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환 목사 향년 98세로 별세
문동환 목사 향년 98세로 별세
  • 양재영
  • 승인 2019.03.10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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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5시 50분 향년 98세로 별세
장례예배는 12일(화) 오전 9시 수유리 한신대학원에서
문동환 목사(뉴스M 자료사진)
문동환 목사(뉴스M 자료사진)

문동환 목사가 3월 9일(한국시간) 오후 5시 50분께 98세로 별세했다.

빈민과 민중들을 위한 운동가이자 종교개혁가였던 문동환 목사는 한맺힌 민중들과 함께 평생을 ‘떠돌이’ 삶을 살면서 약자와 민중, 거짓과 싸워온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고인은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목사였던 부친 문재린과 여성운동가였던 모친 김신묵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문 목사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한국 개신교의 시발점이었던 명동촌에서 형 문익환 목사와 윤동주 시인 등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인 김약연을 보면서 목회자의 꿈을 꾸었다고 알려졌다.

문 목사는 지난 2012년 <뉴스M>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명동촌에 대해 “민족이라는 가치가 깊이 뿌리 내린 곳이다. 항일 운동을 하면서 민족이 사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어려서부터 민족정신, 기독교정신이 뼛속 깊이 젖어든 사람들이다.”고 설명했다.

문동환 목사는 군사독재에 대항했으며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76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단속, 처벌했던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되었을 때, 명동성당에서 김대중, 문익환, 험석헌, 함세웅, 안병무 등 각계 지도층과 함께 3.1민주구국선언을 선포해 구속기소되었으며 2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문동환 목사(좌)와 형 문익환 목사(사진: Getty Image)
문동환 목사(좌)와 형 문익환 목사(사진: Getty Image)

당시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은 앞다퉈 유신 체제를 찬양하고 있었으며, 반공과 안보를 내세워 민주화운동을 용공세력이라고 매도하며 군보통치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김장환 목사는 긴급조치 9호에 맞선 교계 지도자들을 향해 ‘순수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아닌 정치 목사’라고 조롱하기도 했으며, 미국 조찬기도회를 모방해 만든 ‘대통령 조찬기도회’를 만든 김준곤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고 기도하기도 했다.  

문 목사는 이런 목사들에 대해 “ 악을 악으로 보고 그 악이 어떻게 하나님의 질서를 깨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류를 착취하는지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대체로 목사들이 악을 그런 각도에서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축복만 얘기하면 교인수가 많아지고 헌금이 많아지고 큰 교회당을 짓고 더 많은 사람이 오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게 성공이라고 여기는 게 오늘날 교회다.”고 지적했다.

문동환 목사와 문혜림 사모(뉴스M 자료사진)
문동환 목사와 문혜림 사모(뉴스M 자료사진)

미국 유학중에  미국인 이레인 여사와 결혼했으며,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모교인 한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로 정년퇴직했다. 그는 민중신학을 기독교 교육적 접근을 하여 민중교육론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고인의 유해는 세브란스 장례식장에 안치되었고 장례일정은 소속인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장이나 한신대학교 학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입관예식은 11일(월), 장례예배는 12일(화) 오전 9시 수유리 한신대학원서 열리고 이후 12일(화)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사모 문혜림(일레인)과 딸 문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사위 정의길(한겨레 기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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