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런 하노이 회담 소회: 일관성 없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실망스런 하노이 회담 소회: 일관성 없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 권영석
  • 승인 2019.03.17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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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베트남 정부의 전폭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이 끝나고 만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향후 북핵 협상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에 대한 전조가 된다는 면에서 우리 겨레는 물론 세계인들에게 안타까움과 동시에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선 비핵화" 전략(grand bargain)에서 돌이켜서 북한이 제시한 "단계적 비핵화" 전략(staged approach)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전제를 깨고 또 다시 완전한 비핵화를 선결 조건으로 하여 제재완화를 고려하겠다는 전략(front-loaded grand bargain)으로 선회하였다는 점입니다. 세부적인 몇 몇 조건이 안 맞았던 게 문제가 아니라, 협상의 프레임이 통째로 뒤집혔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협상 전망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하겠습니다.

북핵협상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에 대한 전저가 된다는 면에서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주고 있다(사진:뉴스1)
북핵협상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에 대한 전저가 된다는 면에서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주고 있다(사진:뉴스1)

무릇 신뢰란 내 처지를 먼저 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필요하면 기꺼이 내 이익을 양보하더라도 그리하겠다는 마음의 교감이 있을 때에 두터워지는 법입니다. 두 정상이 주고받는 악수는 바로 이런 마음의 고백이오 상징이 되어야지, 아무런 내면의 공감대나 교감이 없는 악수는 반복하면 할수록 효과는 반감되고 도리어 위선으로 흐르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마음을 더욱 닫히게 하고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하노이 회담의 결렬을 두고 '절호의 기회'를 [무위로] 날려 버렸다고들 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남북 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 역시, 사실은 그간의 역사적인 맥락을 제대로 짚고서 그 동안 적대감으로 일관해 온 저간의 관계를 먼저 털고 나서 반전을 시도해도 했어야 했던 것이 정도(正道)였는데, 북한의 절박한 필요와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 위주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맞물려서 정도보다는 속전속결의 지름길(政道)을 택하면서 우리도 일말의 [허허로운] 기대를 걸게 되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국가 대 국가 간의 관계 특히 주변 6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서로의 경계선을 존중하면서 신뢰의 기초를 다져 나가는 것이 정도가 아니었었나 하는 뒤늦은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사실 북미 관계는 핵을 포기하느냐/포기시키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간의 불신을 포기하고 통상(通常)적인 관계, 곧 여느 국가와 다름없이 서로의 존재와 특수성을 이해하고 이해받는 그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하겠습니다. 다만 그런 불신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 [우연찮게] '핵'이었던 셈이지요: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위협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신에 줄곧 시달려 왔던 것이며, 그런 불신과 적대감의 공포를 떨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핵을 개발했던 게 아니겠습니까? 적극적 훼방은커녕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미국을 협상의 대상으로 끌어내기 위한 자구책으로 주린 배를 쥐어짜 가면서 핵폭탄과 미사일 발사 장치를, 적어도 미대륙을 사거리에 넣을 정도의 수준까지는,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지요. 반대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일방적 무시 전략으로는 더 이상 북한을 저지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이르렀고 어찌 보면 내키지 않는 협상 테이블에 앉긴 했지만, 여전히 의심과 적대감을 매한가지로 안고 임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지요. 뒤집어서 보면, 북한으로서는 대화상대로 [마지못해] 인정받게는 되었지만, 과연 미국이 자신들을 [여전히] 무시보지 않고 성실하게 협상을 할 것인지 여전히 불안의 그림자를 떨쳐 버릴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으며, 미국으로서는 [마지못해] 정상 간의 대화 자리를, 그것도 싱가포르나 베트남과 같은 제 3국의 초청 형태를 빌려서, 마련하긴 했지만 여전히 북한의 그간의 소행과 작금의 핵 위협을 괘씸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은데다가, 과연 북한의 핵포기 선언을 액면가대로 신뢰하고 받아들일 만한 [믿음의] 근거가 충분한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처지에 서 있었다 하겠습니다.

