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보다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꿈
초코파이보다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꿈
  • 김기대
  • 승인 2019.03.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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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재 영화의 명대사 5+1선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다양한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비관론과 낙관론, 스몰딜과 빅딜, 미국 책임론과 북한 책임론 등 백가쟁명의 형국이다. 2018년초 평창 동계 올림픽을 기점으로 급박하게 전개되던 남북미 평화 무드가 다시 수면 속으로 잠길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라도 어그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남쪽 정부와 북쪽 정부의 결단이 중요하다. 북한 자유여행이나 이산가족 상봉 상시화 등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북은 아직 체제를 완전히 개방할만큼 준비가 안되어 있고 남쪽 역시 보수층과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지난 15개월여의 과정 속에서 중도층의 대북 적대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김진향 이사장(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은 북한에 대한 무지를 '북맹'이라고 부른다. 이런 우려는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1990년대 말 이후 꾸준히 나오던 북한 소재 영화들은 반공 영화의 틀은 많이 벗어났지만 그 안에는 변함없는 스테레오 타입들이 있다. 혼자서 수십명을 상대해도 이기는 무술실력, 경직된 사회 분위기, 총알도 피해가는 공작원들, 자신없는 모습의 북한 주민들은 영화의 단골 메뉴다. 북한 공작원들이 최민식(쉬리)처럼 험악한 캐릭터에서 강동원(의형제), 김명민(간첩), 정우성(강철비), 현빈(공조)처럼 잘 생긴 배우로 옮겨간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통해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힐만한 장면들이 꽤 있었다. 북한 사회를 향한 대중의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사 5개(+1)를 꼽아 보았다.

1) 그 여자의 젖가슴이 만져 집데까?

국경의 남쪽(안판석 감독, 2006년)에서 평양 교향악단 트럼펫 주자인 차승원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놓아두고 탈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남쪽에 도착한 차승원은 팍팍한 삶속에서도 연인 조이진을 탈북시키기 위해 돈을 모은다. 교회에서의 탈북 간증은 그의 주 수입원이었다. 북한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차승원이었지만 돈을 주는 교회에서 바라는 간증의 내용은 북한을 악마화하는 것이었다. 

북의 연인에게 연락을 취해도 이렇다 할 응답이 없자 지쳐가던 차승원은 치킨집을 하던 생활력 강한 남쪽 여성과 결혼을 한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마침내 조이진의 탈북 소식이 전해진다. 차승원의 도움이 아니라 제발로 사랑을 찾아 모험을 감행했다.

영화 국경의 남쪽의 한장면
영화 '국경의 남쪽'의 한장면

탈북자 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차승원은 결혼 사실을 숨긴다. TV를 통해서 우연히 차승원의 결혼을 알게 된 조이진은 차승원에게 이렇게 내 뱉는다.

“ 그 여자의 젖가슴이 만져 집데까? “

여자는 끝까지 사랑을 믿었고 그것 때문에 탈북했지만 남쪽에서 지쳐버린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탈북 이유가 그 곳에서 못 살아서이겠지만 못사는 이유가 다 체제와 경제난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이 떠나간 자리는 남북을 불문하고 지옥일 수 있다.

2) 내 꿈은 우리 조선이 초코파이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거야.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2000년)에서 이병헌, 김태우 두 남측 병사는 북측 병사 송강호, 신하균이 근무하는 북측 초소를 몰래 찾아가 우정을 나눈다. 어느날 이병헌이 가져다 준 초코파이를 맛있게 먹는 송강호에게 이병헌은 금기의 말을 한다. “형! 남쪽으로 내려가자.” 순간 송강호의 표정은 굳었고 북측 초소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마침내 송강호는 먹던 초코 파이를 손바닥에 내뱉는 일촉즉발의 상태에 다다른다. 이 때 일어난 반전.

“내 꿈은 우리 조선이 초코파이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거야”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한장면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한장면

송강호는 손바닥에 뱉었던 과자를 다시 먹는다. 이병헌이 송강호를 남쪽으로 귀순시키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고작 ‘초코파이’였다. 남한이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는 항상 이랬다. 못사는 나라, 배고픈 나라, 과자 조차도 없는 나라, 한 마디로 말하면 맛있는 과자 하나에 마음이 흔들릴 ‘인민’으로 보았다.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보다 떨어지고 생필품의 수준도 우리에 못미치지만 그것으로 인해 흔들릴 만큼 그들은 비굴하지 않다. ‘모진 고난의 세월속에서 자존심을 지켜온’ 그들이라고 문재인 대통령도 능라도 경기장에서 연설하지 않았는가?

주민들이 몰래 숨어서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남한 체재를 동경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마당에서 사먹는 초코파이가 남쪽 과자라는 것도 안다. 남한이 과자를 맛있게 만든다고 해서 우월한 체제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문법이 있고 시스템이 있다. 괜한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대북 지원이 그들을 굴복시키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3) 너희들이 와 전쟁에서 지는 줄 아니?

고지전(장훈 감독, 2011년)에서 6.25전쟁이 개전하자 마자 하룻 만에 의정부까지 내려운 인민군 장교 류승룡은 포로가 된 신하균과 고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이 와 전쟁에서 지는 줄 아니? 너희가 왜 도망치기 바쁜지 알어? 그건 왜 싸우는 지 모르기 때문이야.”

