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전라도였다
그들은 전라도였다
  • 김기대
  • 승인 2019.02.16 23:3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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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망언의 원류는 호남 배척-반 나치법 제정에 신중해야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에 저항하는 시위가 대구에서 일어났으면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보수정당은 민주화 운동의 열매가 행여 진보정당의 몫이 될까 염려하며 ‘대구 사태’를 그들의 과거 속에 찬란한 기억으로 묶어 두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이다. 당연히 대구사태에 북한군의 개입같은 궤변은 없었을 터이고.

1979년 부산 마산 지역에서 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이른바 부마항쟁인데 광주만큼의 유혈상태는 없었지만 박정희의 유신 선포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다. 그러나 지금껏 부마항쟁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느니 하는 말은 없다.

박정희 통치 시절 굴욕적 한일협정, 3선 개헌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대규모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인을 동원해 시민 세력을 통제해 왔었다. 당시의 시위는 서울의 대학들이 중심이었다.  1975년 인혁당 사태로 대구 경북의 향토 진보 세력들은 궤멸했고 부산 경남 지역은 제도권 안에 있던 김영삼이 반유신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산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3.15부정선거 반대 시위에서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주열군이 목숨을 잃으면서 마산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이 한 번의 사건으로 부산이나 마산에서 시위가 일어나야 박정희 정권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세간에서 회자되었었다. 이 말은 개혁세력 내에서 조차 호남은 안중에 없었다는 뜻이다. 김주열은 호남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신 시절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결국 김영삼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의 민주당 세력, 이재오 김문수 제정구 등 서울에서 활동하던 영남 출신의 엘리트 세력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재오 김문수 제정구는 재야에서 제도권 정당으로 편입할 때 당시 신한국당을 택했다. 김대중의 정치 참여 번복이 싫다며 우익정당을 택한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점에서 이전의 모든 운동의 공식을 뒤집는 사건이었다. 운동 엘리트들이 신군부의 권세에 눌러 모두 잠수를 타거나 잡혀가고, 유시민 심재철 등 당시의 학생운동 지도부가 청와대 회군론을 외친 그 지점에서 그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드라마에서 항상 식모, 구두닦이, 빈민 역할을 도맡아 하던 전라도에 대한 혐오의 대상들이, 즉 실제 그 계급에 있던 사람들이 권력의 심장부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것은 광주 이전의 운동들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특별히 지도부라고 부를 조직도 없는 상태에서 민중들은 분연히 일어났다.

전라도는 혁명과 개벽의 땅이었다

세계 민중운동에 대한 연구자로 유명한 조지 카치아피카스(보스턴 웬트워스 공대 교수)의 “광주는 20세기의 파리코뮌이며, 민중의 저항과 자치 역량에서 세계사적 정점” 에 있는 사건이라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의 권력 피라미드 중에 가장 하위에 있었던 전라도가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이처럼 중요한 획을 그었던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광주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되어서는 안되고 북한의 난동이 개입한 자리여야만 한다.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반역이어야 했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망언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세월호 보상금처럼 ‘돈’의 문제를 부각시켜 사회 소외 계층을 자극해 망언의 앞잡이가 되게 한다. 지만원도 대령으로 제대한 그의 전력이 보여 주듯이 망언운동의 실제 배후 세력은 아니고 연대장 급이다. 그 뒤에는 강고한 호남 배척 세력들이 있다.  

이번 망언으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역풍을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라도 혐오가 지속되는 한 이 망언은 근저에서 지속적인 파괴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전라도는 ‘유공자’이기는 커녕 늘 비주류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남성성까지도 영남이 독차지 하려고 한다. 무심코 내뱉는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는 표현이 특히 그렇다. 한국같은 남성 중심사회에서 ‘무뚝뚝함’은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 남성성을 일부 지역에서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라도 출신일수록 서울말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경상도 출신일수록 경상도 사투리를 잘 고치지 않는다. 고향을 내세우는 사람(영남)이 있는가하면 숨기지는 않더라고 굳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호남)도 있다.

한겨레 신문 기자 출신의 정남구가 쓴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를 보면 전라도는 가진 것이 많아서 빼앗긴 것도 많았던 지역이다. 임진왜란 초기에 전라도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의병을 조직해 타 지역에 의병을 보내기도 했다. 1980년 이후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후천개벽을 꿈꾸던 동학혁명이 그곳에서 있었고 증산교의 강일순과 원불교의 박중빈이 전라도 출신이다. 정남구의 말처럼 전라도는 혁명과 개벽의 땅이었던 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에너지가 다시 분출된 사건이다.

일부에서는 나치의 과거를 부정하는 이들을 처단하는 반나치법과 같은 법의 제정을 서두르기도 하지만 이 법의 제정에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 나치의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보다 5.18 을 부정하는 세력의 저변은 의외로 넓다.  나치의 부정은 극우 민족적 정서에 기인하지만 5.18의 부정은 동일 민족내의 주도권과 관련맺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집권 세력이 바뀌었을 때 천안함이나 KAL기 폭발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역공을 당할 수 있다.

호남은 배척과 혐오의 땅이 아니라 다른 지역이 빚지고 있는 지역이다. 전라도를 혐오하는 사람보다 더 위선적인 사람은 전라도에 대한 혐오를 비판한답시고 “나는 전라도는 아니지만”이라고 단서를 달며 전라도 혐오가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극우 반동 세력들만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나 조직에서도 이미 편견을 갖고 있다.

세 명의 국회의원은 당연히 제명되어야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자리잡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우리의 편견부터 제어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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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앰통 2019-08-21 08:00:22
민족의 암덩어리 경상도를 처단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경상도 친일매국노의 온상...
다른 동네 3.1만세 부를 때 저동네는 3.1 폭도 때려잡자며 자제단 조직해서 독립운동가
때려잡고 다님. 경상도에 독립유공자가 많다는 통베충들 ㅋ 그거 다 친일부역자 남로당
빨갱이도 경상도 출신은 독립운동가로 세탁해서 박정희가 훈장 준거임. 이건 한국 사상의
아버지 리영희 선생도 지적한 사실. 심지어 남로당 빨갱이 수괴 박상희 조차 경상도에서는
독립운동가로 가르침.

요롤 2019-08-05 03:20:15
그냥 독립하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