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팔리는 시위
쪽 팔리는 시위
  • 지성수
  • 승인 2019.03.01 10: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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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몇 몇 해외 교민 사회에서 '5.18 망언 규탄 집회'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거리에 나가서 시위를 한다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가끔 백인 사회인 소수민족인 이민자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다. 그럴 때는 그저 “쟤네들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겼구나!”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럴 정도면 해당 이민자의 나라에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때로는 절박한 상황일 때도 있다. 내가 목격한 가장 절박한 상황은 1999년 동티모르가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였다. 끈질긴 독립투쟁이 500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 희생은 너무도 가혹했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철수할 때 독립을 반대하는 친인도네시아 세력(우리로 말하면 친일파)의 독립지지 세력들의 무차별 학살로 80만의 인구 중 1/4인 20만, 비율로만 본다면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조그만 섬나라의 문제였지만 인도네시아가 쫓겨 가는 틈에 동티모르에 한몫 끼어들려는 호주의 입장에서는 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어 매일 뉴스가 쏟아졌다. 매일 매일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가 살육을 당하고 보따리를 짊어지고 서티모르로 피난을 가는 화면들이 호주 TV를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보도가 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FM 방송국에서 일 주일에 한 시간씩 위탁을 받아 한국어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한국어 방송 앞 시간이 동티모르 방송 시간이었다. 사실 한국어 방송은 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절박한 처지인 그들에게는 일 주일의 중의 단 한 시간의 방송이 동족을 대상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어서 황금처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방송 시간에는 좁은 스튜디오가 시장통처럼 북쩍대면서 눈물과 비탄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방송을 하다가 스텝들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스튜디오를 튀어 나오는 일이 빈번했다.

나는 방송이 좋아서 하는 자원 봉사자들을 데리고 의무적으로 방송 시간을 겨우 겨우 메워가는 실정이었다. 티모르인들이 긴장 속에 방송 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대기하고 있는 우리측 스텝들은 짜증을 냈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천천히 하라고 했다. 생존의 위기에 서있는 그들의 방송이 우리 방송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통째로 우리 방송 시간까지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들 방송의 시그널 음악이었던 동티모르 토속 음악이었다. 마치 흑인들이 춤을 출 때 부르는 노래처럼 단조로우면서 코믹한 리듬이었지만 그 리듬이 내게는 무척 슬프게 들렸다. 가사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저들은 우리를 게으르다고 하네.”라는 구절이었다.

500년 동안 포르투갈에 식민지로 있으면서 무시당하고 살았던 삶을 자조하는 가사였다. 그런데 그 가사를 보고 전혀 남의 나라 노래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아본다는 말처럼 우리는 일본놈들에게 ‘조센징’이라고 무시당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시위를 자주 하는 민족으로 단연 메달 순위에 들 것이다. 최근 10년만 보더라도 노무현 탄핵 반대,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세월호, 소녀상, 이번에는 박근혜 탄핵 지지, 5.18 망언 규탄 등의 시위가 있었다. 이런 일련의 시위에 전체 교민의 0.1% 정도의 규모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참석하는 전문시위꾼(?)들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시위가 취미이자 특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심정은 간절한 것이다. 적어도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는 잠시라도 모국을 잊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몸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사는 이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한국에 대하여 올바른 상식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만 직접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일련의 시위에 매번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귀한 이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굳은 일이 생기면 희생적으로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라도 나서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민주주의 나라라고 해도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들 틈에서 한국말로 쓴 피켓을 들고 한국말로 구호를 외치는 일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중국인들 틈바구니에서 살면서 일신의 안녕을 잊고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중국 사람들도 조선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나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한국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남의 나라 사람들은 “쟤들 왜 저러나?”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약간의 쪽팔림은 있기 때문에 제발 한국에 별 일이 없어서 외국에서 더 이상 쪽 팔리는 집회를 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 약간의 희생은 참을 수 있지만 쪽팔림은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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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 2019-03-02 11:28:06
댓글 다는데 실명을 표시할 거면 회원가입할 때 요청하는 아이디는 어디에 쓰려고 하는건지 묻고 싶다. 망언과 같은 댓글을 차단하겠다는 정책인 줄은 알겠지만 시대를 잘못 읽고 있다. 기독교 언론도 언론이다. 떳떳히 밝히고 댓글에는 용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