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딴거'는 없다. 존더코만도만 있을 뿐
'저딴거'는 없다. 존더코만도만 있을 뿐
  • 김기대
  • 승인 2019.03.23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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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의 노무현 대통령 모욕 사건을 보면서
박노해 시인(좌)과 91년 사노맹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우)
박노해 시인(좌)과 91년 사노맹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우)

박노해 시인이 안기부에 끌려가서 수사 검사 정형근에게 조사를 받을 때 시를 대신 써 준 사람이 누군지 대라고 모욕을 받았다. 야간 상고 졸업의 박시인 학력이 문제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정형근은 박노해의 아름답고 이념적인 시어가 고졸 출신이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1991년 5월 8일 서강대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사회부장인 김기설이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1991년에 강경대(명지대)군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고 이후 4월 29일 전남대 박승희, 5월 1일 안동대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 천세용 학생이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죽음 때문에 노태우 정권이 궁지에 몰렸있던 터에 김기설 사건이 터졌다. 때맞추어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 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하는 이벤트를 벌였고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이라는 표현으로 죽음을 기획 또는 굿판으로 깎아 내렸다.

이 때 튀어나온 사건이 유서대필사건이다. 김기설씨의 유서를 강기훈 씨가 대필해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2015년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강기훈씨는 다른 이를 죽음으로 내 몬 파렴치범이 되어 3년의 옥고를 치렀고 지금 간암투병중이다. 왜 김기설의 유서가 대필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여기도 김기설의 학력이 문제였다. 김기설은 검정고시 출신의 고졸이었다. 사회 기득권층의 사고는 ‘감히 검정고시 출신이 시국걱정을 해?’였다. 성남민청련에서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고 일을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아 전민련으로 자리를 옮긴 김기설씨의 능력이나 이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검정고시라는게 유서도 제 손으로 못쓰는 사람이라는 판단 근거였다.

지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여 “저딴게 무슨 대통령입니까?”라고 막말을 던졌다. KAIST 출신의 김준교에게는 'SKY'도 안나온 문대통령이 ‘저딴거’로 보였을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그가 받고 있는 재판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환경 미화원으로 일하면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명 지사의 동생에게 검사는 컴퓨터를 건네면서 쳐보라며 모욕했다고 이지사는 분노했다. 동생의 직업이 환경미화원이어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인터넷 커뮤니티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게 한국 사회다. 정형근은 아직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으로 가장 모욕을 받았던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사법연수원은 대학원에 준하는 과정인데 그 사실은 노대통령의 이력을 말할 때 사라져 버린다. 노대통령 시대의 부산상고는 웬만한 대학 보다 더 취업이 잘되던 명문교였는데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고졸이 문제였다.

교학사에 교재에 실린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사진
교학사에 교재에 실린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사진

최근 교학사에서 만든 공무원 수험서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노비라는 글을 새겨 넣은 모욕적인 사진이 실리면서 대중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교학사측에서는 직원의 실수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노무현 재단 측은 교학사의 사과를 거부했다.

교학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 부칠 때 국정교과서를 만들었던 곳이다. SBS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모욕이미지를 여러번 사용해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었지만 이번 교학사 만행은 한국 사회의 학력 카르텔에서 최상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의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이들에게는 한국 사회의 대다수는 노비에 다름 아니다.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언급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조선 시대 노비는 어땠을까? 조선 명종 때 박인수는 노비이면서 학자였다. 그의 학문은 상당한 지경에 이르러서 수많은 선비들이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수십 명의 제자가 찾아와 마당에 늘어서서 절을 올렸다. 제자들은 박인수에게 죽을 올린 뒤 그가 다 먹은 다음에야 물러갔다. 그가 선비 중심의 사회에서 얼마나 탄탄한 지위를 갖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종성, ‘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위즈덤 하우스)

지금의 한국 사회의 학력과 재력은 신분 이동이 불가능한 신흥 노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계급의 최상위층도 아닌 출판사 편집 직원, 방송사 직원 등은 왜 이런 일을 자꾸 저지를까? 그들은 다른 이들을 모욕함으로써 최상위층에 인정받거나 혹은 그들과 동일한 계급에 속한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돼지로 취급받는 그들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행위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몰아 넣던 앞잡이 유대인들인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와 같다. 아우슈비츠에 끌려 오는 유대인 수용자들을 가스실로 안내하고 죽은 뒤 시신을 처리하는 일을 하기 위해 수용자들 중에 선발된 유대인들을 지칭하던 명칭인 존더코만도는 단지 몇 개월 더 살기 위해 이 일을 하면서 동족을 학대했다. 그들은 나치가 될 수 없는데도 나치보다 더 잔혹했다.

한국 사회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 중에서 박탈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원인에서 찾기보다는 혐오에서 찾으며 자신의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혐오의 깃발을 든다. 열등감의 표출이다. 무슬림, 성소수자, 난민들에게 별로 당한 일도 없으면서 그들 때문에 자신들이 피해를 본다는 망상에 빠진다. 설사 어떤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런 종류의 일들은 기독교인, 이성애자, 합법적 시민들도부터도 당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진은 KBS 드라마 추노에서 따오면서 사진 속 인물을 노대통령으로 바꾸었다. 추노에서 오지호는 양반에서 노비로 추락했다가 탈출한 인물이다. 오지호를 쫓는 추노꾼 장혁은 자신의 옛 여인 이다해가 오지호의 아내가 된 사실에 연민을 품고 오지호를 돕는다. 장혁은 오지호가 양반출신인 것을 알면서도 항상 그를 “어이 노비”라고 불렀다. 오지호가 “자네는 아직도 나를 노비로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장혁은 멋진 말을 남긴다. “세상에 매어 있는 것들은 다 노비야.”

자신들이 가진 알량한 학력이나 재력에 매어 있는 자들이 진짜 현대판 노비다. 그 노비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자기만족을 하는 교학사 관계자들은 노비의 뒷치닥 거리를 하는 존더코만도다. 존더코만도들이여! 그대들이 아무리 노무현을, 문재인을, 박노해를, 김기설을 모욕해도 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대들이 아무리 '일등 민족 아리안'이 되려고 몸부림쳐도 그대들이 존더코만도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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