협상의 예후를 예단하기가 힘든 이런 프레임과 저간의 역사적 맥락을 감안할 때, 만일 서로가 자신의 아젠다만을 고집하는 이상 성과를 기대하기란 사실 애초부터 무리였다 하겠습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 미국을 신뢰하기는커녕 더욱 의심하게 되고, 이전보다 더 큰 공포와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결과가 벌어진다면 북미관계는 아마도 싱가포르 회담 이전보다 더 못한 관계로 후퇴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또 미국이 자신들이 기대하는 만큼 신뢰의 근거가 될 만한 전격적인 조처를 선결조건(Grand Bargain)으로 요구하는데 북한 역시도 계속 불신의 태도로 일관하여 단계적 비핵화(Step by Step Approach)를 고집한다면 이는 도리어 북한의 진심을 더욱 의심하고 불신하는 계기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완전한 선 비핵화" 카드는 북한의 불신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단계적 비핵화" 카드는 미국의 불신을 자극하도록 되어 있으니,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논리적으로 보면 지극히 타당하고 당연한 결과였다 하겠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단계적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고, 불신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선결 조건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북한은 미국에 대한 불신 때문에 '완전한 선 비핵화'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고, 불신을 완화하기 위해서 '단계적 비핵화'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보니, 이것이야말로 창과 방패의 모순에 교착된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불신의 악순환이란 함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함정은 이미 잠재적으로 예상되어 있었던 것이니 새삼스럽게 더 나빠진 것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나, 그렇다면 차라리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뭔가 달라질 것처럼 하다가 도리어 실상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격이 된 듯하여 괜스레 마치 큰 좌절을 맛본 듯 실망감이 더 크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신의 악순환이란 이처럼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아서 가히 개미지옥과 같다 하겠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정상회담이 이런 뻔한 진실을 재확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이야말로 너무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를 낭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은 핵이 아니라 불신이라고 하는 깨어진 관계가 문제였던 것이며, 핵은 불신이란 [염]병의 증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불신에서 오는 위협과 공포를 핵으로 막아보려 했던 북한의 노력이 비록 막다른 골목에서 벌인 자구책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가당치 않은 것이었던 것이며, 그 가상한 자구책을 진작에 간파하고서도 여전히 거대한 제국의 힘으로 '제재'라는 채찍을 손에 거머쥐고 으름장을 놓는 듯한 미국의 불신 해소책 역시 뭔가 찌질하게 보이긴 매한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마치 협상의 파트너처럼 대하려는 듯, '단계적 비핵화'의 로드맵을 함께 그리려는 척하다가 '완전한 선 비핵화'로 선회함으로 일 년 어간의 노력과 기대를 '도루묵'으로 만든 트럼프 행정부의 '방자함'은 협상의 기본 규칙을 어기고 '큰 형님'의 권위주의로 돌아선 듯하여 예전 제국들의 식민지배 망령(실은 따져보자면 남북 분단과 동족간의 끔찍스런 내전은 다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전의 일환으로 벌어진 비극이니 우리로서는 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넘어서기엔 아직은 세월이 짧다 해야 할 것입니다)까지 새삼 상기시켜서 우리는 협상 당사자는 비록 아니지만 '동족상련'(同族相憐)의 동정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불신의 증상인 불안과 경계심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 불신의 뿌리 곧 불신을 야기한 원인이 되는 핵심 소행/만행에 대한 사과와 용서가 피차 전제되지 않은 채 진정성 있는 신뢰관계를 회복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개발해 놓고서 [이제 이것을 포기할 테니] 우리를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당장에라도 신뢰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하다가 도리어 핵무기 포기하는 것을 먼저 확인하기 전에는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자세를 고수하는 것은 여전히 위협과 공포의 고삐와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이전[행정부]의 태도에서 한 발자욱도 달라진 것이 없다 하겠습니다.

만일 미국이 여전히 자신들의 군사력을 내세워 북한의 자존심을 뭉개려 든다면,

북한으로서는 이제 정말로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차라리 처음부터 핵이 아니라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불필요한 밀땅이나 긴장해소로 인한 에너지를 도리어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만시지탄의 뒤늦은 소회라 하겠습니다. 설사 북한으로서는 막다른 골목에서 핵을 집어드는 악수를 선택했다 치더라도, 미국은 북한이 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계속 몰고 가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벼랑에 몰린 북한이 천신만고 끝에 핵을 개발하고 나니까, 이제 와서 [자신들이 위협을 느끼게 되니까] 슬쩍 협상 카드를 꺼내 드는 척 하더니, '너 가진 패를 먼저 몽땅 다 털어놓아라, 그러고 나면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태도를 여전하게 견지하고 있으니, 도대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 개선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어 보이는 대목입니다.

핵을 개발하기 이전이나 핵 개발을 완성한 지금이나 여전히 변한 게 없이 고자세를 견지하는 이런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미국이 보유한 핵은 훨씬 더 강력하고 숫자도 엄청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남한에 배치한 싸드가 자신들의 미사일 방위력을 제고했기 때문에 북에서 쏘는 핵탄두 몇 개쯤이야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걸까요? [해서, 만의 하나, 북한을 적당히 어르는 수준의 "관리"를 할 수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기존의 동아시아 지역 패권을 유지할 수 있겠다고 하는, 고도로 계산된 갑질 외교를 펼친 것이라면, 이는 일관성 없음을 표방하였지만 속내는 사악한 갑질을 포장해 위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여전히 자신들의 군사력을 내세워 북한의 자존심을 뭉개려 든다면, 북한으로서는 이제 정말로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것입니다. 고양이도 자칫하면 궁지에 몰린 쥐에게 당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쥐한테는 이제 다른 방도가 전혀 없기에 사생결단하고 덤비기 때문이지요?!

