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목사님이 정말 좋은 목사님입니까?
김장환 목사님이 정말 좋은 목사님입니까?
  • 최태선
  • 승인 2019.03.15 1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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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목사님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 옥중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석으로 석방이 된 후에도 접견 허가를 받아 예배를 드릴 것이라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이명박님은 세 살짜리 손자가 면회를 오고 김장환 목사도 예배를 드리러 왔을 때 예배가 먼저라고 그 예쁜 손자를 만나지 않고 접견실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옥중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김장환 목사님도 보고 싶은 손자를 돌려보내고 예배를 드리는 이명박님도 신심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귀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청와대에 있을 때에나 감옥에 있을 때에나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 가운데서도 그런 대통령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의 공덕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김장환 목사님은 전에도 고립무원이 되었던 전두환님을 찾아 백담사까지 가시기도 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탄핵을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국민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박근혜님을 만나기도 하셨습니다. 참으로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모름지기 목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이런 목사님이 계셔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극동방송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김장환 목사, 이명박 시장(당시), 전두환 씨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극동방송 창사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김장환 목사, 이명박 시장(당시), 전두환 씨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그렇다면 김장환 목사님의 그런 기사를 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마음이 꼬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얼른 회개를 해야 합니다.

다시 이순자님의 발언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자신의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분의 남편은 통일주체 국민회의와 유정회를 없앴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남편이 자랑스럽고 종신 대통령이 되지 않고 스스로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이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만 우리의 이성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며칠 전 글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상처 입은 치유자가 아니라 상처 입은 승냥이라는 표현을 했더니 그 표현에 방점을 찍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제 표현이 적절하다는 동의일 것입니다.

오늘날 가나안 성도들이 되신 분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동안 교회 안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봇물처럼 쏟아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화들을 나누며 조금씩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을 절대화하며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의 독립투사라도 되는 양 행동합니다. 그래서 명성교회나 사랑의 교회나 그보다는 못하지만 불의한 일을 행한 교회들을 찾아 시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로운 행동에 감동하여 자신들처럼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고, 그런 행동을 하지 말고 진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자는 저 같은 사람을 수구세력으로 몰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큰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권력을 좇는 불나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장환 목사님이 정말 좋은 목사님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분은 권력을 좇는 불나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을 존경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복신앙에 함몰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욕망의 노예가 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제가 쓴 글에서처럼 그분들 역시 자신들이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추론을 거친 논리적인 사고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앞에서 헌금을 드리던 사람들을 바라보시다가 한 과부가 렙돈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바치는 헌금은 환전상을 거쳐 신성한 돈인 은화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두 렙돈으로는 바꿀 수 있는 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과부는 부정한 돈을 헌금으로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과부를 보며 가장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의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놓은 헤롯이 지은 화려한 성전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보다도 더 크고 화려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규모의 함정’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위대한 것을 자신도 모르게 구하고 인정하면서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똑같이 공평해지는 나라입니다. 큰 자도 없고 작은 자도 없는 나라입니다.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길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규모의 함정’은 하나님 나라를 허무는 치명적인 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특별히 ‘헤롯의 누룩’이라 말씀하시고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봄이 되었습니다. 산골 어느 구석에 혹은 길가 양지쪽에 핀 작은 꽃들이 그리워집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띠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그 꽃들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작은 자가 되는 것이 참된 신앙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큰 사람의 눈에는 큰 것만 보입니다. 그래서 김장환 목사님은 대통령들만 눈에 보입니다. 개혁을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만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은 꽃들처럼 작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친구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자가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규모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작은 자를 지향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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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kmoon 2019-03-16 00:15:11
살인마, 사기꾼 그리고 목사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