혹한 도구로 쓴 일본의 역사는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인류를 향한 만행으로 남아 있다. 그 참사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셨던 김복동 할머니께서 별세하심으로 이제 한국에 남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은 스물세 분으로 줄었다고 한다.

 

위안부들에게 사과하지 못하는 일본 지도자들, 심지어 그분들에 대해 망언을 서슴지 않는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생각을 떠올린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다. 진주만 공격을 받은 지 10주 만에 대통령 명령 9066이 발령되었고 이에 따라 10만명이 넘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감금했다. 적이 된 나라에 충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집과 사업을 버리고 먼 곳으로 끌려가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 그들은 대부분 미국 시민들이었고 일본엔 가 본 적도 없는 1세대 이민자들의 후손들도 많았다.

미국 헌법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인권을 무시한 그 일의 피해자들은 위안부들처럼 오랫동안 그들의 경험에 대해 불평하거나 사과를 받기 위한 집회나 정치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8월 10일 그들은 레이건 대통령과 미 국회로부터 사과를 들었고 한 사람당 2만달러(오늘의 액수 약 4만2000달러)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이 사과와 보상금을 결정한 법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지불금도 잃어버린 그 몇 년의 세월을 보상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법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자산이 아니라 명예를 존중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을 시인합니다. 우리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정의를 갖는 나라임을 다시 한번 공약합니다."

2013년에 방송된 한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잔 타테시 씨는 수용소에서 떠날 때 그가 느꼈던 모국(미국)의 배신자가 된 것 같은 수치심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미 국회와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결국 아이들을 위해 내린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역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나라로 미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내린 훌륭한 지도자들의 결정이 돈보다 더 소중한 진정 어린 사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미국 헌법 전문에는 헌법을 제정하는 목적 여섯 가지가 나열되어 있다. 그중 이 두 가지가 나의 마음을 항상 흔들었다. "정의를 확립하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유의 축복을 확보할 목적…." 영국으로부터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 미국인들은 정의로운 나라, 자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그들의 먼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의 축복은 먼 훗날 미 대륙에 정착하게 될 일본계 미국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근본 원리가 되었다. 일본과의 전쟁 때문에 잠시 잊힌 이 헌법의 목적을 미국 지도자들은 다시 기억하게 되었고 그 역사적 잘못을 만천하에 시인하는 정의를 보여주었다. 

타테시 씨는 일본말로 "고도모노 다메니(아이들을 위하여)"라는 어휘를 썼다. 현재 지도자들이 아무리 부인하고 덮으려고 애쓰고, 1965년, 그러니까 세상이 위안부 참사를 모르고 있을 때 이루어진 한일조약의 청구권 협상을 내세운다 해도 이 상상을 초월하는 권리 침해는 역사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 무거운 역사의 짐을 일본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일본 지도자들은 곧, 속히, 진정 어린 사과를 받아줄 수 있는 분들이 모두 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분들께 속죄해야 할 것이다. 일본 지도자 여러분, 고도모노 다메니.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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