북한의 핵 개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북한이 핵을 앞세워 관계 개선을 도모해 보겠다고 했던 발상 자체가 이미 첫 단추를 잘 못 꿰었던 악수였다는 것은 두 말 할 여지가 없겠습니다. 이야말로 힘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힘을 배양하여 대응해 보겠다는 심산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폭력과 전쟁의 악순환에 빠지는 지름길이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핵 개발을 완성해 놓고 나서는, 자 이제 "관개 계선을 해 주면, 핵을 포기할까 하오"하는 격이니,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란 쉽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선뜻 교제의 악수를 교환하고 타협안을 그대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미국이 당면한 지금의 사안은 "핵"이라고 하는 폭발물을 다루는 협상이란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북한을 더 이상 코너로 몰아붙이는 것은 인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미국[과 남한]의 안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그다지 지혜로운 태도라고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핵이란 수천 기(基)를 가졌든 단 몇 기를 가졌든 그 위력에 있어서 그다지 차이가 없다할 정도로 대대적이고 전방위적인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다 된다는 식의 논리로 밀땅을 하던 외교는 더 이상 일방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핵무기 시대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연유로 역시 다들, 특히 약소국들은 더더욱, 핵을 개발하고 싶어 하는 것이겠구요.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맥락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가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위험한" 물건을 다룰 때는 무엇보다, 한 번에/단김에 확실하게 매조져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의 인기 관리에 급급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 각료들조차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뭔가 하나로 의견 통일이 안 되어 있는 데서 나오는 일관성의 결여는 미국이 과연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 동포들의 인권과 민생을 위해서라도) 의지가 있는 것인지, 나아가서 자국의 위협이나마 제대로 그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헛갈리게 만들고 있다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이럴 거면 굳이 협상 테이블에 왜 나온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겁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달래려고 한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떻게 보나 찔러 보려고 했던 것인지, 협상의 후속 메시지조차 한 가닥으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듯하며, 애초에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아직 협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행정부 내에서조차 의견 통일이 안 된 마당에 어떻게 미국민을 대표하여 협상을 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에 비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그 동안 일관성 있는 요구를 해 왔다 하겠습니다.]

아마도 우리 남한이 이런 실상을 잘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남북관계 개선의 꿈에 부풀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 위주의 리더십에 편승해 보려 했던 것인지 여하튼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데는 자업자득인 측면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직도 진정한 독립 국가로서 자주적인 군사력이나 외교력을 발휘할 수 없는 우리[ 나라]로서는 분통 터질 일이긴 하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직시하면서 멀리 내다보고 포석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촛불 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 행정부 역시 이런 역사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지는 못할 터인즉, 대통령 한 사람의 외교력이나 정치지도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돌다리도 두들겨 가면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중간 포석 작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인품과 리더십은 물론 2016 대선 자체의 정당성까지도 의심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의 '쇼맨십' 위주의 사업수완에 우리 민족의 명운을 걸어 볼 수밖에 없었던 웃픈 처지를 생각하면 서글픈 심정이 앞섭니다. 허지만, 신뢰에 기반한 관계가 초점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제국의 야만적인 '정치적인 수완'(政道)에 대항하기 위해 불가불 또 다시 신뢰가 아닌 힘의 논리로 맞대응하기보다는, 비록 더디더라도 힘의 논리가 아닌 정의와 자비의 길(正道)을 꿋꿋이 걸어가는 민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이런 기회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통 크게 보고 더 이상 힘의 논리가 아니라 역사의 요구 앞에 겸손하게 정도를 걸어가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서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지, 민족의 자주와 자립의 길을 다지기 위해 더디더라도 진실되고 정의로운 공화국을 지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알량한 핵무기에 의지하여 시간을 앞당겨 보려 했던 그 간의 전략을 포기하고, 더 이상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진리와 정의의 기초 위에서 국가를 재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미국과 UN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전 지구촌 앞에 핵 폐기를 선언한 만큼 약속한 시간표대로 시행해냄으로 [비록 미국은 북한을 불신하지만] 북한은 신실하게 약속을 실행에 옮기는 "통 큰" 행보를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요? 이런 결단에 혹 그래도 같은 겨레인 남한이 힘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대로, 실어 줄 수 있다면 우리 겨레의 자주 독립의 날은 한 걸음 더 앞당겨지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핵으로 무장한 군사력이 아니어도 신뢰와 용서에 기반하여 평화[관계]가 충분히 가능한 것을 지구촌에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핵사이다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만 될 수 있다면, 즉 '어떻게 개발한 핵무기인데 그것을 쉽사리 포기하겠는가' 하는 세간의 시각을 뒤집어엎고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명실상부한 사회주의 공화정을 일구겠다는 희망을 실현해 낼 수만 있다면, 3대째 세습을 자행하고 있는 인권 없는 독재국가의 오명을 씻어내고, 도리어 통일의 염원을 현실로 성큼 다가오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실망스런 기대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로 보상받고 싶은 부질없는 기대(wishful thinking)가 우리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만, 사실상 북핵 문제나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뾰족수가 달리는 보이지 않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직시하고 도리어 바르고 떳떳한 길로 나아가기 위한 참 지혜를 건져 올리는 겸허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권영석 목사 / 전 학원복음화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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