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의 장로대통령으로 충분하다
두 분의 장로대통령으로 충분하다
  • 최태선
  • 승인 2019.02.15 0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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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로 대통령이 둘이 있었다. 오래 전 나는 우연히 한 기독교 프로그램에서 최초의 장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장로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신망을 잃지는 않았던 시기이다. 그래서 장로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을 열심히 들었다. 정확히 그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완전 실망이었다. 대형교회의 장로라는 분이 성서 한 번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인터뷰 내용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분은 주일학교 아이들도 알고 있는 성서의 내용조차도 몰랐다.(참고로 한때 나는 그분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래서 여의도에서 시청 앞까지 걸었던 지지자들의 행진에 참여했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그분의 좋은 점을 들으려 했었다) 평가는 역사의 몫이라지만 그가 장로 대통령이라서 다른 대통령과 달랐던 점이 있었는가. 불행히도 나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한 분은 지금 감옥에 가 계신다. 이분도 강남의 대형교회 장로님이시다. 그런데 이분은 경제를 화두로 대통령이 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장로님은 경제를 들고 나오셨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분이 재임 기간 중 벌인 일들의 손실을 후손들이 언제까지 책임져야 할지 계산조차 할 수 없다. 이분이 시장이셨을 당시 자신이 시장이 되었다고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긴 했다. 그래서 과연 서울시가 성스러운 도시가 되었는가. 그분의 그런 사고는 어릴 적 딱지 먹기 식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불행히도 나는 이분에게서도 장로 대통령이라서 다른 대통령과 달랐던 점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분은 ‘고소영’이라는 유행어를 통해 기독교의 치부만을 부각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을 향해 달려가는 전도사가 등장했다. 야당 대통령 후보자 가운데 지지율 최고라는 여론을 등에 업고 목하 당권을 장악하여 대권을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이분 역시 주목해서 보아왔다. 여러 교회에서 강연을 하고 간증을 했다는 기사들을 빼놓지 않고 보았다. 물론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행동들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분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책임질 말을 절대로 안 한다는 것이다. 우병우를 법꾸라지라고 했는데 이분은 미꾸라지 수준이 아니다.

인류의 가장 큰 불행은 선악과에서 비롯되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책임지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와가 준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나님의 추궁을 받자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라고 그 이유를 댄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과 여자에게로 책임을 전가한다. 물론 여자도 핑계를 댄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여자의 핑계에는 뱀을 만드신 하나님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핑계를 대며 책임전가를 하는 인간이 다시금 책임지는 존재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책임전가는 희생양을 만드는 ‘희생의 체제’를 만든다. 인간이 책임지지 않는 존재가 되면서 세상은 ‘희생의 체제’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분은 대권도전을 위해 교회들을 찾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먼저 책임지는 존재의 모습을 보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책임지는 존재가 된 그리스도인도 권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권력지향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을 지향하는 순간 그는 권력이 없는 나라인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사람이 된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권력을 하나님 나라 건설에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광야 시험을 묵상해보라. 권력을 지향하는 것은 사단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의 모범이 그레고리 대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임 교황의 비서였다. 교황이 서거하자 사람들은 그가 전임 교황을 이어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알게 된 그레고리 대제는 변복을 하고 숨어 다녔다. 교황이 되는 것을 한사코 피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3년을 변복을 하고 숨어 다니다가 그만 사람들에게 발각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교황이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교황들이 여러 명이라 그는 후대의 교황들과 구분하여 대제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가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지게 된 이후에도 자신이 그 권력을 더 이상 섬김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판단이 든다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앞선 두 대통령이 기독교의 흑역사를 장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분들은 권력지향적인 분들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분 역시 또 다른 흑역사를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무엇보다 오늘날 ‘고지론’으로 대변되는 권력지향적인 기독교를 우려한다. 고지론은 경쟁과 엘리트주의의 산물이며 ‘희생의 체제’를 고착시키는 사단의 속임수이다.

이미 앞선 두 분의 대통령으로 기독교의 흑역사와 반면교사는 충분하다. 이제 더 이상 한국교회는 장로 대통령을 감사하는 교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도사 대통령은 더더욱 그렇다. 하나님 나라는 권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대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원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전도사인 그분이 섬기는 사람이 되시고 종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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