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신자
사이코패스 신자
  • 박충구
  • 승인 2019.03.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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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로가 강대상 근처에 앉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야구공이 날아와 김 장로의 얼굴을 때렸다.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있던 최 장로가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한다. 어느 목사의 설교 중에 나온 예화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심코 웃어버렸지만 우리 주변에는 최 장로 같은 교인이 의외로 많다.

최 장로의 감사는 그 야구공이 자기를 때리지 않고 바로 옆자리의 김 장로 얼굴을 때렸다는 사실에서 다행히 자기는 맞지 않았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설마 김 장로가 맞은 것에 대하여 감사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감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나만 안 당하면 된다”는 생각, 의외로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가지고 있다. 기독교 복음과 너무나 거리가 먼 생각이다.

설교자 중에는 “그들의 불행”을 빗대 ‘우리의 행복’을 강조하는 이도 있다. 예컨대 굶주리고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자유로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경우다. 심지어 누구는 암에 걸리고 누구는 교통사고 났지만 그대는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이냐고 가르친다. 위의 최 장로와 무엇이 다른가?

남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신자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싸이코패스 신자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서의 구절을 앞세우며 지극히 이기적이고, 남의 불행에 빗대 행복을 찾는 이는 성서가 말하고 있는 감사의 태도를 가진 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다. 남의 불행을 보고 안도하는 이는 비열하고 이기적인 사람, 연대성을 상실한 인간이다.

나치 기독교인의 감사 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과연 그들의 감사도 하나님이 받아 주셨을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위가 싸이코패스적인 감사가 되지 않으려면 일단 우리의 감사는 인간다운 것이어야 한다. 인간다운 감사란 홀로 잘 먹고, 잘 사는 이기적인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나누는 삶에 대한 감사다. 나를 위한 감사보다 공동성을 위한 감사, 억압과 착취를 제거한 사회가 이룬 공동선에 대한 감사가 진정한 감사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온갖 부정과 부패로 점철되고, 흉악한 범죄에 의하여 착하고 순진한 이들이 죽음으로 내 몰리는 사회에서 자신만의 안일과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 감사 합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연대성의 윤리가 빠진 감사, 곧 사이코 패스적인 감사다. 이런 이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불의한 일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면서 책임감조차 느끼지 못한다. 차마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다.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던 나치 기독교인의 감사 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과연 그들의 감사도 하나님이 받아 주셨을까? 싸이코패스 신자는 나치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사랑하는 이는 약자들과 연대를 나눌 줄 아는 이, 정의와 공의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먼저 연대성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사랑이 식어버린 우리의 차가운 가슴을 먼저 따스하게 데워내야 한다.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찌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아모스 5:22-24

박충구 교수 / 전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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