영화 '고지전' 포스터
영화 '고지전' 포스터

그러면서 류승룡은 조국 해방이 되면 함께 하자며 고향에 가서 조용히 숨어 있으라고 포로들을 풀어준다. 북한군이 남한군 포로를 '악랄하게' 학살하지 않고 풀어준 장면은 지금껏 한국 전쟁영화에 없었던 장면이다. 

북한에게 6.25는 ‘민족 해방 전쟁’으로 정의된다. 반면 이승만 정부는 공허한 통일과 반공을 이념으로 삼았다. 혼자서 통일을 이룰 군사적 능력이 없던 이승만 정부였기에 통일의 동력을 반공으로 삼고 보도연맹 학살을 자행했다. 자기 백성의 학살 위에서 성립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민족해방 이데올로기를 당할 수 없었다.

1986년 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 유성환은 국회 연설에서 “국시를 반공에서 통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반공없는 통일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패배의 논리는 2019년 국회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나경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4) 내가 잘못 온 것 같시오. 평양으로 다시 데려다 주시라요

풍산개(전재홍 감독, 2011년)에서 휴전선으로 남과 북을 마음대로 오가며 택배를 비롯한 심부름 센터의 일을 하는 정체불명의 윤계상은 국정원으로부터 북한에서 여인 하나를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북한 여인 김규리와 윤계상은 휴전선을 넘는 과정에서 생사의 고비를 함께 나눈다. 마침내 남에 도착한 김규리는 일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북으로 돌아가겠다며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73.2%가 남쪽에서 하류층이라 생각했다.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50.5%이 하류층이라 답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이 더 나빠졌다는 말이다. 또한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20.5%(일반 국민은 6.8%)가 최근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남쪽에서 탈북자들의 삶의 질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영화 '풍산개'의 한장면
영화 '풍산개'의 한장면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한 최승철씨는 북한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2002년 탈북했다. 그리고 2008년 영국으로 건너가 재영한민족협회(탈북자 모임) 회장을 맡았다. 2015년 11월 10일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자유주의자로서 북한의 통제 분위기가 싫어 탈북했지만 언젠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형제들은 북에서 잘 살고 있으며 1차 탈북해서 중국에서 ‘자유’를 좀 즐기다가 다시 들어가 가족과 함께 2차 탈북을 해 한국으로 왔다. 탈북자들의 남은 가족이 고통 속에 있지도 않고 탈북후 다시 돌아가도 심한 문초를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최씨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2등 시민이고 전쟁포로라고 표현한다. 남한 사회가 그들을 같은 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더러 체제 선전의 도구로 쓴다는 말이다. 월북자(탈남자)들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는 짓은 북한에서도 이미 1980년대 그쳤다. 한국만 북한에서 무슨 짓을 했건 다 받아들여서 '전쟁 포로' 취급을 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한국에서 범법후 월북한 사람들을 여러 차례 돌려 보냈다. 

5) 언니 피가 장군님에게 들어가고 있으니 영광이갔소.

강철비(양우석 감독, 2017년)는 북한내 쿠데타 시도로 북한 1호가 중상을 입고 남쪽으로 피신해서 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다. 쿠데타 세력을 피해 남으로 피신할 때 정우성과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함께 한다. 일단 아무 병원(산부인과)이나 들어가서 응급치료를 받는데 여성 노동자 중 한명의 혈액형이 1호와 맞아 수혈을 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다른 여성이 부러워하면서 한 말이다.

영화 '강철비' 포스터
영화 '강철비' 포스터

김정은은 지난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면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한국의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실제로는 김일성까지 거슬러 올라간 표현이다. 수령은 김일성에게 해당되는 호칭이다. 그래서 유훈통치인 거고 김정일과 김정은은 위원장으로 호명된다. 수령의 혈통에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파격적인 선포다. 

남쪽에서는 수령의 혈통에 의한 영도체제가 억압과 세뇌에 의한 것이라고 폄하하면서 3대 세습을 문제 삼는다. 선거로 사람을 뽑는 나라들의 시각에서는 낯설지만 그들이 보기에 남쪽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부분은 영화 간첩(우민호 감독, 2012년)에서 잘 드러난다. 남쪽에서 생계형 간첩생활을 하고 있는 고정 간첩들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일식집에서 오랜만에 조우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자기들이 뽑은 대통령을 김정일보다 싫어하는데 요즘 간첩이 할 일이 어딨어?”

북한 사람들에게 최고 지도자는 인민을 옳게 지도하는 존재다. 김정일은 주체 사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 력사의 주체로서 인민대중은 력사의 창조자이지만 옳은 지도에 의해서만 사회력사 발전에서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바로 위 직장 상사 앞에서는 주눅이 들면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에게는 온갖 막말을 쏟아내는 남쪽의 분위기는 북쪽 사람들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러므로 강철비에서 여성노동자의 이 발언은 진심의 표현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에게는 수혈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도 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나 아이돌에게 수혈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할 사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도자는 지도력의 원천이고 모든 인기와 존경을 누리는 존재다. 이런 존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위는 영광이지 세뇌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인기스타에 열광하는 남한 사람들이 오히려 소비주의와 향락주의에 세뇌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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